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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미야자키 하야오 형편없는 현실인식, 애니메이션 ‘바람이 분다’

등록 2013.09.04 00:41:04수정 2016.12.28 08: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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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태은 문화전문기자 =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부로 불리는 스튜디오 지브리 설립자 미야자키 하야오(72)의 신작 ‘바람이 분다’(風立ちぬ)가 9월 한국 개봉을 앞두고 묘한 기류에 휩싸였다. 자칫 관람 거부운동으로 번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바람 불다’는 직역으로 먼저 알려진 이 애니메이션은 수입사에 의해 ‘바람이 분다’라는 제목으로 확정됐다. 원제는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로 유명한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의 시구를 딴 일본 소설의 제목을 차용한 것이다. 일본에서도 “영상미만 빼고는 기대에 못미치는 작품”이라는 평이 꽤 있지만, 개봉 첫주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며 흥행에 성공할 조짐이다.  ‘지의 정원’,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 등으로 국내에서도 유명한 작가 다치바나 다카시(73)를 7월초 도쿄국제도서전에서 만났다. 같은 달 20일 일본에서 개봉하는 ‘바람이 분다’의 팸플릿에 들어갈 2400자 정도의 해설을 쓰고 있다며 이를 위해 호리코시 지로에 대한 10권 이상의 책을 비롯, 수많은 서적을 읽었다며 상세한 얘기를 들려줬다.  주인공 ‘호리코시 지로’는 쇼와 시대(1926~1989년 히로히토 일왕시대)를 산 실존인물인 제로센 전투기 설계자 호리코시 지로(1903~1982)와 동시대 유명 소설가 호리 타츠오(1904~1953)를 합친 인물이다. 비행기를 만드는 얘기만으로는 지루할 수 있으므로 호리 타츠오의 자전적 사소설 ‘바람이 분다’의 로맨스를 가미했다는 것이다. 결핵환자로 부잣집 딸이었던 야노 아야코(소설 속 세츠코)와의 연애와 사별이 주요 내용이다. (폐병 걸린 미소녀 캐릭터의 원형이 되는 소설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작품 속 호리코시 지로는 어려서부터 비행기를 동경하다가 상상해온 비행기를 만들기 위해 업계로 들어서게 된다. 이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밝혔듯 감독의 아버지는 물론, 자기자신의 모습도 반영한 듯하다. 아버지 가추지는 집안이 소유한 미야자키 항공사의 관리자로 일하며 제로센의 방향타를 제작했고, 군국주의 덕분에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낸 미야자키 하야오의 어릴 적 꿈도 비행기 조종사가 되는 것이었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애니메이션 속 호리코시 지로는 어려서 외국 비행기 잡지를 읽으며 이탈리아 비행기 제작자 카프로니 백작을 선망하게 됐고 실제 만난 적은 없지만 꿈속에서 몇 차례 대화를 나눈다. 스튜디오 지브리 역시 카프로니가 만든 비행기 이름에서 따왔다. 실제로는 사막의 열풍을 뜻하는 ‘기블리’에서 온 것으로, 미야자키가 잘못 읽어서 지브리가 됐지만 이제는 지브리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도쿄대(도쿄제국대학) 항공연구소는 호리코시 지로가 다닌 항공학과 부속으로 관동대지진으로 후카가와에 있는 항공연구소가 괴멸되면서 이전, 도쿄대 제2캠퍼스인 고마바에 위치하게 됐다. 전후 점령군에 의해 일본에서의 항공연구가 금지되면서 이화학연구소로 변경되며, 이후 도쿄대 우주항공연구소가 됐다는 것이다. 호리코시 지로는 사가미하라 쪽으로 이전한 시기에 이곳에서 강사로 일하기도 했다. 현재는 첨단과학기술연구소로 남았다고 한다.  당시는 목조 비행기가 금속제로 바뀌는 시기였는데, 작품 속에서 호리코시 지로는 독일에서 듀랄루민이 스팀난방기에까지 사용되는 것을 보고 기술력의 천양지차에 놀랐다. 선진화된 유럽의 기술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 실패를 거듭하다가 결국 제로센을 개발한다는 스토리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미화해도 제로센이 진주만 공습에 투입되고 일본 자살특공대인 가미카제 전투기로 쓰였으며, 제조사 미쓰비시 중공업은 조선인을 강제징용해 노동력을 착취했고(미쓰비시는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에 대한 손해배상을 거부해 현재까지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배경이 된 관동대지진에서 조선인 대학살이 자행됐고, 모델이 된 호리코시 지로가 자신이 만든 제로센이 일본군의 대승에 기여했다는데 자부심을 가졌던 인물이라는 점에는 변화가 없으며, 이에 대한 비판과 반성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 중평이다.  반전주의자라면서 밀리터리(전쟁무기) 마니아인 모순을 지닌 미야자키 하야오는 고유한 판타지 세계를 창조하며 국내에서도 수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다. 그러나 그의 말년에 나온 사실주의적 성인물에서 그의 본심이 드러난 것 아니냐는 실망어린 평가도 나오고 있다.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들고 싶다”며 “비행기를 살육과 파괴의 도구가 되는 숙명”이라는 말을 애써 회피하는 극중 주인공의 모습처럼 말이다.  일본 내에서도 논란을 일으킨 ‘바람이 분다’라는 일본어 타이틀을 구글 검색창에서 넣어보면 관련검색어로 ‘한국(韓国)’이 가장 먼저 뜬다. 그만큼 한국에서의 반응을 의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지브리 스튜디오는 7월26일 무려 60여명의 한국기자들을 초청해 시사회와 함께 미야자키 하야오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같은 사실은 이례적으로 다음날인 27일자로 일본 주요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일본최대 일간지 요미우리 신문은 “제로센 디자이너 호리코시 지로를 모델로 한 청년을 주인공으로 하는 것 등이 영화 개봉 전 한국의 인터넷상에서 비판되고 있는 것에 대해 미야자키 감독은 ‘당시 비행기를 만들려고 생각하면 군용기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호리코시 지로가 옳다고 생각하고 영화를 만든 것은 아니지만 그가 잘못했다고 쉽게 단정 짓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교도 통신은 “한국의 넷상에서 ‘전쟁을 미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는 것에 대해 미야자키 감독이 ‘그 시대를 열심히 살아간 사람을 그 이유만으로 단죄해도 좋은 것인지 의문을 느꼈다’고 답했으며,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이 진작에 청산해야했다. 하시모토 토루 오사카 시장의 발언이 문제가 되는 것은 굴욕이다. 일본은 한국과 중국에 사과해야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수입·배급사는 아무래도 광복절이 있는 8월을 넘기는 것이 아무래도 직접적인 비난의 화살을 피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는지, 9월로 국내 상영을 잡고 있다. 그러나 예고편부터 국내 네티즌들의 비판을 피해가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유투브에 공개된 영상에서 ‘과거 일본에서 전쟁이 일어났다’는 한글자막이 나오며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일본이 전쟁을 일으켰다’는 표현이 올바른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훗날 신화가 된 제로센의 탄생’이라는 표현도 연료를 많이 싣지 못하고 불이 잘붙어 무모한 자살공격에나 사용되던 것을 신격화한 데다가 전쟁 피해자들을 고려하지 않은 망언이라고 짚고 있다.  일본에 거주하며 현지 개봉한 이 애니메이션을 먼저 접한 한국인들의 분노도 거세다. “미국에서 핵폭탄 을 만든 오펜하이머를 주인공으로 ‘폭탄 터지다’라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일본에서 개봉하면 참 볼만하겠다. 철저히 자신들을 피해자로 묘사한다”, “전쟁 참화를 다루는 영화임에도 그 원인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침묵한다. 명백한 일본 자국민의 자위용 우익영화다. 과거 개념발언을 했다고 해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런 기만적 태도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등의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일부에서는 “작품성을 떠나 이런 작품을 꼭 국내에 상영해야하겠느냐”며 관람거부운동이라도 벌여야하는 것이 아니냐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일본 NHK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제로센, 개발자가 본 비극’을 보면 제로센은 개인이 만든 것을 군이 이용한 것이 아니라 일본해군에서 제작을 의뢰해 만들어진 것이다. 제로센 제작을 도운 사람 중에는 2차세계대전 전범 도조 히데키의 차남도 있다. ‘바람이 분다’는 이를 외면하고 개발자의 순수한 의도만 부각시킨다면서 말도 안 되는 포장을 하고 있다. 그 자체로 일본이 전범 국가라는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국내 상영은 절대 안 될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도 있다.  “일단 작품을 보고 나서 판단하겠다”는 의견도 있지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좋아하나 이번 작품은 소재만으로도 국내 개봉을 거부해야한다”, “타국의 죄없는 생명을 사지로 몰아간 중심인물을 내세워 청춘과 사랑을 묘사하다니 관객모독”이라는 유의 질타가 더 눈에 띄는 상황이다.  tekim@newsis.com

