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책무까지…" 정동년 5·18재단 이사장 조문 물결(종합)
신군부 고문·날조로 '5·18 주동자' 몰려 사형수로 복역
무고한 옥고 뒤에도 항쟁 진실 규명·책임자 처벌 앞장
별세 전날까지 항쟁 행사 참석…"남은 자 책무 다했다"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29일 오후 광주 동구 학동 금호장례식장 내 고(故) 정동년 5·18기념재단 이사장의 빈소에서 조문객들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고 정 이사장은 5·18 항쟁 당시 '내란 주도' 누명을 쓰고 군사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사면된 직후 항쟁 정신 계승과 진상 규명에 앞장섰다. 2022.05.29. [email protected]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42주년 5·18항쟁 기념행사를 이끌며 책임감이 얼마나 무거웠으면…"
29일 오전 광주 동구 학동 금호장례식장 301호 분향소.
5·18민주화운동 당시 '내란 주도' 혐의로 억울한 옥고를 치르고, 일생을 항쟁 진상 규명 등에 앞장 선 고(故) 정동년 5·18기념재단 이사장의 빈소에는 조문객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침통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 조문객들은 고 정 이사장의 영정 앞에 헌화·분향한 뒤 유족들의 뜻에 따라 목례를 했다. 거동이 불편해 부축을 받고 빈소에 들어선 한 노인은 가까스로 큰절을 한 뒤 안경 사이 흐르는 눈물을 소매로 훔쳤다.
조문객들은 올해 42주년 5·18민중항쟁 기념행사위원회 상임위원장이었던 고 정 위원장이 전날 밤까지 이어진 행사를 끝까지 참석한 뒤 세상을 뜬 것을 두고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박관현 열사의 누나인 박행순 여사는 "고령인 분이 무더운 날씨에 5월 한 달 내내 기념 행사에 참석하면서 얼마나 힘에 부쳤겠느냐"며 "마지막 순간까지 항쟁 정신을 후대에 널리 올바르게 알리고자 노력한 고인이 편히 쉬길 바란다. 미안할 따름이다"고 슬픔에 빠졌다.
차종수 5·18기념재단 연구소 팀장은 "지난 1년 동안 곁에서 이사장으로 모셨는데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셨다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며 "살아남은 자의 의무감과 책임감으로 일생을 살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항쟁 기념 행사를 무사히 치르는 일만 생각하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조문을 마친 안종철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 부위원장은 "5·18 항쟁에 상징적인 분이시고, 진실 규명을 위해 큰 역할을 하실 분이 황망하게 세상을 떠나 슬프다"며 "어른의 큰 뜻을 따라 오월 정신을 올바르게 계승하고 미완의 항쟁 진상을 규명하는 데 더욱 힘쓰겠다"고 밝혔다.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29일 오후 광주 동구 학동 금호장례식장에 고(故) 정동년 5·18기념재단 이사장의 빈소가 차려져 있다. 고 정 이사장은 5·18 항쟁 당시 '내란 주도' 누명을 쓰고 군사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사면된 직후 항쟁 정신 계승과 진상 규명에 앞장섰다. 2022.05.29. [email protected]
전날 늦은 밤까지 고인과 함께 있었던 김형미 오월어머니집 관장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김 관장은 "전날 오후 9시 넘어 42주년 기념 마지막 행사 '오월의밤'을 마치고 자택까지 모셔다 드렸다. 차 안에서 나눴던 대화와 인자했던 미소가 생생하다"고 밝혔다.
이어 "생전 마지막 대화 역시 온통 5·18에 대한 근심 뿐이었다. 특히 5·18유공자 단체들이 공익법인 전환 이후 항쟁 정신 계승, 유공자 선양 사업을 보다 잘 이끌어가야 한다며 거듭 강조하셨었다"며 고인의 마지막 뜻을 전했다.
황일봉 5·18부상자회장은 "신군부에 의해 '5·18 사형수'로 평생을 굴레 속에 살면서 무엇보다도 5·18이 제대로 평가 받길 바랐다. 먼저 간 오월 영령들의 뜻을 왜곡하지 않고 널리 계승하는 데 늘 앞장섰던 고인의 삶을 깊이 애도한다"고 했다.
류봉식 광주진보연대 대표는 "민주 진영의 큰 어른이셨다"며 "생애 마지막까지 항쟁 정신을 바로 세우고 진실을 규명하겠다는 의지로 5·18기념재단까지 이끄셨던 고인의 뜻이 못다 이룬 건 아닌지 안타깝고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고 정 이사장은 이날 오전 10시 광주 남구 자택 인근 모처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1964년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을 맡았던 그는 1965년 한일굴욕외교 반대 투쟁을 이끌다 구속·제적당했다. 이후 사회 생활을 하다 1980년 37세 만학도로 복학했으나, 5·17 비상계엄 확대 조치에 따른 예비 검속으로 옥고를 치렀다.
전두환 신군부가 꾸며낸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에 휘말려 모진 고문을 당한 뒤 내란수괴 혐의를 뒤집어썼다. 군사 재판에서 이른바 '광주사태 주동자'로 분류, 사형을 선고받았다.
1982년 12월에서야 성탄절 특별사면조치로 석방됐으며, 5·18 진실 규명을 비롯한 사회 운동에 헌신했다.
1988년 국회 광주 청문회에서는 신군부의 고문 수사가 사실이라고 폭로했고, 1994년에는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 35명을 내란 목적 살인 등 혐의로 고소해 처벌을 이끌어냈다. 1995년 검찰의 5·18 학살 책임자 불기소 처분에는 수사 결과를 검증하며 지속적으로 투쟁을 벌였다.
고 정 이사장은 광주민중항쟁연합 상임의장,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공동의장, 5·18민중항쟁 30주년 기념행사위원회 상임행사위원장, 이철규 열사 사인규명대책위 공동의장 등을 역임했다.
지난해에는 제14대 5·18기념재단 이사장으로 선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활동에 힘썼다.
장례는 '민주국민장' 형식으로 3일 간 치러진다. 영결식은 오는 31일 오전 10시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에서 열린다.
노제는 5·18기념재단과 고인의 모교인 전남대학교에서 펼쳐진다. 유해는 국립 5·18민주묘지에 안장된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명자 전 오월어머니집 관장과 아들 재헌·재철씨 등이 있다.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29일 오후 광주 동구 학동 금호장례식장 내 고(故) 정동년 5·18기념재단 이사장의 빈소에서 조문객들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고 정 이사장은 5·18 항쟁 당시 '내란 주도' 누명을 쓰고 군사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사면된 직후 항쟁 정신 계승과 진상 규명에 앞장섰다. 2022.05.29.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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