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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중구청, 무더위에 그늘막 신경전

등록 2018.07.30 17:02:48수정 2018.07.30 17: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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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손대선 기자 = 서울 중구가 30일 서울시청 광장 앞에 설치했다가 철거한 무더위 그늘막을 구청 잔디광장으로 옮겨 전시하고 있다. 중구는 그늘막 앞에 표지판을 세워 철거의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sds1105@newsis.com 

【서울=뉴시스】 손대선 기자 = 서울 중구가 30일 서울시청 광장 앞에 설치했다가 철거한 무더위 그늘막을 구청 잔디광장으로 옮겨 전시하고 있다.  중구는 그늘막 앞에 표지판을 세워 철거의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배민욱 기자 = 기록적인 폭염이 계속되면서 지방자치단체가 앞다퉈 그늘막을 설치하고 있는 가운데 서울시와 중구청이 서울광장 무더위 그늘막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신경전 와중에 서울시가 중구청에 요청해 서울광장에 세워졌던 수백만원짜리 그늘막이 중구청 측에 의해 철거돼 구청앞 잔디광장에 전시되는 촌극도 벌어졌다.  

 서양호 중구청장은 30일 오전 구청장 잔디광장에 중구청 직원 500여명을 모아놓고 직원조례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행사에서 서 구청장은 폐기된 그늘막 4개를 직원들 앞에 내보였다. 

 통제선까지 둘러친채 놓여진 그늘막은 지난 26일까지만해도 중구가 서울광장에 설치해 놓은 것이었다.

 불과 나흘만에 개당 160여만원, 총 700여만원어치 그늘막이 수일만에 폐건축자재 신세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중구는 표지판을 세워 이유를 설명했다.

 표지판에는 "중구민 여러분들께 머리숙여 사과드립니다. 이 그늘막은 수년간 중구민의 요구에도 설치하지 않았지만 서울시 간부 한마디에 의해 시청앞에 세워졌던 것입니다. 중구청의 부끄러운 행정을 반성하며 중구민을 위한 중구청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라고 써있다.

 중구는 폐 그늘막 뒤편에 '늑장행정, 눈치행정 반성합니다'라고 적힌 플래카드까지 내걸었다.
【서울=뉴시스】 손대선 기자 = 30일 서울시청 광장 앞에 설치됐다가 철거돼 중구청 잔디광장으로 옮겨져 보관중인 무더위 그늘막. sds1105@newsis.com

【서울=뉴시스】 손대선 기자 = 30일 서울시청 광장 앞에 설치됐다가 철거돼 중구청 잔디광장으로 옮겨져 보관중인 무더위 그늘막.  [email protected]


 중구에 따르면 서 구청장이 뙤약볕 아래서 이렇게까지 특별한 조례를 한 것은 사정이 있다.

 지난 6.13지방선거에서 당선돼 민선 7기를 중구 구정을 이끌게된 서 구청장은 여름철 폭염에 대비케 하기 위해 일찌감치 그늘막 설치를 주문했다. 하지만 관련 부서에서 예산미비를 이유로 그늘막 설치를 차일피일 미뤘다.

 이에 서 구청장은 담당부서를 질책하고 30일 관내 50곳에 그늘막을 설치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 마저도 구민들이 거주하고 생활하는 곳보다 시청앞이나 명동입구, 을지로입구 등 대로변에 집중돼 실제 구민 요구와는 동떨어진 행정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현장을 둘러보던 서 구청장은 서울광장 주변에 이미 그늘막이 설치돼 있는 것을 파악했다. 서 구청장은 특히 해당 그늘막 설치가 서울시 간부의 요구에 따라 즉각 이행된 것으로 보고 받고 대노한 것으로 전해졌다.
 
 급기야 서 구청장은 지난 27일 오후 개당 30여만원을 들여 서울광장 그늘막을 모두 철거토록 했다. 결국 서울광장 그늘막은 중구청앞 잔디광장에 흉물로 강제 '이식'되고 말았다.

