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튀르키예 지진 취재기] 이재민 쉴 곳 어디에도 없었다

등록 2023.02.23 06:00:00수정 2023.02.23 06:38:50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튀르키예 동남부 도시는 지진 상흔만 가득

시내 전기·물 끊겨…거리에 앉은 이재민들

차박·노숙이 일상…임시 시설도 추위 못 피해

구호 기다리다 안전한 곳 찾아 사람들 떠나

[누르다이=뉴시스] 권창회 기자 = 15일 오후(현지시간) 튀르키예 가지안테프주 누르다이 시내에서 이재민 가족들이 캐리어를 끌고 이동하고 있다. 2023.02.16. kch0523@newsis.com

[누르다이=뉴시스] 권창회 기자 = 15일 오후(현지시간) 튀르키예 가지안테프주 누르다이 시내에서 이재민 가족들이 캐리어를 끌고 이동하고 있다. 2023.02.16.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이종희 기자 = 지난 17일(현지시간) 튀르키예에서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렌터카를 반납했다. 문득 계기판 미터기를 살펴보니 주행거리가 어느새 2만8000㎞을 가리키고 있었다.

9일 아다나 공항에서 렌터카를 빌렸을 때 주행거리가 2만4000㎞ 안팎이었다. 9일부터 17일까지 출장 기간에 강진이 덮친 튀르키예 동남부 약 4000㎞를 돌아다닌 셈이다.

4000㎞를 돌아다니면서 직접 살펴본 지진 피해 현장은 처참했다. 이스켄데룬, 가지안테프, 카라만마라슈, 오스마니예 등 동남부 도시들은 지진의 상흔이 깊게 새겨져 있었다. 집을 잃은 수많은 이재민들이 거리를 배회했다.
[안타키아=뉴시스] 권창회 기자 = 11일 오전(현지시간) 튀르키예 하타이주 안타키아 일대가 지진으로 건물이 무너져 폐허로 변해 있다. 2023.02.12. kch0523@newsis.com

[안타키아=뉴시스] 권창회 기자 = 11일 오전(현지시간) 튀르키예 하타이주 안타키아 일대가 지진으로 건물이 무너져 폐허로 변해 있다. 2023.02.12. [email protected]

한국 해외긴급구호대(KDRT)가 활동을 했던 안타키아는 이번 지진으로 가장 피해가 컸던 곳이다. 시내 건물들은 누군가 주먹으로 내리친 것처럼 부서져 있었다. 반쯤 무너져 내린 건물은 흔하게 보였다. 잔해로 뒤덮은 도로에는 먼지만 날렸다.

지진으로 전기와 물, 통신 등 인프라가 완전히 끊긴 도시는 폐허로 변했다. 앙상한 잔해만 남은 건물에는 구조대가 위험한 현장을 돌아다녔다. 중장비들은 기계음을 내면서 잔해를 치웠다.

그 옆에서 이재민들이 초조한 표정으로 간절하게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재민들은 당장의 추위와 배고픔도 잊고 자신의 가족을 구조해 달라고 도움을 요청했다.
[안타키아=뉴시스] 권창회 기자 = 11일 오전(현지시간) 튀르키예 하타이주 안타키아 일대에서 이재민들이 폐허 도심 속 이동하고 있다. 2023.02.12. kch0523@newsis.com

[안타키아=뉴시스] 권창회 기자 = 11일 오전(현지시간) 튀르키예 하타이주 안타키아 일대에서 이재민들이 폐허 도심 속 이동하고 있다. 2023.02.12. [email protected]


한 이재민은 기자에게 다가와 자신의 옷을 걷고 양팔을 보여줬다. 그의 팔과 손에는 여기저기 긁힌 상처가 많았다. 구조대가 오지 않아 본인이 직접 건물 잔해를 팠다고 기자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다른 이재민은 기자에게 울면서 "몇 번이나 이야기 했지만 구조대가 오지 않는다"며 자신 대신 구조대를 불러 달라고 호소했다. 도시 전체가 무너져 버린 안타키아에는 가족을 잃어 버린 이재민들이 울음소리가 메아리쳤다. 

