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찾아온 '네이처' 편집장…"과학에도 성별·인종·연령 등 다양성 반영해야"
한국 찾은 첫 네이처 편집장 막달레나 스키퍼 박사…'성별 분석' 강조
"여러 다양성 인식해야 전체 세계 이해 가능…점진적 변화 이끌 것"
[서울=뉴시스]세계 3대 과학학술지인 '네이처(Nature)' 편집장을 맡고 있는 막달레나 스키퍼 박사가 4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윤현성 기자)
세계 3대 과학학술지 중 하나인 '네이처(Nature)'의 편집장을 맡고 있는 막달레나 스키퍼 박사는 전 세계 과학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두고 '다양성'을 강조하며 이같이 밝혔다. 스키퍼 박사는 네이처와 과학기술젠더혁신센터가 공동 개최하는 '네이처 포럼'을 위해 방한한 뒤 4일 국내 언론과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네이처 편집장이 한국을 찾아온 것은 스키퍼 박사가 처음이다.
"성별 특성 반영 연구 아직 미흡…다양성 제대로 인식해야 전체 세계 이해 가능"
스키퍼 박사는 "현재 연구를 업으로 삼고 있는 여성의 비율은 약 30% 정도로 추산된다. 1869년 네이처가 창간됐을 때보다 많이 발전됐지만 여전히 경력이 많은 시니어 연구자일수록 남성 비율이 훨씬 높다"며 "성별 특성을 반영한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 지도 중요한데, 이에 대해서는 아직 많은 문제가 있고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신약이 승인 받았을 경우 남녀의 생리적 특성, 적정 투여량, 독성 작용 기전 등 성별에 따른 효과를 충분히 반영 못해 약효에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스키퍼 박사는 이같은 생리의학 측면 뿐만 아니라 자동차 안전벨트 같은 경우 연구 범위가 남성의 상반신을 기준으로 설계돼 여성이 더 많은 피해를 입을 수 있고, 음성 인식 등도 주로 남성 데이터를 활용해 여성보다 남성에 대한 음성인식 정확도가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강조했다. 성별 특성을 반영한 연구가 전반적으로 미흡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스키퍼 박사는 "세계는 동일한 집단으로 구성되지 않고 굉장히 다양한 여러 부분으로 나눠진다. 역사적으로 과거의 많은 과학 연구는 남성과 유럽인을 대상으로 이뤄졌는데, 이는 전세계의 일부 만을 대변할 뿐이다"라며 "전체에 대해 이해하려면 그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측면을 알아야 한다. 만약 연구에 있어 다양성이 줄면 그만큼 이해의 폭도 줄어들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최근 네이처가 성과 젠더와 관련된 부분을 더 강조하고 있긴 하지만, 연구 설계부터 결과 보고에 이르기까지 인종, 민족, 지리적 위치, 연령 등 연구와 관련된 모든 다양성의 지표들을 보고하라는 가이드도 갖고 있다"며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측면을 이해해야만 올바른 연구 질문을 하고, 그에 대한 결과를 얻고, 더 나은 이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또 스키퍼 박사는 네이처가 성별 보고 기준 강화 편집정책을 마련한 것에 대해서도 갑작스럽게 새로운 정책을 내놓은 것이 아니라 연구계와 장기간에 걸쳐 꾸준히 교류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밝혔다. 네이처가 학계를 이끄는 선도자 역할을 하면서도 연구자들이 거부감을 느끼거나 반발하지 않도록 차근차근 변화를 가져왔다는 설명이다.
막달레나 스키퍼 박사는 오는 5일 네이처와 과학기술젠더혁신센터가 공동 개최하는 '네이처 포럼'을 위해 네이처 편집장 중 처음으로 방한했다. (사진=과학기술젠더혁신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韓 연구진, 바이오·소재·AI 등 두각…장기적·광범위 연구에도 관심 가져야"
그는 "그간 과학기술이 남성, 유럽계 위주로 진행돼온 건 역사적 이유도 있지만, 연구 대상이 국한됐던 만큼 세상을 불완전하게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며 "한국 과학자 뿐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다양한 곳에서 연구가 진행될수록 다양한 관점에서 다양한 연구 질문이 나오고, 같은 문제에 대해서도 새로운 접근 방식을 취하는 등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분석했다.
이어 "한국 연구진이 바이오, 소재, 로봇, 인공지능(AI) 등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는 건 모두가 잘 알고 있다"며 "중요한 점은 당장의 혁신, 발견처럼 뭔가 대단해보이는 연구만 중요한 게 아니다. 장기적으로 더 중요성을 가지는 연구들이 많고 여기에도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부연했다.
특히 스키퍼 박사는 국내 학계의 염원 중 하나인 과학 부문 노벨상 수상에 대해서도 "노벨상의 권위가 높은 건 맞지만 노벨상이 존재하는 학문 분야만 중요한 건 절대 아니다"라며 "사실 노벨상은 카테고리가 굉장히 좁게 정해져 있는데, 그 외의 학문 분야에 대해서도 인정하고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 나아가 한국이라는 1개 국가의 연구 수준에만 갇히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초월해서 다양한 지역에 영향을 미치고 기여할 수 있는 연구에도 관심을 둬야 한다"고 제언했다.
최근 국내외 학계를 뒤흔들었던 국내 연구진의 상온 상압 초전도체 'LK-99'에 대한 의견도 내놨다. 네이처는 LK-99의 진위 여부를 두고 '초전도체가 아닌 불순물일 뿐'이라는 기사를 게재하는 등 부정적 입장을 보여왔다.
이에 대해 스키퍼 박사는 "중요한 과학적 발견이나 연구는 단순하게 직선적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뒤로 물러나거나, 다른 방향으로 가거나, 추가 시도를 하는 등 굉장히 왔다갔다하면서 진보를 하게 된다"며 "초전도체 연구도 이런 자연스러운 과정이 적용되는 것이라고 보고 있고, 앞으로도 초전도체에 대한 연구는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네이처 포럼은 '성별(Sex and Gender) 분석을 통한 과학 연구 우수성 향상'을 주제로 오는 5일 개최된다. 스키퍼 박사는 '연구에서의 성과 젠더: 과학연구의 우수성을 높인다'라는 주제로 기조연설을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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