※이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서울=뉴시스】김태은 문화전문기자 =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72)는 판타지의 세계에 머물러야했다. 그가 처음으로 실존인물을 등장시킨 ‘바람이 분다’는 자신의 형편없는 현실·역사 인식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작품 속에서 언급되는 ‘모순’을 넘어 자기분열을 보이다가 결국 자기위안으로 마무리한다. 공상에서는 이런 것들이 용납될 여지가 있지만, 현실세계로 넘어오면 자가당착이 된다.

 두 번이나 은퇴 의사를 번복한 미야자키는 또 다시 은퇴를 선언했다. 1일(현지시간) ‘바람이 분다’가 경쟁부문에 진출한 제70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지브리 스튜디오의 호시노 고지 사장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라고 했다. 앞서 스즈키 도시오 프로듀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유언과 같은 작품”이라고도 말했다.

 미야자키가 기획·각본·감독한 ‘바람이 분다’는 그만큼 그의 밑바닥까지 박박 긁어 만든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고령이기도 하지만 더 이상 쥐어짜낼 만한 창작력이 바닥났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이것이 그의 유언이라면, 작품의 주인공 지로는 스스로의 모습을 반영한 자기고백이기도 하다. 실제로 집안이 운영한 미야자키 항공사에서 지로가 설계한 제로센 전투기의 방향타를 제작했고, 미야자키의 꿈도 지로처럼 비행기 조종사가 되는 것이었다.

 실사가 아닌 애니메이션이라고 해도 실제 역사배경과 실존인물을 등장시켰다면 좀 더 사실을 고려해야했다. 역사적 사실들을 모두 건너 뛴 이 정도의 묘사라면 미화와 왜곡을 넘어선 ‘조작’이다. 전쟁과 난리 통에서도 작품 속 세계는 지독히 정적이고 서정적이다. 일본 육군과 해군이 전투기 제작을 의뢰하고 테스트하러 오가는데도 나고야 미쓰비시 중공업은 비행기를 연구하고 제작하는 젊은이들의 꿈과 열정이 넘치는 대학 캠퍼스 같다. (미쓰비시 나고야 항공제작소는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이 강제노역을 하고도 임금을 받지 못한 대표적 전범기업 중 한 곳이다)

