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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조형물에 스프레이 뿌린 활동가…대법 "재물손괴 아냐"

등록 2024.05.30 11:31:39수정 2024.05.30 12:4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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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심 유죄…대법 "효용 해쳤다 보기 어려워"

대기업 조형물에 스프레이 뿌린 활동가…대법 "재물손괴 아냐"


[서울=뉴시스] 이종희 기자 = 대기업 회사 조형물에 수성 스프레이를 분사하고 물로 세척한 기후활동가의 행위를 재물손괴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은 30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재물손괴 등의 혐의로 기소된 청년기후활동가 2명에 대한 상고심에서 벌금형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수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청년기후긴급행동 활동가 2명은 지난 2021년 2월 두산중공업(현 두산에너빌리티)의 베트남 석탄화력발전소 신규 건설 참여를 비판하기 위해 경기도 성남시 본사 건물 앞 광장에 설치된 '두산(DOOSAN)' 조형물에 녹색 수성 스프레이를 뿌려 손상시키고, 관할 경찰서에 신고하지 않고 조형물에 올라가 현수막을 들고 구호를 외쳐 시위를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재판에서 기업의 환경 파괴 행위를 알리려는 시위 목적을 고려하면 사회상규상 위배되지 않는 정당행위라고 주장했다. 또한 조형물에 뿌린 수성 스프레이는 물과 스펀지로 깨끗이 지울 수 있었기 때문에 재물을 손괴했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1심과 2심은 집시법 위반과 재물손괴 혐의에 대해 모두 유죄로 인정해 이들에게 각각 벌금 300만원, 200만원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기업의 활동을 비난하려는 뜻으로 조형물의 전면을 초록색 페인트로 얼룩덜룩하게 칠했고 결국 이를 제거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노력과 비용이 소요됐다"며 "조형물 하단부의 대리석에 스며든 페인트 일부는 제거하지 못해 원상회복이 불가능하게 된 점을 고려하면 조형물의 효용을 해쳤다고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2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합법적인 수단과 방법을 통해 피고인들의 의견을 전달할 수 있었음에도 이 사건 조형물에 임의로 녹색 스프레이를 뿌려 훼손했다"며 "그 행위가 긴급하고 불가피한 수단이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대법원은 조형물의 원상회복에 드는 난이도와 비용 등을 고려하면 효용을 해쳤다고 보기 어렵다고 보고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피고인들은 기후위기를 알리는 표현의 수단으로 이 사건 조형물에 수성 스프레이를 분사한 직후 바로 세척하는 행위를 했다"며 "조형물을 본래의 사용 목적이나 기능에 제공할 수 없거나 원상회복이 어려운 상태로 만들어 그 효용을 해하는 행위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여기에 형법상 재물손괴죄를 쉽게 인정한다면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게 될 위험이 있어 민사상 손해배상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일부 스프레이가 대리석 등에 남은 것에 대해 "문자 부분을 지지하는 대리석 부분 중 극히 제한적인 범위에 한정되는데, 대리석의 재질이 수성스프레이가 분사되면 물로 세척이 곤란한지 여부를 알 수 없다"며 "대리석 부분은 야외에 설치되어 비, 바람, 오수와 오물 등에 노출된 상태여서 자연스럽게 오염되거나 훼손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했다.
     
다만, 이번 판결로 조형물에 낙서하는 행위가 모두 재물손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긴 어렵다. 이날 대법원 판단의 취지는 로고가 적힌 조형물의 효용을 훼손하지 않아 재물손괴죄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사안마다 유·무죄가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다. 앞으로 진행될 유사 사건의 재판 결과를 예단하기는 어렵다"며 "도로에 스프레이를 뿌린 경우 그로 인해 차로 구분 및 지시 표시 등 기능에 효용을 해쳤다면 재물손괴가 인정될 수 있다"고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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