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운동장 미끄럼틀만 '덜렁'…"사고날까 봐"[현장]
아이들 "놀고 싶은데 놀이기구 없어 못 놀아"
학교 관계자 "사고나면 책임 소재 문제 생겨"
전문가 "아이들, 놀이에서 위험 대처법 배워"
[서울=뉴시스] 박광온 기자 = 5일 오전 서울 관악구의 한 초등학교 놀이터에 그네, 사다리 타기 등 전통적인 놀이기구는 없었고, 소규모 종합놀이대 2개만 놓여있는 있었다. 2023.12.05. [email protected]
지난 5일 뉴시스가 찾은 서울 종로구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는 미끄럼틀과 모래 운동장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하교시간 학생들은 학교를 빠져나오기 바빴다. 인근 초등학교에도 그네와 정글짐 등은 보이지 않았고, 3~4개 정도의 놀이 시설만 남아있었다.
다른 초등학교도 상황은 비슷했다. 서울 관악구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는 소규모의 종합 놀이대 2개만 있을 뿐 과거 흔하게 볼 수 있었던 그네와 정글짐, 철봉, 사다리, 시소 등은 찾아볼 수 없었다.
초등학교 2학년인 이모(8)양은 "놀고 싶은데 학교에 놀이기구가 많지 않아서 못 놀아요"라고 말했다. 이양의 어머니인 김모(34)씨는 "제가 초등학교에 다녔던 90년대와는 학교 운동장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라며 "친구들과 그네 타고 뜀틀 위를 뛰어다니며 술래잡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런 놀이기구가 많이 없다"고 전했다.
학교에서 '옛날 놀이터'가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 건 지난 2015년부터다. 강화된 '어린이놀이시설 안전관리법'이 본격 시행되면서 어린이 건강을 해칠 우려가 있는 놀이기구는 위해에 대한 안전 인증을 통과해야 한다.
또 학교 등 관리 주체는 놀이시설 이용 중 사고로 아이들이 다치거나 재산상의 손해가 발생하는 경우 손해 배상을 보장하기 위해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이후 '위험한' 놀이터들은 폐쇄됐고 관리감독 책임을 져야 하는 학교는 '안전한' 시설만 배치하게 됐다.
한 학교 관계자는 "학교 입장에서는 사고가 나면 보험 처리며, 각종 민원에 시달리게 된다"라며 "그런 책임을 지는 건 사회 전체적으로는 옳지만, 학교 차원에선 분명 여러 어려움이 있어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놀이기구는 설치를 꺼린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박광온 기자 = 지난 4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초등학교 놀이터에 미끄럼틀이 비치돼있다. 2023.12.05. [email protected]
초등학교 앞에서 만난 학부모들은 안전 문제로 아예 놀이기구를 없애는 데 아쉬움을 드러냈다.
초등학교 3학년 딸을 둔 정모(40)씨는 "내 아이가 다치지 않는 게 부모로서 최우선으로 갖게 되는 생각"이라면서도 "다양한 기구를 이용한 놀이는 아이들 교육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놀이터가 사라진 이후 아이들이 놀만한 곳이 없어, 돈을 내고 실내 놀이터에 데려가기도 한다"고 전했다.
학부모 안모(36)씨도 "안전 측면만 생각해서 무조건 없앤다고 하면 아무런 사고가 안 날 것이다"라며 "그런데 안전한 시설물을 만들면서 사고 발생 위험을 줄여야지, 아예 없애는 식으로 하는 건 교육 측면에선 올바른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전형적인 '행정 편의적 사고방식'이라고 지적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아이들은 살아가면서 위험한 상황에 많이 접하게 되고 그런 놀이를 통해서 대처 방법 등을 배운다"라며 "그런데 우리나라는 워낙 안전에 대한 요구가 강해 학교에서는 안전 문제가 없도록 놀이기구를 줄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물론 안전이 제일 중요하지만 안전 사고가 아예 나지 않도록 기구를 줄이는 건 책임 회피이며 행정 편의적인 사고방식"이라고 비판했다.
박창현 육아정책연구소 연구위원도 "안전사고 책임을 강화한 것이 더 안전한 놀이터 조성으로 이어진 게 아니라 아예 놀이기구를 없애는 방향으로 가게 된 것"이라며 "밖에서 뛰어 놀며 다양한 신체 활동을 하는 건 그 자체로 교육적 효과가 있는데, 놀이기구가 줄어들면 교육 기회가 사라지는 것이라 아이들의 발달에 안 좋은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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