【서울=뉴시스】김태은 문화전문기자 =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부로 불리는 스튜디오 지브리 설립자 미야자키 하야오(72)의 신작 ‘바람이 분다’(風立ちぬ)가 9월 한국 개봉을 앞두고 묘한 기류에 휩싸였다. 자칫 관람 거부운동으로 번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바람 불다’는 직역으로 먼저 알려진 이 애니메이션은 수입사에 의해 ‘바람이 분다’라는 제목으로 확정됐다. 원제는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로 유명한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의 시구를 딴 일본 소설의 제목을 차용한 것이다. 일본에서도 “영상미만 빼고는 기대에 못미치는 작품”이라는 평이 꽤 있지만, 개봉 첫주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며 흥행에 성공할 조짐이다.  ‘지의 정원’,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 등으로 국내에서도 유명한 작가 다치바나 다카시(73)를 7월초 도쿄국제도서전에서 만났다. 같은 달 20일 일본에서 개봉하는 ‘바람이 분다’의 팸플릿에 들어갈 2400자 정도의 해설을 쓰고 있다며 이를 위해 호리코시 지로에 대한 10권 이상의 책을 비롯, 수많은 서적을 읽었다며 상세한 얘기를 들려줬다.  주인공 ‘호리코시 지로’는 쇼와 시대(1926~1989년 히로히토 일왕시대)를 산 실존인물인 제로센 전투기 설계자 호리코시 지로(1903~1982)와 동시대 유명 소설가 호리 타츠오(1904~1953)를 합친 인물이다. 비행기를 만드는 얘기만으로는 지루할 수 있으므로 호리 타츠오의 자전적 사소설 ‘바람이 분다’의 로맨스를 가미했다는 것이다. 결핵환자로 부잣집 딸이었던 야노 아야코(소설 속 세츠코)와의 연애와 사별이 주요 내용이다. (폐병 걸린 미소녀 캐릭터의 원형이 되는 소설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작품 속 호리코시 지로는 어려서부터 비행기를 동경하다가 상상해온 비행기를 만들기 위해 업계로 들어서게 된다. 이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밝혔듯 감독의 아버지는 물론, 자기자신의 모습도 반영한 듯하다. 아버지 가추지는 집안이 소유한 미야자키 항공사의 관리자로 일하며 제로센의 방향타를 제작했고, 군국주의 덕분에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낸 미야자키 하야오의 어릴 적 꿈도 비행기 조종사가 되는 것이었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애니메이션 속 호리코시 지로는 어려서 외국 비행기 잡지를 읽으며 이탈리아 비행기 제작자 카프로니 백작을 선망하게 됐고 실제 만난 적은 없지만 꿈속에서 몇 차례 대화를 나눈다. 스튜디오 지브리 역시 카프로니가 만든 비행기 이름에서 따왔다. 실제로는 사막의 열풍을 뜻하는 ‘기블리’에서 온 것으로, 미야자키가 잘못 읽어서 지브리가 됐지만 이제는 지브리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도쿄대(도쿄제국대학) 항공연구소는 호리코시 지로가 다닌 항공학과 부속으로 관동대지진으로 후카가와에 있는 항공연구소가 괴멸되면서 이전, 도쿄대 제2캠퍼스인 고마바에 위치하게 됐다. 전후 점령군에 의해 일본에서의 항공연구가 금지되면서 이화학연구소로 변경되며, 이후 도쿄대 우주항공연구소가 됐다는 것이다. 호리코시 지로는 사가미하라 쪽으로 이전한 시기에 이곳에서 강사로 일하기도 했다. 현재는 첨단과학기술연구소로 남았다고 한다.  당시는 목조 비행기가 금속제로 바뀌는 시기였는데, 작품 속에서 호리코시 지로는 독일에서 듀랄루민이 스팀난방기에까지 사용되는 것을 보고 기술력의 천양지차에 놀랐다. 선진화된 유럽의 기술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 실패를 거듭하다가 결국 제로센을 개발한다는 스토리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미화해도 제로센이 진주만 공습에 투입되고 일본 자살특공대인 가미카제 전투기로 쓰였으며, 제조사 미쓰비시 중공업은 조선인을 강제징용해 노동력을 착취했고(미쓰비시는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에 대한 손해배상을 거부해 현재까지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배경이 된 관동대지진에서 조선인 대학살이 자행됐고, 모델이 된 호리코시 지로가 자신이 만든 제로센이 일본군의 대승에 기여했다는데 자부심을 가졌던 인물이라는 점에는 변화가 없으며, 이에 대한 비판과 반성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 중평이다.  반전주의자라면서 밀리터리(전쟁무기) 마니아인 모순을 지닌 미야자키 하야오는 고유한 판타지 세계를 창조하며 국내에서도 수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다. 그러나 그의 말년에 나온 사실주의적 성인물에서 그의 본심이 드러난 것 아니냐는 실망어린 평가도 나오고 있다.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들고 싶다”며 “비행기를 살육과 파괴의 도구가 되는 숙명”이라는 말을 애써 회피하는 극중 주인공의 모습처럼 말이다.  일본 내에서도 논란을 일으킨 ‘바람이 분다’라는 일본어 타이틀을 구글 검색창에서 넣어보면 관련검색어로 ‘한국(韓国)’이 가장 먼저 뜬다. 그만큼 한국에서의 반응을 의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지브리 스튜디오는 7월26일 무려 60여명의 한국기자들을 초청해 시사회와 함께 미야자키 하야오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같은 사실은 이례적으로 다음날인 27일자로 일본 주요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일본최대 일간지 요미우리 신문은 “제로센 디자이너 호리코시 지로를 모델로 한 청년을 주인공으로 하는 것 등이 영화 개봉 전 한국의 인터넷상에서 비판되고 있는 것에 대해 미야자키 감독은 ‘당시 비행기를 만들려고 생각하면 군용기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호리코시 지로가 옳다고 생각하고 영화를 만든 것은 아니지만 그가 잘못했다고 쉽게 단정 짓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교도 통신은 “한국의 넷상에서 ‘전쟁을 미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는 것에 대해 미야자키 감독이 ‘그 시대를 열심히 살아간 사람을 그 이유만으로 단죄해도 좋은 것인지 의문을 느꼈다’고 답했으며,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이 진작에 청산해야했다. 하시모토 토루 오사카 시장의 발언이 문제가 되는 것은 굴욕이다. 일본은 한국과 중국에 사과해야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수입·배급사는 아무래도 광복절이 있는 8월을 넘기는 것이 아무래도 직접적인 비난의 화살을 피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는지, 9월로 국내 상영을 잡고 있다. 그러나 예고편부터 국내 네티즌들의 비판을 피해가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유투브에 공개된 영상에서 ‘과거 일본에서 전쟁이 일어났다’는 한글자막이 나오며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일본이 전쟁을 일으켰다’는 표현이 올바른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훗날 신화가 된 제로센의 탄생’이라는 표현도 연료를 많이 싣지 못하고 불이 잘붙어 무모한 자살공격에나 사용되던 것을 신격화한 데다가 전쟁 피해자들을 고려하지 않은 망언이라고 짚고 있다.  일본에 거주하며 현지 개봉한 이 애니메이션을 먼저 접한 한국인들의 분노도 거세다. “미국에서 핵폭탄 을 만든 오펜하이머를 주인공으로 ‘폭탄 터지다’라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일본에서 개봉하면 참 볼만하겠다. 철저히 자신들을 피해자로 묘사한다”, “전쟁 참화를 다루는 영화임에도 그 원인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침묵한다. 명백한 일본 자국민의 자위용 우익영화다. 과거 개념발언을 했다고 해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런 기만적 태도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등의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일부에서는 “작품성을 떠나 이런 작품을 꼭 국내에 상영해야하겠느냐”며 관람거부운동이라도 벌여야하는 것이 아니냐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일본 NHK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제로센, 개발자가 본 비극’을 보면 제로센은 개인이 만든 것을 군이 이용한 것이 아니라 일본해군에서 제작을 의뢰해 만들어진 것이다. 제로센 제작을 도운 사람 중에는 2차세계대전 전범 도조 히데키의 차남도 있다. ‘바람이 분다’는 이를 외면하고 개발자의 순수한 의도만 부각시킨다면서 말도 안 되는 포장을 하고 있다. 그 자체로 일본이 전범 국가라는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국내 상영은 절대 안 될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도 있다.  “일단 작품을 보고 나서 판단하겠다”는 의견도 있지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좋아하나 이번 작품은 소재만으로도 국내 개봉을 거부해야한다”, “타국의 죄없는 생명을 사지로 몰아간 중심인물을 내세워 청춘과 사랑을 묘사하다니 관객모독”이라는 유의 질타가 더 눈에 띄는 상황이다.  tekim@newsis.com

