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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아름다움의 한 끝, 결국 어떤 종류의 유희에 닿아있다"…박쥐단지

등록 2024.07.04 05:35:08수정 2024.07.04 06:3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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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언·김아일·김한주·Mesani

이이언·제이클레프·차종환·HWI

걸출한 여덟 뮤지션 뭉친 컬렉티브

첫 컴필레이션, 특별한 사운드 실험군의 아름다운 미학

함께 빚어낸 숭고한 수사학

[서울=뉴시스] 박쥐단지. (사진 = 인스타그램 캡처) 2024.07.0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쥐단지. (사진 = 인스타그램 캡처) 2024.07.0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김도언, 김아일, 김한주, Mesani, 이이언, 제이클레프(Jclef), 차종환, 휘(HWI)…

걸출한 여덟 명의 뮤지션이 뭉친 컬렉티브 '박쥐단지(Bat Apt.)'가 최근 발매한 동명의 첫 컴필레이션 앨범 '박쥐단지(Bat. Apt)'를 들으면, 밤을 삼킨 듯 시간이 아련하게 얼어붙는다.

전자음악을 기반으로 삼지만 장르를 한정짓기 어려운 물성을 지닌 사운드들은, 박쥐의 초음파처럼 종잡을 수 없게 듣는 이의 내면을 서성인다.

분명한 명쾌함이 아니라 혼돈의 난해함을 사유(思惟)하게 만들어 아름다움을 사유(私有)하게 만드는 솜씨. 이 대목이 박쥐단지의 음반이 주는 미학적 카타르시스의 절정이다. 그건 서로를 존중하고 존경하는 이들의 함께 빚어낸 숭고한 수사학이기도 하다.

박준우(Bluc) 대중음악 평론가(한국대중음악상(한대음) 사무국장)는 "박쥐단지가 선보인 한 장의 앨범, 그리고 가져가는 집단적 움직임을 거창한 수식어보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선례'라고 하고 싶다. 마음 맞고, 음악적으로 서로간의 이해와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멋진 모임은 독립된 음악가들이 지금껏 받아온 호평이 입증하며, 모였을 때 확실한 시너지를 자랑한다"고 봤다.

또 "전혀 다르지만 어쩐지 수긍이 가는 박쥐단지가 서두르지 않아도 좋으니 천천히 오래 본인들의 자리에 있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무엇보다 박쥐단지가 음악가들에게 전달하는 바가 많았으면 한다. 결국 음악가가 가장 멋지게 보이는 가장 큰 방법은 음악을 잘하는 것이라는 근본적 해답에 도달하게끔 만든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박쥐단지 멤버들과 서면으로 나눈 일문일답.

-이번에 화려한 라인업의 창작집단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박쥐'를 내세우신 것에 기가 막혔습니다. 야행성, 초음파 등 다양한 특질이 참여 뮤지션들의 특성을 나타내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또 많은 분들이 언급하신 것처럼 우리 대중음악계 보이지 않는 한 켠을 지키는 '다크 나이트' 같은 다크 히어로 느낌이 들었거든요. 팀이름을 짓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또 다른 팀 이름 후보가 있었나요? 수많은 집단 용어 중 '단지'를 붙이게 된 이유가 있나요?

"멤버들이 각자의 동굴에서 지극히 어두운 시야로 문화적 생산력을 돋궈낸다는 느낌이 강했어요. 그런 이미지가 박쥐스럽다는 생각이 들어 키워드 제시를 했고, 다인원이 모였다는 표현을 어찌하는 게 좋을지 고민하다 김도언 씨의 '단지'가 붙어 현재의 이름이 됐답니다."(김한주)

-여덟 분은 어떻게 모이시게 된 겁니까? 처음부터 참여 인원이 정해져 있었나요? 존경하는 분들끼리 모이게 됐다고 하셨는데 그 존경의 바탕은 무엇입니까?
[서울=뉴시스] 박쥐단지. (사진 = 인스타그램 캡처) 2024.07.0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쥐단지. (사진 = 인스타그램 캡처) 2024.07.0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최초에 제가 이이언 형을 만나서 언젠가 이런 행보를 이어가는 모임 혹은 크루가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했었고 형도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비슷한 생각을 하고 계시다고 하셨었어요. 그리고 시간이 지나 저와 Mesani가 가까워졌고, Mesani가 서울에 올라올 계획이 생겼을 때 이이언 형과 Mesani, 저 셋이 만나서 제가 다시 이이언 형에게 제안을 드렸어요. 지금 해보자고요. 그렇게 먼저 세 명이서 이름 없는 모임이 만들어졌고 이후에 이이언 형의 추천으로 도언님과 한주님이 참여해 주셨고, 도언님께 모임에 대해서 들은 아일 형과 영진님이 참여해주셨어요. 이후에 한주님의 추천으로 HWI(황휘)님까지 총 8명이 모이게 됐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모임의 존경의 바탕은 음악과 삶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의 원형을 담는 작곡에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은 존경하는 분들 끼리 모였다고 하기에는 Mesani와 이이언 형 말고는 저라는 뮤지션을 아마 모르셨을 거라… 들을 때마다 조금은 마음에 걸리지만요…! 저는 이 분들 음악을 늘 듣고 영향을 받고 있었습니다! 사랑해요 박쥐단지 :)"(차종환)