시간은 점점 흘러가지만 구조에 나설 수 있는 인원과 장비는 한정되어 있다. 그럴수록 가족을 두고 온 사람들의 마음은 타들어갔다. 애타게 구조대를 부르는 이재민들의 목소리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
[안타키아=뉴시스] 권창회 기자 = 10일 오후(현지시간) 튀르키예 하타이 주 안타키아 시내에서 희생자 유가족들이 희생자 시신을 보며 오열하고 있다. 2023.02.10. kch0523@newsis.com

[안타키아=뉴시스] 권창회 기자 = 10일 오후(현지시간) 튀르키예 하타이 주 안타키아 시내에서 희생자 유가족들이 희생자 시신을 보며 오열하고 있다. 2023.02.10. [email protected]


안타키아 거리에는 담요에 쌓인 시신들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어렵게 유가족에게 돌아간 시신들도 있었지만 워낙 많은 희생자가 나온 탓에 당장 장례를 치르기도 어려웠다.

최악의 현지 상황 때문에 우리 구호대의 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물이 없어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한국에서 공수해 온 발열 식량으로 겨우 식사를 했다. 현장 자체가 위험한 탓에 대원들은 타박상과 같은 부상을 달고 다녔다. 붕대를 감고 구조 현장을 다닌 구조견들을 현지 언론에서 주목하기도 했다. 

우리 구호대는 8명의 생존자를 구조하고, 19구의 시신을 수습했다. 골든 타임이 넘어선 이후에도 생존자를 구조해내면서 인근 주민들에게 큰 감동을 줬다. 한 주민은 구호대 텐트에 "고마워 형"이라고 감사의 인사를 전해 화제가 됐다.
[벨렌=뉴시스] 권창회 기자 = 10일 오전(현지시간) 튀르키예 하타이 주 벨렌 시내 한 아파트에서 토마쉬칸씨가 지진으로 인해 금이 간 아파트 내부를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지진으로 차에서 6일동안 생활중이라고 말했다. 2023.02.10. kch0523@newsis.com

[벨렌=뉴시스] 권창회 기자 = 10일 오전(현지시간) 튀르키예 하타이 주 벨렌 시내 한 아파트에서 토마쉬칸씨가 지진으로 인해 금이 간 아파트 내부를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지진으로 차에서 6일동안 생활중이라고 말했다. 2023.02.10. [email protected]


집을 잃고 차박을 하는 이재민들이 늘어나면서 도시마다 시내는 거대한 주차장이 됐다. 이들이 머물고 있는 차에는 제대로 몸을 뉘일 만 공간이 부족했다. 오랜 차박 생활에 지쳤지만 이재민들은 달리 갈 곳이 없었다. 기자가 왜 대피하지 않았냐고 물어보면 "다른 방법이 없다"고 답했다.

차가 없는 이재민들은 비닐과 담요로 엉성하게 만든 텐트에서 추위를 피했다. 낮에도 영하 가까이 떨어지는 날씨에 추위를 피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이마저도 준비 되지 않은 이들은 노숙을 했다.

튀르키예 정부가 마련한 임시 주거 시설에는 이재민들이 대거 몰려왔다. 그러나 여기도 상황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이재민들을 위해 텐트를 설치하긴 했지만 추위를 피하기 역부족이었다. 임시 시설에서 만난 사람들은 추위가 가장 큰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학교와 관공서는 구호품을 배분하는 공간으로 변했다. 구호품이 있는 곳에는 경찰과 군인들이 경계를 섰다. 이재민들은 차분하게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주변 식당과 마트가 문을 닫으면서 그나마 생필품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가지안테프=뉴시스] 권창회 기자 = 13일 오후(현지시간) 튀르키예 가지안테프주 시내 가지안테프역 인근에 이재민 보호시설이 마련돼 있다. 가지안테프는 이번 튀르키예 지진 1차 진앙지이다. 2023.02.14. kch0523@newsis.com

[가지안테프=뉴시스] 권창회 기자 = 13일 오후(현지시간) 튀르키예 가지안테프주 시내 가지안테프역 인근에 이재민 보호시설이 마련돼 있다. 가지안테프는 이번 튀르키예 지진 1차 진앙지이다. 2023.02.14. [email protected]

도시를 이동하면서 들른 휴게소에서는 안전한 곳을 찾아 대피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하타이 주 한 휴게소에서 만난 가족은 북쪽으로 이동해 코니아로 가고 있었다. 그 곳에 연고는 없지만 가서 호텔에 머무를 작정이라고 했다. 집을 잃은 그들은 전기와 물조차 끊긴 도시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며, 구호품 조차 제대로 도착하지 않아 무작정 길을 나섰다고 말했다.