 관동대지진으로 열차가 탈선하고 인가가 불타는데도 사람의 입으로만 효과음을 넣은 장면들은 스산하기는 하나 공포스럽지는 않다. 일본인들은 아주 침착하고 조용하게 대응하는 것으로만 보여진다. (40만 명의 인명피해를 낳은 1923년 관동대지진 중 학살당한 조선인의 수가 기존에 알려진 것의 3.4배에 해당하는 2만3058명이라는 독일 외무성 사료가 최근 공개되기도 했다)

 한 술 더 떠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과 같은 제로센 전투기를 설계한 호리코시 지로(1903~1982)를 모델로 한 지로는 극중 종종 자신의 우상인 이탈리아 비행기 제작자 카프로니(1886~1957) 백작이 등장하는 환상으로 도피하곤 한다. “인생에서 창조적 기간은 10년뿐”이라며(이는 미야자키 스스로도 인터뷰에서 20,30대에 자신의 창조적 10년이 끝났다고 밝힌 바 있다) 비행기 설계자를 예술가에 비교하며 지로는 툭하면 “아름답다”는 말로 모든 것을 무마하려 하는데, 이러한 예술지상적 탐미주의가 전범행위의 면죄부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현실에서는 밀리터리(전쟁무기) 마니아라면서 반전평화주의라는 이상을 작품에 담아오고자 한 스스로의 모순에 대한 변명에 다름 아니다. 결국 그는 현실에서는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치의 대립을 견디지 못하고 판타지의 세계로 도망쳐왔다는 자백을 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한국에서 화제가 된 아베 정권의 역사인식 부재에 대한 미야자키의 비판글에 한 일본 기자는 “미야자키 감독은 정치적으로 야당편이고, 선거를 앞두고 다른 지식인이나 문화인처럼 자기의 입장이나 생각을 표명해도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지식인의 정치적 영향력이 거의 없는 일본에서) 그의 발언이 크게 화제가 된 것도 아니고 파문을 일으킨 것도 아니다. 그것뿐인데 한국 언론은 그 발언을 대서특필했다. 미야자키도 깜짝 놀랐을 것이다”고 짚었다.

