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백자 보러 가세요?"...'리움미술관 BTS' 이준광 연구원의 'TOP 10'
국보 보물 명품 185점 쏟아져 '문전성시'
"다시 볼 수 없는 전대미문 전시" 입소문
리움미술관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그야말로 '문전성시'다. 요즘 리움미술관은 '문턱이 없어졌다'는 말까지 나온다. 고급 미술관의 콧대 높던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아침부터 '오픈런'에 폐장 시간까지 북적여 '시민 공원'처럼 보인다. 유료에서 무료로 전시를 개방한 것도 큰 이유지만 '다시 못 볼 전시'라는 입소문이 이어지고 있다. MZ세대들의 '필람' 코스이자, 6070세대들의 나들이 장소로도 인기다.
세계적인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 대규모 전시와, 국보와 보물이 쏟아진 '조선의 백자'전이 '이건희 컬렉션' 전시 못지 않은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도발적인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도 깜짝 놀랐다. '돈을 벌 수 있는' 자신의 전시를 무료로 선보인 리움의 통 큰 배포와 논란을 낳던 이전 전시와 달리 경건하게 감상하는 모습이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무료 전시'가 아깝다는 평이 많다. 오히려 '입장료를 받아라'는 민원까지 들어온다고 한다. 특히 총 185점이 나온 '조선의 백자'전은 전대미문의 최대 규모 전시로 한번은 아쉬워 'N차 관람'이 이어지고 있다.
'조선의 백자:군자지향(君子志向)'전을 기획한 이준광 리움미술관 연구원은 그 어느 해보다 행복하다. 현대미술에 치중했던 리움에서 고미술전문가로 12년을 숨죽였던 내공을 유감없이 발산했다. 조선 백자 감상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호평과 함께 신박한 설명으로 얼굴을 알아보는 관람객들까지 생겨 '리움미술관 BTS'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리움미술관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君子志向)' 전시를 담당한 이준광 책임연구원. 2023.03.18. [email protected]
사람도 백자도 사랑을 먹고 산다. '햇살처럼 화사하고 달빛처럼 고요한' 조선 백자의 위용은 이준광 연구원의 열정이 차이를 만들었다. 앞면만 보여주는 도자 전시가 아니다. 조선 백자의 아름다움과 매력을 사방팔방에서 뽐낸다. 유리로 제작한 쇼케이스에 들어간 도자들은 뒤태는 물론 뒷면의 그림까지 볼 수 있어 품격을 더한다. 특히 용이 몸통을 휘감은 '백자청화 운룡문호'는 디지털 화면에서도 진가를 발휘한다. 구불구불한 용 무늬를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져 보여지는데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 연구원의 야심작으로 당시 그 자체로 곧 왕이었던, '용 그림'의 위엄을 관람객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수백억 국보와 보물, 달항아리가 특히 눈길을 끌고 있지만 전시에 나온 모든 도자가 귀하고 보배에요. 모두 무가지보(無價之寶)입니다."
검은 배경에 조명을 받고 있는 조선백자들은 압도적이다. 수십 년에서 수백 년의 모진 세월을 견디고 살아남은 덕분일까? 더 없이 환희에 찬 풍모로 우리를 맞이한다.
청화백자, 철화백자, 순백자, 지방 순백자까지 도자 역사를 '일타강사'처럼 전시장에 정리한 이준광 연구원이 '185점 중 이 백자는 꼭 다시 한번 더 봤으면' 하는 10점을 꼽았다. (이 연구원은 성공적 전시에 힘입어 내년에 선보일 '분청 사기'전을 준비하고 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백자도 그렇다. 전시는 5월28일까지.
백자청화 매죽문 호. 사진=리움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①백자청화 매죽문 호(白磁靑華梅竹文壺):조선 15세기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청화백자 중에서도 당당한 형태와 화려한 그림 장식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최고의 명품입니다. 표면에는 푸른빛의 청화 안료를 사용하여 매화와 대나무를 정교하게 그렸는데, 붓놀림이 회화적이어서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듯합니다. 청화 안료는 중국을 거쳐 수입된 페르시아산으로 조선 초에는 그 값이 금보다도 비쌌기 때문에 왕실용 백자의 제작에만 사용하도록 법으로 엄격히 규제하고 있었습니다. 중국 원나라 말기, 명나라 초기에 청화백자 제작 기술이 조선에 도입되면서 조선백자가 새롭게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예로, 학술적으로도 매우 가치가 높은 작품입니다."
