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석유가스 산업, 서방 제재 타격 체감 현실화
서방 러시아산 석유 수입 금지 조치에 화물 선적도 피해
엑손모빌 등 글로벌 정유업체들도 러 시장 철수 등 행보
새로운 투자, 기술 확보 부족해 향후 생산에도 영향 미쳐
[서울=뉴시스] 임종명 기자 = 러시아 석유·가스 산업계가 미국 등 서방 국가의 러시아산 원유 금수조치에 대한 영향을 본격적으로 입기 시작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앞서 서방 국가들은 이때까지 러시아 에너지 수출을 직접적으로 제한하는 것을 피해왔다. 그러다 미국과 캐나다는 러시아산 원유 수입 금지 조처를 했고, 러시아산 에너지에 의존도가 높은 유럽연합(EU)도 이를 고려 중인 상황이다.
여기에 서방 에너지 기업들의 이탈로 북극에서 태평양에 이르는 주요 프로젝트들이 차질을 빚고 있다.
엑손모빌은 지난 1일 러시아 석유·가스 사업에서 철수하고 신규 투자를 중단할 계획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이 회사는 러시아, 일본, 인도 기업이 참여하는 컨소시엄을 대표해 사할린-1 프로젝트 등 러시아에 40억 달러(약 4조8000억원) 상당의 사업에 참여했었다. 그러나 이번 러시아 제재를 계기로 사할린-1 프로젝트 등을 포기함으로써 러시아에서 25년 이상 지속된 사업을 끝마쳤다.
이와 함께 무역업 관계자들은 최근 몇 주 동안 러시아 석유 화물을 피하고 있다.
이 모든 상황이 러시아의 석유생산을 위협하고 있다. 이로 인해 러시아가 차지했던 전 세계 원유 생산량 10배럴 중 1배럴 가량이 시장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
분석가들은 이란과 베네수엘라와 같은 석유 생산국가들이 제재로 인해 생산에 타격을 입은 뒤 회복에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처럼, 러시아도 이렇게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러시아 석유회사 자문을 맡고 있는 컨설팅 회사인 루스에너지의 파트너 미하일 크루티킨은 "이는 수년 동안 산업을 후퇴시킬 것이다. 경쟁력의 상실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에너지 산업은 오랫동안 러시아의 강력한 무기로 활용되어 왔다. 이번 제재로 러시아의 무기를 무뎌지게 할 수 있다.
이것은 곤경에 처한 러시아 경제에도 큰 타격을 입힌다.석유 및 가스 부문은 러시아 수입의 약 40%를 차지한다. 이와 함께 러시아 에너지 업계에서 일하는 150만명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
[워싱턴=AP/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경제 제재로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의 수입 금지를 발표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러면서 동맹국과 파트너들의 동참은 각국의 결정 사항이라고 밝혔다. 2022.03.09.
제재의 여파는 이미 드러나기 시작했다.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셰브론 등이소유하고 있는 카스피 파이프라인 컨소시엄은 카자흐스탄에서 흑해로 가는 송유관을 통한 원유 수출이 하루 100만 배럴 가량 감소할 수 있다고 밝혔다.
송유관에 수리가 필요한 상황인데 제재로 인해 복구가 지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관리들은 이 수리 작업에 최대 2개월이 걸릴 수 있다고 했다.
셰브론 관계자는 "현재 시장 상황을 평가하고 있다. 예비 부품을 찾는 것이 다소 어려울 수 있다"고 전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원유와 응축액을 포함한 러시아의 원유 생산량은 올해 들어 15% 감소해 2003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부분 정유업체의 시추는 러시아 현지 업체가 제공하지만 고급 탐사 및 기술은 국제 기업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러시아의 석유 생산량은 이번 10년 내 최고조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었다. 하지만 다수 유정이 노후됐고 땅에서 원유를 꺼내기 위한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노동 집약적인 기술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러시아 기업들은 더 많은 매장량을 확보하기 위해 수압파쇄법이라 불리는 프래킹 공법과 같은 기술을 미국에서 차용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었다. 하지만 제재 압박으로 인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다.
라이스타드 에너지의 서비스 연구 책임자 어던 마르틴슨은 "러시아가 필요로 하는 새로운 투자와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에 석유 생산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 러시아는 정유 기반 시설 개발에 중요한 액상화 장치와 저수지 자극 서비스와 같은 기술을 이용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와 함께 정유사들은 정제 공정에 필요한 특정 화학물질을 조달하기 위해 고군분투할 것"이라고 보탰다.
카네기 모스크바센터 싱크탱크의 선임연구원 알렉산더 가부에프는 "러시아 에너지 회사들은 일부 기술자들을 서구 기업들에서 훈련시키고 있다. 이제 그들은 최첨단 기술도, 초안전 기술도 아닌 열등한 기술로 그럭저럭 살아가려고 할 것"이라며 "그 기술도 소련의 기술이지 21세기 기술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라이스타드 에너지 컨설턴트들은 제재가 몇 년 동안 지속된다면 생산량이 전쟁 이전의 정점으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컨설팅 업체인 유라시아의 에너지, 기후 및 자원 담당 이사 헤닝 글로이스타인은 "러시아는 사실상 투자하기 어려워졌다"며 "중국이나 인도처럼 러시아에 제재를 가하지 않은 국가의 기업들조차도 2차 제재가 두려워 참여를 꺼리고 있다"고 밝혔다.
[지다=AP/뉴시스]알렉산드르 노바크 러시아 에너지 장관이 지난 2019년 5월19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지다에서 열린 경제협력개발기구(OPEC) 및 동맹국 에너지 장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 2021.10.15.
러시아산 석유는 아직 유럽으로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많은 무역업자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우랄산 원유의 선적을 꺼리고 있다. 우랄산 원유는 이날 기준 배럴당 85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이는 국제 기준인 브렌트유(115달러)에 비해 대폭 할인된 가격이다.
컨설팅업체 아페리오인텔리전스의 분석가 조지 볼로신은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석유 수출에 대한) 직접 제재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수출이 어려워) 러시아 내 석유 탱크가 가득 차 저장할 곳이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관리들은 수출처를 다변화하고 석유 생산량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알렉산드르 노바크 러시아 에너지 부문 부총리는 석유 및 가스 회사들이 제재로 인해 4월과 5월에 물류와 에너지 공급 지급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바크 부총리는 "아마도 수입이 줄어들 것이다. 수출이 줄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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