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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출생통보제 통과에도…있지만 없는 '유령아동' 엠마

등록 2023.07.02 08:30:00수정 2023.07.02 08:3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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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통보제 국회 통과에도 남은 '사각지대'

"아이가 자신이 불법인 것 알게 될 때가 걱정"

[서울=뉴시스] 서울의 모 이주민 지원센터에서 미등록 체류자 신분인 재스민(가명)씨가 엠마(가명)를 안아 들고 있다.(사진=본인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서울의 모 이주민 지원센터에서 미등록 체류자 신분인 재스민(가명)씨가 엠마(가명)를 안아 들고 있다.(사진=본인 제공)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임철휘 기자 = 태어난 지 2년이 지났지만, 엠마(가명)에겐 '공식적인' 이름이 없다.

최근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지만, 거기에 적힌 이름도 어디까지나 가명이다. 미등록 체류 외국인인 부모가 엠마를 낳은 후 즉각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엠마는 법과 제도에는 없는 '유령 아동'인 셈이다.

국내에서 태어난 외국인 아동은 지방 출입국이나 대사관에 출생 사실을 신고하고, 법무부 출입국 관리법의 적용을 받는다.

하지만 미등록 체류 외국인 상당수는 신분 노출이 두려워 신고를 꺼린다. 신분이 없는 아동들은 자연스레 아동으로서 제공받아야 할 학습권, 발달권, 건강권 등의 사각지대에 놓인다.

외국인 미등록 아동의 일생은 부모의 불안한 신분과 함께 시작된다.

지난달 30일 뉴시스 취재진이 만난 엠마의 엄마 재스민(가명)은 미등록 체류자다.

필리핀 출신 재스민은 2016년 주한 외국인 공관의 가사도우미로 합법적으로 한국땅을 밟은 뒤 4년8개월을 일했다.

그러나 5년 이상 장기근무 시 나오는 장기체류 비자 발급을 앞두고 체류 연장 허가를 받지 못했다. 재스민은 외국인 노동자에서 미등록 외국인, 이른바 '불법체류자'가 됐다.

재스민은 미등록 신분이 된 이듬해 딸 엠마를 낳았다. 그러나 출생 신고는 하지 못했다. 미등록 체류자 신분이 발각돼 추방될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는 "(한국에서) 쫓겨날까 봐 무서웠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영어학원 강사로 일하며 안정적인 체류 비자가 있는 영국 국적 아이 아빠 밑으로 출생 신고를 할 수도 있었지만, 아이의 아빠는 임신 소식을 전해 듣고는 재스민 집으로 향하던 발길을 끊었다.

그 사이 아이는 자랐고, 지금 아빠는 양육비 명목으로 매달 25만원을 보낸다고 한다. 월세 28만원, 엠마의 어린이집 비용 37만원, 분유와 기저귓값 등 생활비를 감당하기엔 턱없다. 재스민은 "(엠마를) 혼자 책임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영유아라면 필수적으로 맞아야 하는 예방접종 하나를 맞히는 데도 큰 어려움을 겪었다. 원래는 지역 보건소가 미등록 아동에게도 필수 예방접종을 무료로 제공했지만, 코로나19 대응으로 보건소의 여러 업무가 중단된 탓이다. 재스민은 "갓 태어난 아이를 데리고 최대 수십만원까지 하는 접종료를 부담하며 일반 병원을 전전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먹고살기가 빠듯해 딸이 아플 때 주위에서 돈을 빌리는 것은 이제 일상이 됐다"고도 말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데다 외국인 의료 수가까지 적용돼 치료비가 일반 국민보다 최소 2배 이상 나오기 때문이다.

아이를 돌봐야 해서 일도 끊겼다. 알음알음 주위의 소개로 이곳 저곳 가정집을 전전하며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게 전부였는데, 한 달에 쥐는 돈은 50만원도 채 되지 않았다.

재스민은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말한다. 그는 "활발한 성격의 아이가 나중에 자신이 '불법체류자'라는 것을 알게 될 때가 걱정"이라고 했다.
[서울=뉴시스] 서울의 모 이주민 지원센터에서 미등록 체류자 신분인 재스민(가명)씨가 엠마(가명)를 안아 올리고 있다.(사진=본인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서울의 모 이주민 지원센터에서 미등록 체류자 신분인 재스민(가명)씨가 엠마(가명)를 안아 올리고 있다.(사진=본인 제공)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감사원이 최근 찾아낸 2015~2022년의 출생등록이 안 된 '임시신생아번호'(출생 직후 예방접종을 위해 부여되는 임시번호)는 6000여개였다. 이 가운데 임시신생아번호는 있지만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동은 2000여명으로 나머지 4000여명은 출생신고 의무가 없는 외국인 체류자의 자녀인 것으로 드러났다.

법무부는 지난해 말 기준 국내에 체류 중인 19세 이하 미등록 이주 아동의 수를 5078명으로 집계했다. 학계에서는 미등록 신분 외국인이 아동의 출생신고를 꺼리는 것을 감안해 미등록 아동의 수를 2만여명으로 추산하기도 한다. 전국에 다른 엠마가 몇이나 될지 가늠할 수도 없는 셈이다.

의료기관이 아이의 출생 사실을 지방자치단체에 통보하게 하는 '출생통보제'가 이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내국인만 대상이라 외국인 미등록 아동은 여전히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유엔난민기구 역시 한국 국회를 향해 "출생통보제 논의에서 외국인 아동의 출생등록이 충분히 고려되지 못한 부분에는 아쉬움을 표한다"고 지적했다.

국회에는 내국인이 아닌 외국인 아동까지 출생 등록 제도에 포함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법안이 발의돼 논의 중이다. 지난 15일 소병철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발의한 개정안에는 자녀를 등록한 외국인에게 불이익을 줄 수 없다고 명시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다만 법 통과까지는 다시 지난한 과정이 예상된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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