 극중 혼조라는 동료가 ‘위선’과 ‘모순’을 지적하며 현실감을 잠깐 드러내긴 하지만, 지로가 주로 도피하는 환상 속 카프로니 백작과 지로의 대화는 앞뒤가 맞지 않는 ‘망상’에 가깝다. 카프로니가 “비행기는 파괴와 살육의 도구가 되는 숙명”이라고 하자 지로가 “전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들고 싶어요”라고 동문서답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서울=뉴시스】김태은 문화전문기자 =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부로 불리는 스튜디오 지브리 설립자 미야자키 하야오(72)의 신작 ‘바람이 분다’(風立ちぬ)가 9월 한국 개봉을 앞두고 묘한 기류에 휩싸였다. 자칫 관람 거부운동으로 번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바람 불다’는 직역으로 먼저 알려진 이 애니메이션은 수입사에 의해 ‘바람이 분다’라는 제목으로 확정됐다. 원제는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로 유명한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의 시구를 딴 일본 소설의 제목을 차용한 것이다. 일본에서도 “영상미만 빼고는 기대에 못미치는 작품”이라는 평이 꽤 있지만, 개봉 첫주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며 흥행에 성공할 조짐이다.  ‘지의 정원’,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 등으로 국내에서도 유명한 작가 다치바나 다카시(73)를 7월초 도쿄국제도서전에서 만났다. 같은 달 20일 일본에서 개봉하는 ‘바람이 분다’의 팸플릿에 들어갈 2400자 정도의 해설을 쓰고 있다며 이를 위해 호리코시 지로에 대한 10권 이상의 책을 비롯, 수많은 서적을 읽었다며 상세한 얘기를 들려줬다.  주인공 ‘호리코시 지로’는 쇼와 시대(1926~1989년 히로히토 일왕시대)를 산 실존인물인 제로센 전투기 설계자 호리코시 지로(1903~1982)와 동시대 유명 소설가 호리 타츠오(1904~1953)를 합친 인물이다. 비행기를 만드는 얘기만으로는 지루할 수 있으므로 호리 타츠오의 자전적 사소설 ‘바람이 분다’의 로맨스를 가미했다는 것이다. 결핵환자로 부잣집 딸이었던 야노 아야코(소설 속 세츠코)와의 연애와 사별이 주요 내용이다. (폐병 걸린 미소녀 캐릭터의 원형이 되는 소설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작품 속 호리코시 지로는 어려서부터 비행기를 동경하다가 상상해온 비행기를 만들기 위해 업계로 들어서게 된다. 이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밝혔듯 감독의 아버지는 물론, 자기자신의 모습도 반영한 듯하다. 아버지 가추지는 집안이 소유한 미야자키 항공사의 관리자로 일하며 제로센의 방향타를 제작했고, 군국주의 덕분에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낸 미야자키 하야오의 어릴 적 꿈도 비행기 조종사가 되는 것이었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애니메이션 속 호리코시 지로는 어려서 외국 비행기 잡지를 읽으며 이탈리아 비행기 제작자 카프로니 백작을 선망하게 됐고 실제 만난 적은 없지만 꿈속에서 몇 차례 대화를 나눈다. 스튜디오 지브리 역시 카프로니가 만든 비행기 이름에서 따왔다. 실제로는 사막의 열풍을 뜻하는 ‘기블리’에서 온 것으로, 미야자키가 잘못 읽어서 지브리가 됐지만 이제는 지브리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도쿄대(도쿄제국대학) 항공연구소는 호리코시 지로가 다닌 항공학과 부속으로 관동대지진으로 후카가와에 있는 항공연구소가 괴멸되면서 이전, 도쿄대 제2캠퍼스인 고마바에 위치하게 됐다. 전후 점령군에 의해 일본에서의 항공연구가 금지되면서 이화학연구소로 변경되며, 이후 도쿄대 우주항공연구소가 됐다는 것이다. 호리코시 지로는 사가미하라 쪽으로 이전한 시기에 이곳에서 강사로 일하기도 했다. 현재는 첨단과학기술연구소로 남았다고 한다.  당시는 목조 비행기가 금속제로 바뀌는 시기였는데, 작품 속에서 호리코시 지로는 독일에서 듀랄루민이 스팀난방기에까지 사용되는 것을 보고 기술력의 천양지차에 놀랐다. 선진화된 유럽의 기술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 실패를 거듭하다가 결국 제로센을 개발한다는 스토리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미화해도 제로센이 진주만 공습에 투입되고 일본 자살특공대인 가미카제 전투기로 쓰였으며, 제조사 미쓰비시 중공업은 조선인을 강제징용해 노동력을 착취했고(미쓰비시는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에 대한 손해배상을 거부해 현재까지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배경이 된 관동대지진에서 조선인 대학살이 자행됐고, 모델이 된 호리코시 지로가 자신이 만든 제로센이 일본군의 대승에 기여했다는데 자부심을 가졌던 인물이라는 점에는 변화가 없으며, 이에 대한 비판과 반성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 중평이다.  