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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불야성' 남포동 옛날 얘기로… "누가 시장되든 달라지겠나"

등록 2021.04.06 12:01:03수정 2021.04.06 17: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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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유세장소서 만난 택시기사 3인 통해 본 민심

[그래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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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뉴시스] 박영환 기자 = "부산 남포동 일대를 이동하다 보면 따블에 따따블을 부르는 손님들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그때는 택시를 천천히 몰면서 쏟아져 나오는 손님들을 살핀 뒤 골라 태울 수 있을 정도였다. 합승한 손님들 중에는 처음 보는 사이면서도 자기들끼리 의기투합해 중간에 차에서 내려 다시 한잔하러 가는 분들도 적지 않았다. 이제는 다 옛날 얘기다."

지난 2일 오후 4시, 김영춘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후보의 홍보 현수막이 내걸린 한 대형건물이 위치한 부산 서면 로터리 인근.

이 곳에서 기자를 태운 거구의 택시 기사 김형진(70·남·가명)씨는 이동 중 1980년대 부산 남포동의 추억을 화제에 올렸다. 올해 일흔 살이라는 김 씨는 40년 이상을 택시 업계에 종사한 '부산 토박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짧은 머리에 체격이 큰 그를 만난 곳은 여당의 부산시장 후보 지원 유세가 예정된 사하구 홈플러스 장림점으로 이동하는 한 법인택시 소속의 차 안에서였다.

◇"80년대 후반 남포동 그리워"…투표 할지에는 ‘글쎄’

김 씨가 회고한 부산경제의 전성기가 바로 저달러·저유가·저금리로 전국이 들썩거리던 지난 1980년대 후반 3저 호황기였다. 한국경제가 저유가·엔고·저금리에 힘입어 첫 경상수지 흑자를 구현하고, 국내에 돈이 대거 풀리면서 부산은 물론 전국에서 유흥주점이 불야성을 이루고, 부동산 가격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던 시기다. 

김 씨는 보통 사람들도 쉽게 돈을 벌 수 있던 시기였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 때 부산에서는 여러 사람이 택시에 지분을 투자하고, 매달 수익금을 투자금에 따라 나누는 형태의 재테크가 유행했다고 한다. 그는 당시 투자자들에게 줄 수익금을 제하고도 손에 쥐는 돈이 적지 않았다며 "그때가 정말 좋았다"고 회고했다. 그가 기억하는 80년대 3저 호황기 부산의 풍경이다.

역마살이 있어서인지 평생을 택시업에 종사하며 유목의 삶을 살아온 김 씨가 밥벌이의 어려움을 체감했을 때는 코로나19가 대구에서 급속도로 퍼져나가던 작년 3월 이후다. 그는 "어느 날 정말 거짓말같이 콜이 단 한 것도 뜨지 않았다"고 했다. 버스와 지하철 등 대중교통망이 확산하면서 택시가 설 자리가 점차 위축되기는 했지만, 승객들이 아예 사라져버린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고 한다.

[부산=뉴시스]4일 오후 김영춘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후보의 남포동 유세현장에서 '부산 갈매기'를 합창하며 춤을 추는 민주당 의원들.

[부산=뉴시스]4일 오후 김영춘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후보의 남포동 유세현장에서 '부산 갈매기'를 합창하며 춤을 추는 민주당 의원들.

부산경제의 비상과 추락의 시기를 모두 경험한 김 씨는 4·7 재보선 투표장에 갈지는 여전히 고민 중이라고 고백했다. 그는 "회사에서는 선거 당일 투표 시간을 1시간 정도 인정해 준다고 한다"며 "하지만 누가 되든 크게 달라질 게 있겠나. 코로나가 선거유세와 함께 다시 돌아온 거 같아 걱정"이라고 했다. 또 버스 전용차선을 없애거나, 특정 시간대에 탄력적으로 운용하도록 허용하는 내용의 공약을 내거는 후보가 있으면 "무조건 찍어줄까 싶지만 그런 후보는 없는 거 같다"고도 했다. 