_백자철화 포도문 호. 사진=리움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②백자철화 포도문 호(白磁鐵畵葡萄文壺):조선 18세기 전반
"조선백자에 사용된 안료 중 최고급품은 파란색을 내는 청화이지만, 변화무쌍한 짙은 갈색으로 강인한 힘을 전달하는 철화 안료는 백자가 가진 매력을 더욱 풍성하게 합니다. 풍만한 곡선을 이루며 아래로 내려가는 형태의 항아리에 포도와 포도잎은 넓은 면을 이루도록 짙고도 짙게 그렸는데, 그 과감성이 응축된 색과 어울려 강렬하게 전해집니다. 이와는 반대로 가지에서 내려오는 잔 덩굴은 구불구불 섬세하고 여리게 표현되어 대비를 이룹니다. 정적인 포도 문양이 있는 이 작품에 하나의 파문을 던지는 것은 덩굴 사이를 건너 뛰는 원숭이의 모습입니다. 세부가 표현되지 않았음에도 자세, 안료의 발색, 번짐에서 역동성이 묻어나 보는 재미를 더합니다. 조선 도자사에서 철화백자의 전성기였던 시기는 17세기부터 18세기 전반까지인데, 이 작품은 이 시대의 집약체입니다."
백자청화철채동채 초충난국문 병. *재판매 및 DB 금지
③백자청화철채동채 초충난국문 병(白磁靑華鐵彩銅彩草蟲蘭菊文甁)
정갈한 순백색의 단정함과 절제된 청화 장식에서 조선백자의 전통을 찾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수요층의 요구에 대응하며 등장한 채색 백자가 품은 색다른 분위기도 조선 후기에 형성된 새로운 전통입니다. 가느다란 목에 비해 풍만한 몸체, 그 위에 곤충과 난, 국화가 도드라지도록 깎거나 붙여 1차적인 장식을 했습니다. 여기에 난은 청화 안료를 덧입히고, 국화 줄기와 잎, 곤충은 철화 안료로 채색했습니다. 국화꽃은 철 안료, 동 안료로 잎마다 정성껏 칠한 것도 있고, 순백인 채로 둔 것도 있어 색색깔로 피어난 국화를 재치있게 표현했습니다. 청화, 철화, 동화 안료를 함께 사용하여 색을 내는 것은 기술적으로 어려운 것으로 이 병을 제작한 장인의 기술이 매우 뛰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 후기 조선백자에 새롭게 대두되는 창의적이고도 진보적인 조형감각이 빚어낸 수작입니다.
백자 개호. 사진=리움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④백자 개호(白磁蓋壺):조선, 15세기
조선 초기의 백자는 새 왕조가 지닌 활기찬 기운을 반영하듯 형태가 당당하고 의젓합니다. 특히 질이 우수한 백자들은 왕실의 취향에 따라 순백의 아름다움과 품격 높은 모양을 갖추고 있는데, 이 작품은 이러한 특징을 두루 갖춘 대표작으로 손꼽힙니다. 뚜껑에 달린 봉오리 모양의 꼭지나 매우 깨끗한 흰빛을 띠는 색도 조선 초기 백자에 보이는 특징입니다. 이 시기에 제작된 여러 백자 가운데서도 전체의 모양과 백자의 색깔이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우리 백자의 예술성과 기술 수준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백자 달항아리. 사진=리움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⑤백자 달항아리(白磁滿月壺)조선, 18세기
왕실용 백자를 제작하던 경기도 광주의 가마에서 만든 둥근 항아리로, 풍만하고 여유로운 모습이 마치 보름달을 닮았다고 해서 달항아리라고 부르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만한 크기와 둥그스름함이 달항아리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둥글고도 단순한 형태에서 조선 후기 순백자의 격조미가 가장 잘 나타난다고 평가되기도 하지만, 제작 과정에서 몸체의 위와 아랫부분을 따로 만들어 붙이기 때문에 대개는 접합 부분이 변형되어 의도한 둥근 형태가 나오는 예가 극히 드뭅니다. 이 항아리는 다른 달항아리에 비해 큰데다 중앙의 이음새 흔적도 깨끗하게 마무리되어 있어, 순백자의 은은하고 품위 있는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_백자청화 보상화당초문 잔받침. 사진=리움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⑥백자청화 보상화당초문 잔받침(白磁靑華寶相華唐草文盞托) 조선, 15세기
넓고 편평한 바닥, 꺾여 면을 이룬 입술, 지름이 길고 높이가 낮은 굽, 키가 매우 낮은 몸체 등 15세기 잔받침의 특징이 잘 드러난 작품입니다. 상상의 꽃인 보상화(寶相華)와 이를 잇는 덩굴을 주요 문양 소재로 삼았는데, 중앙의 보상화를 중심으로 다섯 개의 보상화와 덩굴이 주변을 가득 채우도록 배치하였습니다. 꺾여 면을 이룬 입술에는 파도문을 장식하여 마무리하였습니다. 보상화는 중국의 공예의장화된 보상화 문양이 조선 초기에 유입되어 사용된 것으로 이 시기 크게 유행한 뒤 이후에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잔받침을 뒤집어 보면 일곱 개의 칠보문(七寶文)을 배치하였습니다. 칠보문은 본래 티베트 불교에서 사용한 문양이지만 조선에서는 본래의 의미는 사라지고 상서로운 문양이라는 인식만 남은 채 사용되었습니다. 금속기(金屬器)를 모방한 듯한 날렵한 형태, 눈부시게 흰 유약의 색, 그 위에 그려진 화려한 문양 등이 특징인 초창기 청화백자의 빼어난 미가 듬뿍 담겨 있는 작품입니다.