반전주의자라면서 밀리터리(전쟁무기) 마니아인 모순을 지닌 미야자키 하야오는 고유한 판타지 세계를 창조하며 국내에서도 수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다. 그러나 그의 말년에 나온 사실주의적 성인물에서 그의 본심이 드러난 것 아니냐는 실망어린 평가도 나오고 있다.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들고 싶다”며 “비행기를 살육과 파괴의 도구가 되는 숙명”이라는 말을 애써 회피하는 극중 주인공의 모습처럼 말이다.  일본 내에서도 논란을 일으킨 ‘바람이 분다’라는 일본어 타이틀을 구글 검색창에서 넣어보면 관련검색어로 ‘한국(韓国)’이 가장 먼저 뜬다. 그만큼 한국에서의 반응을 의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지브리 스튜디오는 7월26일 무려 60여명의 한국기자들을 초청해 시사회와 함께 미야자키 하야오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같은 사실은 이례적으로 다음날인 27일자로 일본 주요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일본최대 일간지 요미우리 신문은 “제로센 디자이너 호리코시 지로를 모델로 한 청년을 주인공으로 하는 것 등이 영화 개봉 전 한국의 인터넷상에서 비판되고 있는 것에 대해 미야자키 감독은 ‘당시 비행기를 만들려고 생각하면 군용기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호리코시 지로가 옳다고 생각하고 영화를 만든 것은 아니지만 그가 잘못했다고 쉽게 단정 짓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교도 통신은 “한국의 넷상에서 ‘전쟁을 미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는 것에 대해 미야자키 감독이 ‘그 시대를 열심히 살아간 사람을 그 이유만으로 단죄해도 좋은 것인지 의문을 느꼈다’고 답했으며,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이 진작에 청산해야했다. 하시모토 토루 오사카 시장의 발언이 문제가 되는 것은 굴욕이다. 일본은 한국과 중국에 사과해야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수입·배급사는 아무래도 광복절이 있는 8월을 넘기는 것이 아무래도 직접적인 비난의 화살을 피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는지, 9월로 국내 상영을 잡고 있다. 그러나 예고편부터 국내 네티즌들의 비판을 피해가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유투브에 공개된 영상에서 ‘과거 일본에서 전쟁이 일어났다’는 한글자막이 나오며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일본이 전쟁을 일으켰다’는 표현이 올바른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훗날 신화가 된 제로센의 탄생’이라는 표현도 연료를 많이 싣지 못하고 불이 잘붙어 무모한 자살공격에나 사용되던 것을 신격화한 데다가 전쟁 피해자들을 고려하지 않은 망언이라고 짚고 있다.  일본에 거주하며 현지 개봉한 이 애니메이션을 먼저 접한 한국인들의 분노도 거세다. “미국에서 핵폭탄 을 만든 오펜하이머를 주인공으로 ‘폭탄 터지다’라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일본에서 개봉하면 참 볼만하겠다. 철저히 자신들을 피해자로 묘사한다”, “전쟁 참화를 다루는 영화임에도 그 원인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침묵한다. 명백한 일본 자국민의 자위용 우익영화다. 과거 개념발언을 했다고 해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런 기만적 태도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등의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일부에서는 “작품성을 떠나 이런 작품을 꼭 국내에 상영해야하겠느냐”며 관람거부운동이라도 벌여야하는 것이 아니냐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일본 NHK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제로센, 개발자가 본 비극’을 보면 제로센은 개인이 만든 것을 군이 이용한 것이 아니라 일본해군에서 제작을 의뢰해 만들어진 것이다. 제로센 제작을 도운 사람 중에는 2차세계대전 전범 도조 히데키의 차남도 있다. ‘바람이 분다’는 이를 외면하고 개발자의 순수한 의도만 부각시킨다면서 말도 안 되는 포장을 하고 있다. 그 자체로 일본이 전범 국가라는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국내 상영은 절대 안 될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도 있다.  “일단 작품을 보고 나서 판단하겠다”는 의견도 있지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좋아하나 이번 작품은 소재만으로도 국내 개봉을 거부해야한다”, “타국의 죄없는 생명을 사지로 몰아간 중심인물을 내세워 청춘과 사랑을 묘사하다니 관객모독”이라는 유의 질타가 더 눈에 띄는 상황이다.  tekim@newsis.com

