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기사격 증언 차고 넘치는데, 전두환만 '모르쇠'
조비오 신부, 피터슨 목사, 국과수, 계엄군 "헬기사격 있었다"
39년 만에 피고인 신분 재판 출석 전두환 "확인된 것 없다"
【광주=뉴시스】류형근 기자 = 고(故) 조비오 신부 사자명예훼손 혐의 재판을 받고 나온 전두환씨가 대기하고 있는 경호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2019.03.11. [email protected]
"'타다닥'하는 사격소리가 3번 정도 들렸고, 그와 동시에 헬기에서 '파다닥'하는 불빛이 보였다."(5·18 당시 군의관)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민주주의를 외치던 시민들을 향해 계엄군이 헬기에서 총을 난사한 증언은 차고 넘친다.
소문이 무성하던 헬기 기관총 난사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1989년 2월. 국회에서 열린 5·18 진상규명 청문회(일명 광주청문회)에서 고(故) 조비오 신부가 "헬기에서 총이 발사되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했다"고 증언하면서부터다.
조 신부는 이후에도 수차례에 걸쳐 "1980년 5월21일 낮 1시20분부터 2시30분 사이 전일빌딩 인근 호남동성당 상공에서 드르륵, 드르륵 소리가 났고, 공중에서도 발포 소리가 들렸다"고 밝혔다.
5·18 관련 검찰 수사가 한창이던 1995년 5월에는 5·18 당시 광주에서 선교활동을 했던 미국인 피터슨 목사가 검찰에 출석해 "80년 광주에서 헬기사격을 직접 목격했다"고 증언하며 헬기사진을 결정적인 증거물로 제출하기도 했다.
1995년 전두환 등의 내란목적살인 혐의를 수사하던 검찰도 계엄군이 헬기에서 기관총을 쐈다는 증언을 조사했고, 신빙성 있는 증언을 다수 확보했다.
실제 5·18 당시 3해역사 군의관(대위)으로 복무 중이었던 김모씨는 검찰에서 "5월21일 피터슨 목사의 집을 찾았다가 '어떻게 헬기에서 시민들을 향해 사격을 할 수가 있느냐'는 목사의 말에, 하늘을 쳐다보니 정말로 헬기에서 사격을 하고 있었는데 '타다닥'하는 사격소리가 3번 정도 들리더니 동시에 헬기에서 '파다닥'하는 불빛이 보였다"고 진술했다.
이어 "한가지 분명한 것은 틀림없이 제가 목격한 헬기에서 사격이 있었다는 것"이라고 강조한 뒤 "당시 군장교로 있었다. 책임이 있다면 공수부대를 파견하도록 결정한 최종 결정권자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조사로 역사적인 진실이 밝혀지길 기대한다"며 진술 조서를 마쳤다.
김씨 외에 5·18 당시 적십자사 봉사활동을 하던 이광영씨도 검찰 조사에서 "5월21일 오후 2시 헬기의 탑승자가 몸을 밖으로 내밀고 소총으로 사격을 했다"고 진술했다.
목격 장소와 시간대도 대부분 일치한다.
【광주=뉴시스】류형근 기자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20일 오전 광주 동구 5·18당시 헬기 사격이 이뤄진 것으로 추정되는 전일빌딩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2017.03.20. [email protected]
국방부 5·18특별조사위원회는 5·18 당시 헬기 사격이 실제로 있었다고 최종 결론을 내렸고, 송영무 전 국방부장관은 군 수장으로서 처음으로 사과하기도 했다.
전일빌딩 인근 옛 광주은행 본점 유리창의 총탄 흔적도 5·18항쟁 당시 계엄군의 헬기사격으로 남겨졌을 가능성도 수차례 제시됐다.
5·18 당시 500MD 헬기를 몰고 광주를 찾았던 한 계엄군은 "기관총으로 분당 2000발 사격하는 500MD와 달리 양편 거치대에 M60 기관총을 설치할 수 있는 UH-1H 헬기에서는 소총과 기관총 모두 쏠 수 있고 2~3발씩 점사도 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계엄군에서 국가기관의 공식조사 결과까지 차고 넘치는 증거와 증언에도, 5·18 당시 진압작전의 최고책임자였던 전두환씨는 5월의 핏빛 항쟁이 있은 지 39년이 지나도록 '모르쇠'로 일관했다.
이날 오후 피고인 신분으로 광주 법정에 선 전씨는 "과거 국가 기관 기록과 검찰 조사를 토대로 회고록을 쓴 것이며 헬기 사격설의 진실이 아직 확인된 것도 아니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또 변호인을 통해 '1980년 5월21일 오후 2시께 광주시내 상공에서 헬기사격이 있었다'는 고 조 신부의 증언에 대해 "증명이 충분하지 않다"며 공소사실을 반박했다. "광주에서 기총소사가 있었다고 해도 조 신부가 주장하는 시점에 헬기사격이 없었다면 공소사실은 인정될 수 없다"고도 주장했다.
그러면서 "전두환 전 대통령이 본인의 기억, 국가기관 기록, 검찰 수사기록을 바탕으로 확인된 내용을 회고록에 기술했다. 고의성을 가지고 허위 사실을 기록해 명예를 훼손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전씨가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광주·전남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 5월 단체 등은 "마지막까지 추악한 행동을 보였다"며 "5·18 죗값을 받으라"고 일제히 분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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