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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군 동원령에 러 엑소더스 가속…"국가 위해 죽기 싫다"

등록 2022.09.23 13:08:19수정 2022.10.04 09:2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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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집 대상 남성들 '패닉'…러시아발 항공편 매진

비자 없이 입국 가능한 터키·아르메니아 등으로 탈출

부분 동원령…소집 더 확대될 것이라는 우려 커져

러 전역서 반대 시위…경찰 38개 도시에서 시위자 구금

[모스크바(러시아)=AP/뉴시스]21일(현지시간)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부분 동원령 반대 시위에 나섰던 러시아 시민이 모스크바 경찰에 의해 연행되고 있다. 2022.09.21.

[모스크바(러시아)=AP/뉴시스]21일(현지시간)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부분 동원령 반대 시위에 나섰던 러시아 시민이 모스크바 경찰에 의해 연행되고 있다. 2022.09.21.

[서울=뉴시스] 권성근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예비군을 대상으로 부분 동원령을 내린 가운데 러시아에서 징집을 피하려는 남성들의 탈출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 월스트리트저널(WSJ), AFP통신, CNN 등에 따르면 동원령 발표 이후 러시아 전국 곳곳에서 이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고, 국내로까지 번지는 전운에 러시아를 탈출하려는 행렬으로 러시아발 항공기표는 매진됐다.

군 동원령에 러 남성들 해외로 탈출

드미트리는 아내와 아이들을 남겨두고 작은 가방 하나만 챙겨 아르메니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는 AFP통신에 "전쟁에 참여하고 싶지 않다"며 "이런 무의미한 전쟁에서 목숨을 잃고 싶지 않다. 이것은 동족상잔의 전쟁이다"라고 말했다.

세르게이(44)라는 또 다른 남성은 "러시아의 상황은 누구나 이곳을 떠나고 싶도록 만들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10대 아들과 러시아를 탈출했다.

아르메니아 공항에서 길을 잃고 지쳐보이는 그는 동원령을 피해 탈출한 것은 맞다고 말했지만 이름 전체를 밝히기를 거부했다.

그의 17세 아들 니콜라이는 "우리는 소집되기를 기다리지 않았다"며 "공황상태에 빠진 것은 아니지만 불안감을 느낀다"고 전했다.

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에 도착한 다른 러시아인들의 심정도 같았다.

알렉세이(39)는 "21세기에 전쟁을 하는 것은 분명 잘못 됐다"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했다.

그는 나중에 러시아로 돌아갈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며 "모든 것은 (전쟁) 상황에 달렸다"고 전했다.

앞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수세에 몰린 푸틴 대통령은 지난 21일 대국민 연설에서 군 동원령을 발표하며 "러시아 보호를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러시아 국방부는 예비군 30만명이 동원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모스크바=AP/뉴시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모스크바에서 대국민 연설을 통해 부분 동원령을 발표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의 주권과 영토를 보전하고,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부분 동원령을 채택했다고 밝혔다. 2022.09.21.

[모스크바=AP/뉴시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모스크바에서 대국민 연설을 통해 부분 동원령을 발표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의 주권과 영토를 보전하고,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부분 동원령을 채택했다고 밝혔다. 2022.09.21.

익명의 한 여행 가이드(23)는 군 동원령 소식을 들은지 12시간 만에 비행기표와 노트북을 구입하고, 환전을 하고, 자신의 사업을 마무리하고, 울고 있는 어머니에게 작별 키스를 한 뒤 해외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그는 22일 오전 터키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했다. 이 여행 가이드는 자신을 재워주기로 약속한 친구의 주소와 배낭만을 소지한채 공항 입국장으로 걸어갔다.

그는 NYT에 "나는 앉아서 무엇을 위해 내가 죽어야 하는지 생각했다"며 "나라를 위해 죽을 그 어떤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이 여행가이드는 보복이 두려워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했다.

탈출을 감행한 러시아인들은 비싼 가격을 감수하고 비행기 표를 구매했다. 이들의 목적지는 비자 없이도 입국이 가능한 아르메니아, 조지아, 몬테네그로, 터키와 같은 국가들이다.

항공기 가격은 급등했다. 모스크바발 이스탄불행 비행기 최저가는 8만 루블(약 190만원)에서 17만3000루블(약 412만원)로 크게 올랐다.