 마지막 장면은 죄책감을 회피하기 위한 망상증의 절정을 이룬다. 카프로니 백작을 만나는 꿈속에서 지로는 날개에 일장기를 그린 제로센들이 불에 타 추락한 잔해 속을 걷는다. “한 대도 안 돌아왔어요”라고 자책하지만 (제로센은 자살특공대 가미카제의 공격용으로 쓰였고,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 당시 일본의 기술력으로는 기체를 가볍게 만드는 수밖에 없어 파일럿을 보호하는 장치가 전혀 장착되지 않아 단순파편에도 추락하거나 공중폭발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환상 속 파일럿은 “훌륭한 비행기입니다, 아리가토(감사합니다)”라고 손을 흔들며 웃는다. 게다가 일을 해야한다며 병상을 지켜주지도 못하고 옆에서 담배만 뻑뻑 피워댔는데, 폐결핵으로 사망한 아내 나호코가 생전 모습으로 등장해 “살아야 해요”라고 격려까지 한다.

 호리코시 지로와 동시대를 살았던 소설가 호리 타츠오(1904~1953)가 쓴 자전적 소설 ‘바람이 분다’의 연애 설정을 빌려 로맨스를 가미했다는데, 이는 지로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또 하나의 장치다. 나호코가 죽을 것을 알면서도 “우리에겐 시간이 별로 없다”면서 약식 예식을 올리고 신혼의 사랑을 나눈다. 일본이 파멸할 것을 알면서도 꿈을 위해 그 시대에는 전투기로 쓰일 비행기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는 자기변명을 순애보로 치장한 것이나 다름 없다.

 반복되는 테마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는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의 시구다. 자신이 만든 비행기가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아내까지 떠나보낸 마당에 혼자만 ‘살아야한다’고 다짐하는 것은 무슨 심리인가. “그 시대를 열심히 살았다는 것 만으로 단죄할 수 있는 것인가라는 의문에서 출발했다”는 미야자키 스스로의 질문에 대해 스스로 내린 답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그것은 군국주의 덕분에 번영한 미야자키 항공사 일가인 자신의 아버지와 그 혜택을 누린 자신에 대한 반성없는 자위이기도 하다.  

 “일본은 가난하다”는 대사가 여러 번 나오지만 등장인물들은 산속 서양식 호텔에서 말끔히 양장을 하고 여가를 즐기며 테니스를 치고 파티를 벌인다. 부잣집 딸 나호코는 무지개가 뜨는 푸른 언덕 위에서 흰 파라솔을 펼치고 평화로이 유화를 그린다. 이들의 연애는 낭만적이기 그지없다. 이 역시 현실과 동떨어진 판타지의 세계다. 두 사람의 연애를 응원하며 독일의 거물 비행기 제작자 융커스 박사가 나치에게 쫓기고 있다고 알려주기도 하는 독일인 카스트로프는 극중 그가 언급하는 독일 작가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의 주인공이다. 한 마디로 비현실적인 장소라는 얘기다. 폐결핵을 앓는 나호코는 ‘마의 산’에 나오는 것과 같은 고산 최고급 요양시설에서 생의 말기를 보내기도 한다.

