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산이 된 그들…히말라야서 잠든 국내 산악인 조난사
1971년 김기섭 대원, 마나슬루 절벽서 떨어져
대표 여성 산악인 고미영 대장도 2009년 운명
박영석 대장, 2011년 무전 끊긴 후 시신 못 찾아
김창호 대장, 박영석 사고 당시 수색 작업 투입
8000m급 14좌 무산소 완등 때 대원 1명 잃기도
"가슴에 묻고 와 슬픔" 토로…결국 본인도 참사
【서울=뉴시스】박동욱 기자 = 지난 2011년 11월 실종된 고(故) 박영석 대장(가운데 사진)과 신동민(왼쪽 사진), 강기석 대원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동숭동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관계자들이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email protected]
13일(현지시간) 네팔 언론 히말라얀타임스는 구르자히말산을 등반하던 한국인 5명과 네팔인 4명 등 최소 9명이 전날 밤 베이스캠프를 덮친 눈사태로 인해 숨졌다고 당국 발표를 인용해 보도했다.
이 언론에 따르면 이번 참사로 숨진 한국인은 아시아 최초 8000m급 14좌 무산소 등정의 주인공 김창호 대장을 비롯해 이재훈씨, 임일진씨, 유영직씨, 정준모씨이다.
국내 산악인이 히말라야 정복에 나섰다가 목숨을 잃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첫 사고는 4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1년 5월4일 김기섭 대원이 마나슬루 7600m 지점에 제5캠프를 설치하던 도중 돌풍에 휩싸여 40m 아래 절벽으로 떨어져 돌아오지 못한 것이 비극의 출발이다.
1998년 9월28일에는 최승철, 김형진, 신상만 대원이 히말라야의 탈레이사가르를 등반하던 중 북벽 블랙피라미드(타워) 루트를 개척해 정상으로 향하던 중 눈보라를 피하지 못하면서 숨지고 말았다.
【로스앤젤레스=뉴시스】 13일(현지시간) 히말라야산맥의 구르자히말산을 등반하다 캠프에서 눈폭풍에 휩쓸려 숨진 '2018 코리안웨이 구르자히말 원정대' 대원들. 히말라얀타임스는 구르자히말산을 등반하던 김창호 대장(왼쪽에서 두번째)을 포함한 5명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사진=카트만두 포스트 캡처) 2018.10.13
고 대장은 2009년에만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를 4개나 오르며 총 11좌 등정에 성공했고, 2007년 여성 산악인으로는 최초로 8000m급 산 3개에 오른 주인공이다.
이들은 탈레이가사르 북벽 정상 바로 밑 가장 어렵다는 블랙피라미드(타워)구간까지 돌파했으나 정상으로 이어지는 비교적 쉬운 설릉구간을 남겨놓고 갑자기 불어닥친 눈보라를 피하지 못했다.
히말라야는 아니지만 한국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고상돈 대장도 산에서 생의 최후를 맞이해야 했다.
그는 에베레스트 등정 성공 후 2년이 지난 1979년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북미 최고봉인 맥킨리에 올랐고, 하산 중 해발 6000m 지점에서 몸을 로프로 연결한 한 대원의 실족으로 함께 추락해 돌아오지 못했다. 이때 고 대장과 이일교 대원이 숨지고 박훈규 대원만 겨우 목숨을 건졌다.
1993년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을 세계 최초로 해낸 '영원한 산악인' 박영석 대장도 히말라야에서 시신도 발견되지 않은 채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박 대장이 이끈 원정대는 2011년 9월19일 67일 일정으로 안나푸르나 남벽 등반길에 올랐고, 다음달 18일 "좌우로 눈사태가 심해 전진 캠프로 가려면 오른쪽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는 마지막 무전을 끝으로 연락이 끊겼다.
이번에 숨진 김창호 대장은 당시 실종된 박 대장, 신동민, 강기석 대원 수색 작업에 투입되기도 했다.
【서울=뉴시스】김창호 대장을 비롯한 '2018 코리안웨이 구르자히말 원정대' 대원 5명이 국내 최초로 무산소 히말라야산맥 구르자히말산을 등반하다 눈폭풍에 휩쓸려 숨졌다고 네팔 현지 언론인 히말라얀타임스가 보도했다. 사진은 김창호 대장의 모습. 2018.10.13. (사진=몽벨 제공) [email protected]
김 대장은 귀국 뒤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한 명을 가슴에 묻고 오게 돼 안타깝다. '이것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인가' 하는 힘든 마음이 있다"면서 "(귀국 이후 ) 에베레스트를 등정했던 것보다 서성호 대원의 희생으로 큰 슬픔에 잠겨 지냈다. 장례 절차를 마치고 조용히 지냈다. 힘든 감정이 몰려와서 술 자리는 일부러 피했다. 여러모로 힘든 기간이었다"고 토로한 바 있다.
그렇게 비통해하던 김 대장은 결국 먼저 떠난 동료 산사나이들을 따라간 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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