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난 사각지대 놓인 가족돌봄청년…'안심소득'으로 '내일' 꿈꾸게 돼"[인터뷰]

등록 2024.04.20 06:00:00수정 2024.04.20 06:34:53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서울시 안심소득 시범사업 3단계에 선정

"명칭도 생소하고 가장 사각지대 놓여있어"

"아픈 가족 돌보면서 심리·경제적 부담 커"

"1년 간 시 지원 받으면서 미래 꿈꾸게 돼"

[서울=뉴시스] 김근수 기자 =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18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린 서울 안심소득 시범사업 3단계 약정식에서 안심소득 지원 가구 대상 시민들과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04.18. ks@newsis.com

[서울=뉴시스] 김근수 기자 =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18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린 서울 안심소득 시범사업 3단계 약정식에서 안심소득 지원 가구 대상 시민들과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04.18.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이재은 기자 = "어린 시절부터 아픈 동생을 돌보면서 오늘만 견디자는 생각으로 살았어요. 안심소득 덕분에 '내일'을 꿈꿀 수 있게 돼서 너무 다행입니다."

29살 박모씨는 어린 시절 가정폭력의 피해자인 동시에 우울증을 앓고 있는 동생을 돌보고 있는 가족돌봄청년(영케어러)이다. 박씨 또한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다.

'가족돌봄청년'은 신체적·정신적 질병이나 장애를 지닌 가족 구성원을 돌보고,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아동·청소년·청년(9~34세)을 말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제대로 된 명칭이 없었고, 실태조사도 전무해 취약계층 중에서도 가장 소외된 이들이었다. 2021년 생활고 탓에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방치해 죽음에 이르게 한 20대 아들의 '간병 살인'을 계기로 가족돌봄청년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하지만 여전히 가족돌봄청년에 대한 지원책은 미비한 실정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고립·은둔청년에 이어 가족돌봄청년 지원에 힘쓰고 있다. 지난해 전국 최초로 가족돌봄청년에 대한 상담부터 사후관리까지 원스톱으로 지원하는 전담기구를 설치했다.

또 최근 안심소득 시범사업 3단계에 가족돌봄청년을 중점으로 선정했다. 안심소득은 기준소득 대비 부족한 가계소득의 일정분을 채워주는 소득보장실험으로 오 시장의 역점사업 중 하나다.

소득이 적을수록 더 많이 지원하는 '하후상박'형 복지제도로 소득 양극화와 복지사각지대 해소가 목적이다. 현행 복지제도 문제점 중 하나인 재산의 소득환산과 근로능력, 부양가족 유무 등 복잡한 입증 절차를 없애고 소득과 재산 기준으로만 지원대상을 선정하는 것이 특징이다.

올해 안심소득 지원대상은 '가족돌봄청년'은 128가구, '저소득 위기가구'는 364가구다. 이들은 내년 3월까지 1년 간 기준 중위소득 85% 기준액과 가구소득 간 차액의 50%를 매월 받는다.

시는 지난 18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안심소득 시범사업 3단계 약정식'을 개최했다. 이날 약정식에서 만난 박씨는 지난해 2단계 모집에서 떨어진 이후 마지막 기회라는 심정으로 3단계에 재신청했다고 한다.

SH 청년 행복주택에 살고 있는 박씨는 동생과 둘이 살고 있지만 규정상 형제, 자매 등 동거인은 전입이 불가해 1인가구로 돼 있어서 이번 3단계 자격 요건에도 충족되지 않았다.

박씨는 "제가 직접 관계자분들에게 연락해 상황을 고려해달라고 부탁드렸다. 동생을 돌보고, 같이 살고 있다는 증거 자료를 모아서 제출했다"며 "신청 마지막 날까지 가능성이 희박해서 포기해야 하나 싶었는데 제 사연을 듣고 동사무소 담당자, 사회복지사님께서 열심히 도와주신 결과 선정됐다"고 말했다.

이어 "저와 비슷한 처지인 가족돌봄청년이 굉장히 많다. 정책을 모르거나 자격요건이 안 돼 시도조차 못하고 포기한다. 우리는 취약계층 중에서도 가장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면서 "담당자들도 개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매뉴얼이 없기 때문에 제가 하나하나 설명할 때가 많다"고 했다.

심리·경제적 부담을 홀로 떠안고 있는 이들에겐 미래를 꿈꾸는 것조차 어렵다.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결국 고립·은둔청년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박씨 또한 학업을 이어가기 위해 몇 차례 대학에 입학했으나 매번 졸업을 하지 못했고, 대기업에 취직해도 아픈 동생을 돌보기 위해 풀타임 근무가 어려워 퇴사를 반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육아휴직과 달리 가족돌봄휴직은 회사에서 받아들여주기가 쉽지 않다. 결국 아르바이트만 전전하게 되고, 재취업을 하려면 공백기에 대한 설명을 요구 받게 된다. 나는 열심히 살고 있는데 결론적으로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사람이 돼버렸더라"며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보니 몇 년 동안 아무도 만나지 않고 집에서 동생이랑만 지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가스, 전기가 다 끊기고 채권 추심까지 들어오는 상황까지 몰리자 사채를 빌리게 됐다. 은행 대출도 받지 못하니까 불법에 연루될 수밖에 없었다. 제일 힘들었던 게 동생한테 치료비를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했을 때"라면서 "한부모 가정, 탈북자와 달리 저 같은 사람을 위한 복지체계가 없었다"고 울먹거렸다.

돌봄청년들이 극한 상황에 내몰리다보면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박씨는 "악순환이 계속 되니까 아플 수 밖에 없다. 아픈 가족을 돌보려면 나부터 건강해야 하는데 알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동생이 아픈데 밖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아르바이트 회식을 가는 것도 미안하고 사치 같았다"고 말했다.

박씨는 사회복지사라는 새로운 목표도 생겼다. 안심소득사업을 신청하는 과정에서 도움을 준 사회복지사들에게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앞으로 지원을 받는 1년 동안 일을 줄일 수 있고, 동생이랑 시간을 오래 보내면서 공부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숨통이 트인다"고 말했다.

이어 "제 힘든 사정을 계속 얘기하는 게 힘겨워도 이런 지원이 확대만 된다면 수천 번 말할 수 있다. 저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청년들이 일을 하고 사회로 나올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