◇"의원이 어찌 돈 몇 푼에" 정권 심판 '기류'도
 
지난 1일 오후, 기자가 만난 50대 후반의 택시 기사 박정수(57·남·가명)씨는 선거에 큰 관심이 없어 보이던 김 씨와는 결이 달랐다. 박 씨는 여당 소속의 한 국회의원을 언급한 뒤 "어찌 그럴 수 있냐"며 분노를 표출했다. 박 씨를 만난 장소는 사상구 괘법동의 한 아웃렛에서 서면으로 가는 길에 탑승한 택시 안이다.

박 씨가 화제로 삼으며 직격한 이 의원은 세월호 변호사 출신으로 공정과 정의의 가치를 중시해온 인물이다. 그런 그는 지난해 전·월세를 5% 이상 올려 받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대표 발의하고도 정작 자신은 법 시행 한 달 전 월세 임대료를 9% 이상 올린 것으로 드러나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박 씨는 이동중인 택시에서 10여 분 남짓 이어진 짧은 대화 시간 내내 "발등을 찍힌 격" "돈 몇 푼" 등의 표현을 동원해 당혹감을 피력했다. 그는 "그 사람 그렇게 안 보였는데"라며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찍힌 격"이라고 했다. 또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는 사람으로 여겼는데"라며 "어찌 돈 몇 푼에"라고도 했다. 기자에게 "이제는 정치 생명이 끝난 게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부산=뉴시스]최동준 기자 = 국민의힘 박형준 부산시장 후보가 5일 부산 수영구 아파트단지 앞에서 유세를 열고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2021.04.05. photocdj@newsis.com

[부산=뉴시스]최동준 기자 = 국민의힘 박형준 부산시장 후보가 5일 부산 수영구 아파트단지 앞에서  유세를 열고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2021.04.05. [email protected]

하지만 박 씨는 정작 여당 후보가 이날 발표한 '재난지원금 10만원' 공약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전 부산시민에게 10만원을 동백전 계좌에 넣어준다고 하는데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도 "국회의원이 다음을 생각해서라도 그러면 안되지"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부산 사람들이 은근히 똥고집이 있다"는 얘기도 했다. 

◇"경제시장 뽑아야" 호남 출신 기사..."선거는 어렵다"

지난 1일 오전, 부산 진구에 있는 천태종 계열의 사찰인 삼광사로 가는 길에 만난 택시 기사 송호진(69·남·가명)씨는 자신을 부산에 사는 호남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고향인 광주를 떠나 일찌감치 울산으로 건너와 현대정공에서 근무하다가 문득 남의 밑에 있는 게 지겨워 다시 처가가 있는 부산으로 와 택시 기사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송 씨는 영남에 온 지도 올해로 벌써 41년째라고 했다.

부산에는 정부 여당을 지지하는 호남 출신 유권자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송씨도 이들 중의 한 명이다. 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고향인 호남 땅을 일찌감치 떠나 조선·자동차 산업이 뿌리를 내린 울산이나 부산 등으로 이주한 이들이다. 하지만 호남 출신의 부산시민들도 요즘 어렵기는 매한가지다. 그는 "(부산이) 제2의 도시라고 해도 경기가 너무 안 좋다"고 했다.

그런 그는 "호남 출신이면 여당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질문에 손사래를 쳤다. 자신은 인물을 보고 뽑을 뿐이지 지역색에 따라 투표를 하지는 않는다면서도 부산시장을 뽑는 선거에 "무슨 정권심판론이냐"며 굳이 지지 후보를 감추지는 않았다. 부산에 사는 호남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고도 했다. 부산 경제가 쇠락한 배경도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신공항 실기를 꼽았다. 신공항 입지를 놓고 밀양과 부산 등 여러 지역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며 부산 경제 회생의 골든 타임을 놓쳐버렸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송 씨는 이번 부산시장 선거 결과에는 분명한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부산 민심이 너무 사납다. 여론이 좋지 않다"고 물밑 기류를 전했다.  "이번에는 힘들 거 같다"는 진단도 내놓았다. 다만 여당 후보 지지선언을 한 부산의 '청춘 포럼'을 화제에 올렸다. 젊은 층이 돌아오고 있어 다행이라는 평가도 내놓았다. 그는 "이번에는 힘들어도 1년 뒤에 하면 되지 않겠냐"라고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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