"참여 인원이 정해져 있던 것은 아니고, 8명 정도가 모인 시점에서 그 이상 인원이 늘어나면 초반의 체계를 세우고 일을 진행하기에 비효율적일 것 같아 새로운 멤버 영입을 잠정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누군가를 존경하게 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작업과 삶에서 드러나는 여러가지 것들, 이를테면 예술적인 감각, 내가 갖고 있지 않은 고유한 매력, 어떤 스킬셋에 대한 숙련도, 음악에 대한 애정과 헌신 등으로부터 비롯되는 것 같아요. 그런 것에 대한 기준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보니 그런 기준이 어느 정도 일치하는 사람들끼리 모였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이이언)

"저도 종환이 형의 제안으로 함께 이야기를 드리러 이이언 형에게 찾아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양고기도 얻어먹고요. (웃음) 저 또한 위에 종환이 형이 말씀해 주신 것처럼 저는 제가 오래 전부터 존경했던 이분들과 박쥐단지를 함께 건설하기 전에는 저를 몰랐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지만 저는 이분들에게 늘 영향 받아왔고 앞으로도 받을 거예요. 존경의 바탕은 아무래도 제가 쉽사리 생각하지 못할 것들을 언제나 이분들만의 방식으로 아름답게 시도하고 계시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Mesani)

-이이언 씨가 앞서 박쥐단지에 대해 '음악 지상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하셨던데 '음악 지상주의자'가 되는 기준이 있습니까? 타협하지 않고 자기 주체성을 내세운 뮤지션들이라는 공통점이 이미 있기는 합니다. 또 '음악 너드' 표현도 참 잘 어울리는 거 같습니다.

"'음악 지상주의'라는 표현을 쓰긴 했는데, 이 표현이 사실 맥락에 따라 조금 뉘앙스가 다를 수 있어서 그렇잖아도 추가 설명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음악 지상주의 혹은 예술 지상주의가 간혹 사회 현실에 무관심한 안온하고 나이브한 태도를 지칭하는 것으로 쓰이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맥락은 아니고요. 사회 참여적인 예술을 포괄하지만 특정 가치와 목표에 종속되지 않는 자율성, 그리고 유미주의적인 태도와 가치를 동시에 추구한다는 의미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음악 지상주의자는 그렇습니다."(이이언)

-89 BPM, E♭key 등 노래의 최소한 형식만 공유를 하셨는데 최소 조건이 된 요소들은 어떤 합의를 거쳤는지요.

"E♭key는 사실 김도언이 좋아하는 키를 처음에 제안한 것이 별 이견 없이 바로 받아들여졌고요. BPM은 가능한 숫자들이 너무 많으니 일단 몇개 구간대로 나누어 투표를 한 후, 최다 투표 구간에서 운영진(저와 HWI님)의 상의로 결정했습니다. 최다 투표 구간이 BPM 70에서 90 사이 구간이었는데,그 구간에서 가장 큰 소수(prime number)로 정했어요. 쓸데없이 ‘너디'한 포인트를 넣고 싶어서요."(이이언)

-이 모티브를 기반 삼아 각 노래들을 각자 발전시켰는데 전체적으로 이질감이 전혀 없이 통일성이 느껴집니다. 이런 결과를 예상하셨나요? 예상 못 하셨나요? 작업 도중 서로의 조언이나 피드백이 반영된 지점이 있습니까? 초음파를 발산해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박쥐처럼요.

제가 이런 결과를 예상을 하지 못했던 이유는, 사실 결과를 예상하기 전에 내 트랙에 최선을 다하는 것에 신경 쓰느라 이 앨범의 결과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다른 분들께서도 그러셨겠지만 마감까지 정말 제 자신을 몰아붙였거든요. 또한 이분들은 제가 너무나도 존경하는 분들이었기에 제작이 결정됐을 때부터 끝까지 믿음이 있었고요. 음악에 대해서는 섣불리 조언이나 피드백은 최대한 받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제 개성을 잘 표현하기 위해서 선택한 나름의 방법이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라는 생각도 사실 들어요."(Mesani)
[서울=뉴시스] 박쥐단지. (사진 = 인스타그램 캡처) 2024.07.0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쥐단지. (사진 = 인스타그램 캡처) 2024.07.0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이이언 씨, 김아일 씨, 제이클레프 씨가 뭉친 곡은 이번 앨범의 유일한 협업곡인데 이 곡이 만들어진 이유가 무엇이고 이번 앨범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곡이라고 판단하십니까?