【서울=뉴시스】 손대선 기자 = 30일 오전 중구청 잔디광장에 옮겨진 무더위 그늘막. 이 그늘막은 지난 27일 중구가 철거한 것이다. sds1105@newsis.com 

【서울=뉴시스】 손대선 기자 = 30일 오전 중구청 잔디광장에 옮겨진 무더위 그늘막. 이 그늘막은 지난 27일 중구가 철거한 것이다. [email protected]  

서 구청장은 직원조례에서 "연일 계속되는 최악의 폭염에도 불구하고 그늘막 설치가 늦어지는데다 위치도 주민이 원하는 장소가 아닌 곳이 많다"며 "게다가 서울광장앞은 서울시 간부의 말 한마디에 세워졌다. 늑장 부리기, 눈치 보기 등 부끄러운 구정을 깊이 반성한다"고 말했다.

 서 구청장은 이 폐그늘막을 구민 요구는 외면한채 시 간부의 요청에 기계적으로 따른 구 행정 난맥상의 상징물로 삼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폐 그늘막을 4년 임기를 마치는 2022년까지 구청 광장에 보존 전시하겠다는 뜻도 직원들에게 전했다.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늘막 설치를 요구한 서울시 간부가 직권남용을 했다며 시에 징계를 요구하는 한편 시 간부의 요구를 수용한 구청 관계자에 대해서는 자체 징계할 예정이다.

 중구는 이같은 사태를 기화로 예정된 그늘막 설치 작업을 전면 중단하고 주민 수요를 바탕으로 위치를 재조정한 후 내달 10일까지 설치를 완료할 계획이다. 추가적으로 필요한 곳을 조사해 8월말까지 설치도 끝낼 예정이다.

 서 구청장은 뉴시스와 만나 "서울시 간부 한마디로 일주일만에 그늘막이 설치됐다. 이건 구민들을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서울시 높은 간부 말하니까 시행되는건 관례·정시행정, 눈치보기 행정의 전형"이라며 "구청장이 되서 타산지석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해 광장에 있는 그늘막을 뽑아왔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시가 행정적 절차를 무시하고 권한을 남용한 것이다. 단순히 그늘막 하나로 문제를 삼는 것이 아니다. 서울시 공무원 강압이 아니라 행정이 우선순위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 구청장은 "그늘막은 어린이, 노약자 등 서울시내 사회적 약자가 있는 곳에 해야 한다. (서울광장 그늘막은)시장실에서 딱 보면 그 그늘막이 보인다고 한다"고 꼬집었다.

【서울=뉴시스】 손대선 기자 = 30일 서울시청 광장 앞에 설치됐다가 철거돼 중구청 잔디광장으로 옮겨져 전시되고 있는 무더위 그늘막.  sds1105@newsis.com

【서울=뉴시스】 손대선 기자 = 30일 서울시청 광장 앞에 설치됐다가 철거돼 중구청 잔디광장으로 옮겨져 전시되고 있는 무더위 그늘막.   [email protected] 

기초지자체가 광역지자체를 향해 날을 세우자 서울시는 통상적인 업무 협조였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광장은 행사도 많고 시민들도 많이 찾아온다. 그런데 서울광장에 그늘막이 없어서 중구청에 통상적인 업무협조를 통해 그늘막을 설치했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업무는 일상적인 업무협조 절차에 따라 정식공문으로 요청을 했다. 이부분에 대한 과도한 해석은 하지 않으면 좋겠다. 사실관계는 분명하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중구가 그늘막 설치를 요구한 시 공무원의 징계를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징계 요청 부분은 우선 요건이 무엇인지 살펴봐야 한다"고 말해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또 다른 시 관계자는 "그늘막은 무더위에 지친 시민을 위한 편의시설이다"며 "구가 하든 시가 하든 무슨 문제인가. 우선순위가 잘못됐다면 앞으로 바로잡으면 되지 멀쩡히 서 있는 그늘막을 뽑아 굳이 쓰레기를 만들어야 하나. 또 서울광장 그늘막을 잠깐이나마 이용한 시민들은 뭐냐"고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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