상선 선원인 드미트리(26)는 그의 대부분의 친구들이 우크라이나 침공이 자신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해 러시아에 남았지만 동원령으로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러시아인들은 한 남성의 의견을 위해 싸우고 싶지 않기 때문에 러시아를 떠나고 싶어한다"며 우크라이나 침공은 푸틴의 개인적인 프로젝트라고 일축했다.

푸틴 대통령은 군대에서 복무한 경험이 있는 예비역들만 공식적으로 소집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징집 연령의 남자들에게 새로운 여행 제한을 내릴가능성을 우려해 재빨리 탈출하기를 원했다.

징집 대상 확대 가능성에 공포감

WSJ은 푸틴 대통령이 이번 조치가 수십년간 계속된 러시아를 분열시키려는 서방의 음모를 막기 위한 부분적인 동원령이라고 발표했지만, 더 광범위한 징집 안이 발표될 것이라는 우려가 러시아 내에서 확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고위관리들은 소집 대상은 30만명의 예비군과 36세 이하의 퇴역 군인들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크렘린궁 홈페이지에 게시된 푸틴의 법령은 동원 대상자를 명시하지 않았으며 단지 러시아 국방부가 추후에 얼마나 많은 병력이 더 필요한지 공개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를 추적하고 있는 인권단체 활동가들에 따르면 예비역이 아닌 사람들을 포함해 모든 연령과 범주의 집단에게 소집 통지서가 21일과 22일 사이에 도착했다.
[이지움=AP/뉴시스] 13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주 이지움에서 한 우크라이나 병사가 러시아 국기를 짓밟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지난 4월 러시아군이 점령해 돈바스 공세를 위한 군수 보급 중심지로 활용하던 이지움을 탈환했다. 2022.09.14.

[이지움=AP/뉴시스] 13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주 이지움에서 한 우크라이나 병사가 러시아 국기를 짓밟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지난 4월 러시아군이 점령해 돈바스 공세를 위한 군수 보급 중심지로 활용하던 이지움을 탈환했다. 2022.09.14.

반전 단체인 '자유 부라티야 재단(Free Buryatia Foundation)'은 푸틴의 군 동원령 발표 이후 24시간 동안 부라티야에서 최소 3000명의 남성들이 통지서를 받았다고 밝혔다. 부라티야는 시베리아 동부 지역에 있는 공화국으로 인구가 100만명을 넘지 않는다.

이 단체의 설립자인 알렉산드라 가르마자포바는 "일부 사람들은 군대 경험이 없고 36세 이상이지만 통지서를 받았다"며 "이것은 부분 군 동원령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이웃 국가인 몽골로 어떻게 넘어갈 수 있는지 문의하는 전화가 밤새 끊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동원령 반대 시위 러 전역 확산

푸틴 대통령이 부분 동원령을 전격 발표한 뒤 러시아에서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확산하고 있다. 현재까지 1300명 이상이 체포됐다.

외신들이 공유한 영상에서는 시위대가 평화롭게 행진하며 구호를 외치는 모습이 보인다. 또 다른 영상에는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와 같은 대도시에서 경찰이 "동원령 반대"를 외치는 시위대를 체포하는 장면이 담겼다.

독립적인 모니터링 그룹 OVD-info는 23일 자정을 넘긴 시간에 발표한 통계에서 경찰이 러시아 38개 도시에서 시위자들을 구금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단체 대변인인 마리아 쿠즈넷소바는 CNN에 "모스크바 4개 경찰서로 연행된 시위자 중 일부는 곧바로 러시아 군대로 징집됐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경찰서에 구금된 시위자 중 한 명은 징병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기소당할 수 있다는 위협을 받았다고 밝혔다. 새 법령에 따라 러시아에서 정당한 사유 없이 징병을 거부할 경우 징역 15년형의 중형을 선고 받을 수 있다.

경찰서에 구금된 1300여 명의 시위자 중 500명 이상은 모스크바에, 520명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억류돼 있다고 이 단체는 밝혔다.

OVD-info는 경찰에 억류된 시위자 중 절반 이상은 여성이라며 언론인 9명과 미성년자 33명도 구금돼 있다고 전했다. 이중 미성년자 1명은 경찰들로부터 잔혹한 구타를 당했다고 단체 관계자는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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