_백자철화 운룡문 호. 사진=리움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⑦백자철화 운룡문 호(白磁鐵畵雲龍文壺) 조선, 17세기
용이 그려진 항아리는 조선 왕실 주요 행사에 사용된 중심적 기종으로 용준(龍樽)이라 불렸습니다. 본래 청화 안료를 사용하여 장식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이처럼 17세기 전 중반경에는 철 안료를 사용해 장식한 예도 전합니다. 왜란과 호란을 겪으며 어려워진 조선의 경제적 사정, 중국의 명청 교체기 등 복합적인 이유로 고급 재료인 청화 안료를 구할 여건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조선 왕실은 이에 대한 대안으로 순백자 위에 임시로 용을 그린 가화(假畵) 용준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림이 지워지는 등 문제가 있어 철 안료로 장식한 철화백자 용준을 제작하게 됩니다. 이 작품은 왕실에 왕이나 왕비가 돌아가셨을 때부터 삼우제(三虞祭)까지에 해당하는 흉례(凶禮) 때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항아리의 크기는 물론 힘찬 용의 표현, 용의 몸을 휘감고 있는 박력 있는 구름 등이 인상적입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철화백자 용준과 비교해 보아도 유사한 예를 찾기 어려운 희귀한 사례로 그 가치가 매우 높습니다.
백자철화 매화문 편병(왼쪽 앞면, 오른쪽 뒷면)사진=박현주미술전문기자. *재판매 및 DB 금지
⑧백자철화 매화문 편병(白磁鐵畵梅花文扁甁)조선, 17세기
편병은 편평한 양면이 둥글면서도 측면으로 이어지는 선이 반듯하게 각져 있어 편안함과 긴장감이 공존하는 독특한 기종입니다. 보통 원형으로 구획된 공간을 활용해 각각의 면을 장식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작품은 장식 소재로 삼은 매화를 한 면에 유감없이 그려낸 뒤 이것으로는 부족하다는 듯이 과감하게 어깨를 타고 넘어가 반대 면에 펼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의 그림이 양면으로 이어지는 방식은 그 예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독특한 것으로 이 매화를 그린 장인의 과감함에 탄성이 나올 정도입니다. 매화 가지의 굵고 가는 표현, 이에 따른 철화 안료의 짙고 옅음의 변화,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는 소담한 매화가 잘 조화되어 훌륭한 명작을 만들어냈습니다.
백자철화 초화문 호 사진=무다 토모히로[六田知弘] *재판매 및 DB 금지
⑨백자철화 초화문 호(白磁鐵畵草花文壺)조선, 17세기 후반
항아리 몸체에 꽃들이 가득 피어 있어 생명력 넘치는 대향연이 펼쳐지는 듯한 기운찬 작품입니다. 항아리는 정선된 흙으로 목부터 어깨, 하부에 이르기까지 단정한데, 밑동에서 굽에 이르는 부분에서 직각을 이루는 것이 독특합니다. 장식은 철화 안료를 이용하였는데, 구도와 비례에 대한 구속 없이 어린아이가 그린 듯 천진스러운 꽃들로 한가득 봄을 펼쳐 담았습니다. 꽃 모양은 빙글빙글 돌아가는 선으로 그려 마치 현대의 막대 사탕 같은데, 비슷한 시기 제작된 철화 백자의 구름 표현과 닮아 흥미롭습니다. 뒷면은 꽃은 적고 앙상한 가지와 널은 잎들이 여백을 두고 자리하고 있어 앞면과 달리 호젓한 느낌이 감돕니다. 항아리의 품질은 경기도 광주 관요에서 만든 듯 양질이지만, 그림은 지방 가마에서 만든 듯 자유로와 묘한 이질감이 공존하는 보기 드문 작품입니다.
백자동화 호문. 사진=리움미술관 *재판매 및 DB 금지
⑩백자동화 호작문 호(白磁銅畵虎鵲文壺)조선, 18세기
18세기 조선은 경제가 발전하면서 상서로운 의미를 담은 민화에 대한 새로운 수요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민화는 자연스럽게 백자에도 스며들었는데 이 항아리에 있는 호랑이, 까치, 소나무는 우리에게 까치 호랑이 그림으로 잘 알려진 호작도(虎鵲圖)의 요소들입니다. 배경의 세세한 묘사들은 생략한 채로 한 면에 비스듬히 앉아 앞을 보고 있는 호랑이를 큼직하게 표현하였는데, 무심한 선들을 더해 호랑이 털의 질감을 표현해낸 기술이 감탄스럽습니다. 나머지 너른 면에는 소나무를 펼치고 가지 위에 앉아 있는 까치 한 마리를 그려 완성했습니다. 까치 호랑이 그림의 주요 요소들만을 채택해 배치한 과감성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18세기 동화 백자의 특색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