도로로 이동하면서 지진으로 부서진 차를 타고 어디론가 향하는 이재민들도 있었다. 군데군데 성한 곳이 없는 차에는 짐이 가득 실려 있었다.

이재민들이 도로로 쏟아져 나오면서 기름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당장 전기가 끊어지자 기름으로 발전기를 돌리려는 사람들이 몰리면서 주유소에는 긴 대기줄이 생겼다.
[하타이=뉴시스] 권창회 기자 = 튀르키예 지진으로 집을 잃어 트럭에서 생활하는 이재민 가족들이 13일 오전(현지시간) 튀르키예 하타이주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들은 지진으로부터 안전한곳으로 이동중이라고 말했다. 2023.02.13. kch0523@newsis.com

[하타이=뉴시스] 권창회 기자 = 튀르키예 지진으로 집을 잃어 트럭에서 생활하는 이재민 가족들이 13일 오전(현지시간) 튀르키예 하타이주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들은 지진으로부터 안전한곳으로 이동중이라고 말했다. 2023.02.13. [email protected]

현지 생활은 쉽지 않았다. 지진으로 호텔과 식당이 문을 닫으면서 먹고 자는 기본적인 일들을 하기 어려웠다. 매 끼니 챙겨 먹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고, 호텔을 구하지 못하는 날은 차박을 했다.

여진에 대한 공포로 작은 흔들림에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차박을 하면서 진동을 느끼기도 했고, 호텔에서 자다가 큰 소리가 들리자 놀라서 깨기도 했다.

제일 힘들었던 점은 현지 상황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일이었다. 표현할 수 없는 참상을 글로 옮기는 일이 어려워 밤을 새우기도 했다.
[하타이=뉴시스] 권창회 기자 = 13일 오전(현지시간) 튀르키예 하타이주 고속도로에서 이재민이 파손된 차량에 임시조치를 한채 이동하고 있다. 2023.02.13. kch0523@newsis.com

[하타이=뉴시스] 권창회 기자 = 13일 오전(현지시간) 튀르키예 하타이주 고속도로에서 이재민이 파손된 차량에 임시조치를 한채 이동하고 있다. 2023.02.13. [email protected]


열악한 현지 상황에도 튀르키예 사람들을 보면서 힘을 낼 수 있었다. 한국에서 온 취재진이라는 사실을 무척 신기해 하면서 반가워했다. '코레(한국)'라는 단어 한 마디로 대화가 쉽게 풀렸다.

취재진을 돕고 싶다며 먼저 다가오기도 했다. 우리에게 식사와 물을 주고 싶다며 찾아오는 사람들을 하루에도 수차례 말려야 했다. 구호품이 넉넉하지 않은 상황이지만 튀르키예 사람들은 먼 나라에서 온 취재진까지 챙기려 진심으로 노력했다.

몸은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마음은 여전히 튀르키예에 남아 있다.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그들이 하루 빨리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란다.
[이스탄불=뉴시스] 권창회 기자 = 17일 오후(현지시간) 튀르키예 이스탄불 국제 공항 내 전광판에 세계각국의 지진 피해 지원에 대한 감사를 뜻하는 문구가 표시되고 있다. 2023.02.17. kch0523@newsis.com

[이스탄불=뉴시스] 권창회 기자 = 17일 오후(현지시간) 튀르키예 이스탄불 국제 공항 내 전광판에 세계각국의 지진 피해 지원에 대한 감사를 뜻하는 문구가 표시되고 있다. 2023.02.17. [email protected]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