【도쿄=뉴시스】김정환 기자 = “평소 내가 생각해오던 것을 얘기한 것이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어서 내 뜻을 바꿀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일본 만화영화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72) 감독이 일본 아베 신조(59) 총리에 대해 다시 한 번 쓴소리를 했다.  미야자키 감독은 26일 도쿄도 코가네이시에 자리한 자신의 아틀리에에서 한국 기자단과 만나 "아베 정권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아베 총리가 하는 말쯤은 하찮게 받아들여도 된다“고 잘라 말했다.  앞서 미야자키 감독은 자신이 운영하는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발간되는 무료 소책자 ‘열풍’ 7월호에 ‘헌법 개정은 있을 수 없는 일’이란 제목의 기고문을 싣고 아베 정권을 정면 비판해 반향을 일으켰다.  미야자키 감독은 기고문에서 “위안부 문제는 각 민족의 자긍심 문제기 때문에 분명히 사죄하고 제대로 배상해야 한다”며 “일본인들이 전쟁 전의 일본은 나쁘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겠지만 분명히 잘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걸 인정하지 않는 역사 인식의 부재에 질린다”며 “생각이 부족한 인간이 헌법 같은 것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낫다”고 성토했다.  미야자키 감독은 이날 역시 “1989년 일본 경제의 거품이 붕괴하면서 일본인들은 역사 감각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역사 감각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그 순간 그 나라는 망하기 때문이다”면서 “위안부 문제는 일본이 한국이나 중국에 대해 사죄하고 청산했어야 한다. 과거 일본 군부가 일본인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나라 사람들도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그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야자키 감독은 “그 동안 일본은 역사에 관해 이야기를 했야 했다. 그러나 그동안 일본은 경제 이야기만 해왔다. 영화만 봐도 흥행이 얼마인가에 대해서만 관심을 두게 됐다”면서. “일본, 한국, 중국 등 동아시아는 사이가 좋아야 한다. 싸우면 안된다. 격동의 시기에 아베 정권은 그런 말도 안되는 짓으로 다른 나라에 상처를 줘서는 안 된다”고 짚었다.  미야자키 감독은 신작 ‘바람이 분다’으로 돌아왔다. ‘벼랑 위의 포뇨’(2008) 이후 5년 만의 연출작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비행기 설계사 호리코시 지로(1903~1982)의 실화에 호리 타츠오(1903~1954) 동명 원작 소설을 더해 격동의 시기 젊은이들의 순수한 사랑과 열정을 그렸다. 현지에서 20일 개봉해 26일까지 100만명을 앉히며 흥행 중이다. 8월28일(현지시간)부터 열리는 제70회 베니스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대원미디어 수입, 롯데엔터테인먼트 배급으로 9월 초 국내 개봉 예정이다. /ace@newsis.com

 지로를 사상범으로 그리고 있는 것도 어이없다. 특별고등경찰에게 쫓겨 상사의 집 별채에 숨어살게 되는데 그나마 양심적이라는 분칠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군의 발주로 군용기를 만드는 수석설계자가 군과 일하며 경찰의 눈을 피한다는 설정은 그야말로 ‘만화적 상상력’이다. 호리코시 지로는 자신이 만든 제로센이 일본군의 대승에 기여했다는데 자부심을 품고 일본 방위대 교수까지 지낸 인물이다.

 지브리의 작품을 내내 수입해온 대원미디어 측은 ‘바람이 분다’의 군국주의 논란에 대해 “작품 자체만 봐달라”고 요구했다. 노이즈마케팅을 노리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에는 “그런 의도는 절대 아니다. 정치·역사 얘기는 하나도 다루지 않아 왜곡이라 할 것도 없다. 차라리 빨리 공개하는 것이 논란을 잠재울 것이라 생각했다”고 답했다. 일본에서의 예고편 영상과 달리 국내 호객을 위해 러브스토리로 포장했지만, 성장한 나호코가 등장하는 것은 중반에 들어서다. 앞서 말했듯 지로의 성격을 보여주기 위한 한 부분으로 이용된다.

 그 시대의 문화사회적이고 역사적 해석을 떠나 오롯이 작품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일본의 우경화 바람이 거세지며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는 현재다. 미야자키의 손을 떠난 이 작품이 일본인들, 나아가 일본 애니메이션 팬이라는 타국인들에게 어떻게 읽혀질지 두렵다. 베니스영화제에서 공개된 ‘바람이 분다’의 영어권 매체 리뷰 중 영국 일간 가디언 정도만 제로센이 노역장에서 생산되고 가미카제 임무에 이용됐다며 지로의 입장이 모호하게 그려진 것을 지적했다. 이 기사에는 수십개의 댓글이 달리며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일부 해외 ‘일빠’는 “일본 친구들은 아시아 전역에 일으킨 참화와 영국 배를 침몰시킨 제국주의 침략에 대해 진정으로 미안해하고 있지만 한국에게 사과하지 않는 것은 당시 한국이 일본을 향해서는 결코 저항한 적이 없고 한국이 그들과 함께 싸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을 식민지배한 것은 유감으로 생각하고 있더라”며 그들의 제국주의는 서구의 것과 달리 생존을 위한 것이었다는 따위의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있다.

 과거사가 청산되지 않은 식민 피해자인 우리까지, 시대극답게 일본색이 강하게 가미돼 일본의 장인정신, 허무의 미학, 복종주의, 복식과 예절 등의 문화를 미화하고 전범행위를 정당화하는 애니메이션을 공공연히 봐줘야할 필요가 있을까. 한국인 관객들의 선택이 주목된다. 5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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