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여성에 '몹쓸짓' 5·18 계엄군, 조사보고서로 실상 드러나
5·18 조사위, 계엄군에 의한 강간·성추행 등 사례 확인
19건 조사해 16건에 대해 '실재했다' 진상규명 결정
피해자들 진술·의료기록 종합 분석 토대로 결과 도출
[서울=뉴시스] 박태홍 기자 = 공수부대 계엄군이 1980년 5월 27일 새벽 전남도청 시민군 진압 작전을 마치고 도청 앞에 집결하고 있다. 박태홍 뉴시스 편집위원이 1980년 당시 한국일보 사진기자로 재직 중 5·18 광주 참상을 취재하며 기록한 사진을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에 즈음해 최초로 공개한다. (사진=한국일보 제공) 2020.05.17. [email protected]
조사를 통해 당시 자행된 강제추행, 강간, 구금·조사 과정에서의 성고문 등 피해 유형과 오늘날 피해자들이 겪고 있는 신체·정신적인 고통 사례가 구체화됐다.
다만 3년 6개월여 조사 기간 동안 피해 주장 사건 52건을 파악했음에도 피해자 또는 가족의 동의를 구하지 못하고 개연성을 입증하지 못해 피해 사건이 19건으로 축소된 점 등은 한계로 남았다.
조사위는 2일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는 1980년 5월 18일부터 이듬해 1월까지 이어진 시위·연행·구금·조사 등 과정에서 일부 계엄군이 자행한 성폭행 정황에 대한 조사 내용이 담겼다.
조사는 지난 2018년 피해자 발굴을 계기로 출범한 공동조사단의 조사활동에도 불구, 종합적인 피해실상 규명에 한계가 있다는 배경에서 출발했다.
조사위는 5·18 기간 동안 계엄군 또는 수사기관이 자행한 성범죄 52건을 취합, 이 중 19건을 추려 16건에 대해 '진상규명' 결정했다.
피해자들의 진술과 이에 대한 신빙성 확인차 진행된 정황·의료기록 분석, 가해 부대에 대한 추정 등을 통해 주장을 구체화하고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려 했다.
이 결과 5월 18일 공수부대의 광주 진입 당시 최초의 여성 피해자를 특정해내고 해당 피해자로부터 계엄군의 강제 추행이 있었다는 사실 등을 확인해 진상규명해냈다.
조사위가 확인한 23번 피해자의 경우 5월 18일 오전 광주 북구 수창초교 앞에서 계엄군에 의해 강제탈의 등 성추행 수모를 겪었다. 이 피해자는 7공수부대 33대대 한 지역대에 의해 이같은 사건을 겪었다.
당시 해당 부대 지역대장이 시위에 참여한 여성들에게 일부러 수치심을 일으켜 시위에 참여할 수 없도록 관련 지시를 내린 정황도 포착했다.
아울러 조사위는 이 피해자의 피해 사실이 5·18당시 계엄군이 여성에 저지른 최초의 성범죄 피해 상징성을 갖는다고도 의미를 부여했다.
[서울=뉴시스] 박태홍 편집위원 = 광주 시민군이 전남도청을 장악한 1980년 5월 24일 분수광장 앞에서 시민들이 “군사정권 타도”, “김대중 석방”을 외치며 집회를 하고 있다. 집회 중 신원 미상의 시신을 실은 트럭이 전남도청으로 들어서고 있다. 박태홍 뉴시스 편집위원이 1980년 당시 한국일보 사진기자로 재직 중 5·18 광주 참상을 취재하며 기록한 사진을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에 즈음해 최초로 공개한다. (사진=한국일보 제공) 2020.05.17. [email protected]
24번 피해자의 경우 5월 19일 대인동 공용터미널에서 강제 탈의 수모를 겪은데다 같은해 10월 자신의 자취방으로 찾아온 수사관에 의해 성추행을 당하는 등 후속 피해까지 겹쳤다.
강간 또는 강간미수 진술도 모였다. 피해자들은 계엄군의 강간 행위가 5월 19일 도심 시위 진압 작전 과정에서부터 시작돼 이후 계엄군이 외곽으로 물러난 21일부터 26일, 항쟁이 끝나는 같은달 27일까지도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사례를 모으면 모두 9건에 달한다.
구금·조사 과정에서의 성고문 등 피해도 수합됐다. 광산경찰서 유치장에 38일간 수감돼있던 32번 피해자는 잦은 하혈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조치를 받지 못한 점을 호소했으며 조사 과정에서 수사관이 모멸감을 주는 성적 폭언과 기합을 수시로 줬다고 진술했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당시 상황을 겪은 이후 외상 고통과 함께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호소했다. 당시 정조 관념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해한 경우, 유산을 한 경험, 산부인과 관련 질병으로 여태 고통 받아온 사례가 피해자들에게서 확인됐다.
[서울=뉴시스] 박태홍 기자 = 광주 금남로 일대에서 시민군과 계엄군 사이에서 유혈 충돌이 벌어진 1980년 5월 21일(부처님오신날) 봉축탑이 서 있는 전남도청 앞 분수대 광장에서 연일 민주항쟁 범시민궐기대회가 열리고 있다. 총탄에 찢기고 부서진 봉축탑이 그날의 혈전을 말해주는 듯하다. 박태홍 뉴시스 편집위원이 1980년 당시 한국일보 사진기자로 재직 중 5·18 광주 참상을 취재하며 기록한 사진을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에 즈음해 최초로 공개한다. (사진=한국일보 제공) 2020.05.17. [email protected]
조사 한계도 있었다.
구타·강간 피해를 진술한 4번 피해자의 경우 관련 진료 기록이 확보됐지만 목격진술 외 사실 조사 어려움이 있었다.
4번 피해자의 경우 5월 19일 오후 4시께 광주 한 거리에서 군용트럭에 태워져 외곽 야산으로 끌려간 뒤 강간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관련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며 진료를 받거나 시설에 입소된 사실이 확인됐다.
추가 조사 과정에서 군용 트럭으로 여성을 납치하는 모습을 목격했다는 제보자 진술이 확보됐지만, 작전 상황에서 군인들이 민간인 여성을 납치해 강간한 일탈 행위에 대해 추가 사실 관계나 경위 확인은 어려웠다.
다만 조사위는 이 피해자가 1996년 서울중앙지검 조사 당시부터 관련 피해 사실을 꾸준히 증언해온 점, 목격자 진술이 일관적인 점에 따라 개연성이 있다고 판단해 진상규명을 결정했다.
보고서를 검토한 전원위원 중 소수는 조사위의 조사결과를 지적하기도 했다.
일부 전원위원은 전날 별도 보도자료를 내고 ▲진상규명 결정된 사건 16건 중 13건이 표결로서 진상규명 결정 처리된 점 ▲해당 13건에 대해 심의 과정에서 성인지 감수성 이론을 채택한 점 ▲피해 현장에 있었던 계엄군에게 스스로 성폭력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도록 하는 책임을 부여했다고 지적했다.
조사위는 오는 15일까지 이번 보고서에 대한 광주 시민 단체의 의견을 수렴한다. 이후 종합된 의견을 대정부 권고안 등과 함께 묶어 오는 6월 발표되는 대국민 종합 보고서에 첨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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