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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지 말라고 할까 봐"…폭염에도 못 쉬는 노동자들[현장]

등록 2023.08.01 15:54:09수정 2023.08.01 16: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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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부 '온열질환 예방지침'은 언감생심

"맞출 수 없는 공기 제시하고 압박한 탓"

5년간 온열질환으로 노동자 23명 사망

[서울=뉴시스] 임철휘 기자 = 1일 낮 12시 재개발 공사가 한창인 서울 송파구의 한 건설현장 앞에서 노동자 한 명이 휴식을 마치고 현장으로 돌아가고 있다. 2023.08.01. fe@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임철휘 기자 = 1일 낮 12시 재개발 공사가 한창인 서울 송파구의 한 건설현장 앞에서 노동자 한 명이 휴식을 마치고 현장으로 돌아가고 있다. 2023.08.01.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임철휘 기자 = "쉬고 있으면 '오야지(작업팀장)'가 눈치 줘.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고 할까 봐 못 쉬지."

1일 낮 12시 재개발 공사가 한창인 서울 송파구의 한 건설현장 앞. 점심시간 공사장을 빠져나온 박모(64)씨가 흙 먼지와 땀으로 얼룩진 웃옷을 펄럭거렸다.

한낮 최고기온이 35도까지 오른 무더운 날씨였지만, 박씨는 뙤약볕을 피하려 긴 옷으로 몸을 덮고 있었다. 그는 "그늘 없는 데서 철근 배근 작업을 하다가 어지러워서 잠깐 주저앉았다"며 "할당량을 채워야 해서 오래 쉬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연일 이어지는 불볕더위로 노동자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고용노동부 '온열질환 예방지침'에 따르면, 폭염특보가 발효 중일 때 노동자들은 1시간에 10~15분 이상씩 규칙적으로 휴식하고, 오후 2~5시엔 옥외작업을 최소화해야 한다.

그러나 이 지침이 의무가 아닌 '권고'에 불과해 지켜지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박씨는 "새벽 6시50분부터 일을 시작해서 11시까지 딱 한 번 쉬었다"며 "얼음물이 있는 그늘막에서 15분 정도 쉬었다"고 전했다.

4시간 동안 딱 한 번 휴식을 취한 셈이다. 낮 12시 기준 서울 송파구 잠실동 최고 온도는 33.9도로 폭염경보가 발효돼 있었다. 기상청은 이날 잠실동의 한낮 최고 기온이 37도까지 오를 것으로 봤다.

이날 만난 다른 노동자 A씨도 "오야지가 쉬면 다 같이 쉬고, 일하면 다 같이 일한다. 오야지는 회사 눈치를 많이 봐서 2시간에 한 번 꼴로 쉰다. 좀 더워도 그때까지 기다리는 편"이라고 말했다.

대전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 관리자인 임모(35)씨도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지침을 다 따르면 진도가 안 나간다"며 "공사 현장은 시간이 곧 돈이다. 공기를 맞추라는 회사 압박이 워낙 커서, 현실적으로 내가 먼저 나서서 '쉬어라'고는 할 수 없는 노릇"이라고 전했다.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낮 최고 기온이 35도 안팎을 기록하는 무더위가 이어지는 31일 광주 북구 오치동 한 건설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얼음물을 마시고 있다. (사진=광주 북구 제공) 2023.07.3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낮 최고 기온이 35도 안팎을 기록하는 무더위가 이어지는 31일 광주 북구 오치동 한 건설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얼음물을 마시고 있다. (사진=광주 북구 제공) 2023.07.31.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정부가 발주한 공사현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경상북도 의성의 한 철도 시공 현장에서 안전관리를 담당하는 안모(31)씨도 뉴시스와 통화에서 "1시간에 한 번씩 쉬면 공기를 맞출 수 없다"며 "어제도 '반장님 좀 서둘러야겠는데요'라고 재촉을 여러 번 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애초에 회사에서 맞출 수 없는 공기를 제시하고, '왜 이 현장은 공기가 늦지'라며 은근한 압박을 한다. 회사가 공기를 늦추지 않는 이상 가이드라인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고 지적했다.

'주기적 휴식'은 일정이 빠듯한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6년 차 드라마스태프인 조모(32)씨는 "어제는 땡볕에 7시간 동안 야외 촬영을 했다"며 "촬영 일정을 따라다니느라 전체 촬영 중에 딱 두 번 쉬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실내 촬영 때도 에어컨 소음이 들어가면 안 돼서 '사우나' 같은 환경에서 촬영하곤 한다"며 "아무리 건강해도 건강이 망가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고 덧붙였다. 그는 요즘 식염포도당을 들고 다니며 촬영 때마다 섭취한다고 전했다.

물류센터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공공운수노조 쿠팡물류센터지회는 이날 오전 "쿠팡 측은 고용부 가이드라인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자의적 해석에 따라 휴게시간을 보장하지 않고 있다"며 쿠팡 측에 고용부 지침에 따른 폭염 휴게시간 보장을 촉구하는 파업에 나섰다.

이들은 오는 2일부터 자체적으로 체감온도가 33도일 때 시간당 10분, 35도일 때 시간당 15분씩 쉬는 방식으로 저항할 예정이다.

한편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온열질환 진단을 받은 노동자는 152명이고, 이 가운데 23명이 숨졌다.
[서울=뉴시스] 고용노동부의 '온열질환 예방지침'. 지침에 따르면 폭염특보가 발효 중일 때 노동자들은 1시간에 10~15분 이상씩 규칙적으로 휴식하고, 오후 2~5시엔 옥외작업을 최소화해야 한다.(사진=고용노동부 제공) 2023.08.0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고용노동부의 '온열질환 예방지침'. 지침에 따르면 폭염특보가 발효 중일 때 노동자들은 1시간에 10~15분 이상씩 규칙적으로 휴식하고, 오후 2~5시엔 옥외작업을 최소화해야 한다.(사진=고용노동부 제공) 2023.08.01.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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