"앞으로 저희 모임이 나아가기 위해서는 멤버간의 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마 이러한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에 이 곡이 만들어 질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보컬로서는 자주 만날 수 없는 9/8 박자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짜놓은 탑라인에 노랫말을 붙이는 데에도 꽤나 애를 먹었습니다. 사실 발매 스케줄을 정말 간신히 맞춘 곡이기 때문에 완성 됐을 당시에는 이 곡의 역할에 대한 확신이 없었어요. 지금은 박쥐단지라는 모임에 음악적 이미지를 잘 부여해주는 트랙이 나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박쥐단지에서 나오게 될 수많은 협업과 유닛 형태의 프로젝트에 물꼬를 튼 트랙 정도로만 기억돼도 좋겠어요."(김아일)

-트랙리스트 순서는 어떤 이유로 지금과 같이 배치가 된 겁니까? 이런 트랙리스트 배치가 앨범에 어떤 이미지와 효과를 줬다고 판단하십니까?

"멤버들이 자체적으로 A부터 Z까지 일을 처리하다 보니 분업이 불가피했는데요. 저와 김아일님과 제이클레프님 이렇게 세 명이 트랙 리스트 정하기 담당 부서원 이었습니다. 우선 각자가 생각했을 때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트랙리스트를 짜놓고 하나둘… 셋! 하고 공유했는데 생각보다 꽤 비슷한 배열이었습니다. 간략히 말하자면 앨범의 초반부에서는 저음의 트랜지언트가 강조된 곡들 위주로 모아졌고 후반부에서는 앰비언스가 보다 더욱 중요한 곡들로 모아졌습니다. 큰 기준이 그렇게 먼저 잡혔고 그 이후에 미세 조정됐는데요, 함께 이런저런 기준을 공유하며 토의하는 과정을 거치긴 했지만, 언어적 논리보다는 음악적 직관을 사용한 부분이 크다고 생각합니다."(김도언)
 
-중간 중간 곡 작업 과정을 공유하면서 자신의 트랙이 앨범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 지 가늠하셨다고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런 공유 과정은 서로에게 어떤 영감을 줬나요?

"처음 곡이 공유됐을 때는 보컬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곡이 수록곡의 절반 정도였기 때문에, 제 역할은 보컬이 있는 곡에 보컬로 참여하는 것이 되겠구나 짐작할 수 있었어요. 저는 이이언님, 김아일님과 협업한 곡에만 참여를 했다보니, 함께 나눈 대화들이 가장 영감이 됐습니다. 이언님이 처음에 보내주신 곡은 복잡한 리듬으로 흘러가지만, 신시사이저 시퀀싱이 재미있고, 곡이 끝날 때까지 반복되면서 결국에는 제 귀에 아주 익숙해지는 걸 느꼈어요. 곡을 듣고 있지 않아도 어디선가 재생되고 있는 듯, 중독되는 과정 속에서 '광고음악처럼, 구체적으로는 입주공고처럼 만들면 재밌지 않을까?' 또 '박쥐단지의 소개장면을 앨범에 실으면 좋겠다' 하는 아이디어들을 공유하게 됐고, BAT APT. 가 완성됐습니다."((제이클레프)

-노래마다 선율이 아름다운 구간이 있지만, 무엇보다 트랙들이 각각 특정한 물성을 가진 물질처럼 다뤄진 느낌들이 들었어요. 특별한 사운드 실험군들의 집합체라고 할까요? 무엇보다 레이어의 층위가 기존 곡들과 다릅니다. 뮤지션분들마다 당연히 다르겠지만 사운드를 대하실 때 기존의 곡 작업과 가장 달랐던 태도는 무엇이었는지요. 각 곡마다 부각시키고자 한 장르적 특징이나 장비, 기술 그리고 태도는 무엇이었나요?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이번 앨범에 대한 첫 인상과 감상평은 '아름답다'였어요. 저마다 각자 생각하는 '음악의 미학'이 표현됐다고 할까요? 그런 부분도 방점이 찍혔던 건가요? 만약 그렇다면 각자가 생각하는 음악의 아름다움은 무엇입니까?

"아름답게 느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제가 작업을 할 때 재미를 느끼는 순간들은 주로, 이어지지 않을 것 같은 것들을 이으려는 과정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뤄진 이어짐이 저로 하여금 아름다움을 느끼게 합니다. '2003'은 우선, 요즘 빠져있는 신시사이저에서 출발하였습니다. 1991년도에 발매된 Roland 사의 JD-800 인데요. 2000년대 이후에 태어난 분들이라면 90년대 초를 아날로그의 시대만으로 알고 있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나름 디지털 신시사이저입니다. 그리고 이 악기의 음색을 통해 '과거=아날로그, 미래=디지털'이라는 등식을 건드려보고 싶었고 그런 부분들이 전반적인 편곡과 믹스에 반영됐습니다. 그 이후부터는 의식의 흐름대로 곡의 진행을 만들었습니다. 가령 '2003'에서 보컬이 나오기 직전 파트에서 피치가 순간적으로 내려가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느꼈고 그 이후부터는 서스테인이 긴 소리가 들리길 바랐습니다. 사실 원래는 보컬이 없던 곡이었는데요, 곡의 믹스를 진행하면서 무언가 빠진 게 있다고 느껴졌고 그 빈자리에 낡고 희미한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발음이 안 좋고 목 상태가 썩 좋지 않은 저의 목소리를 넣었고 그 흐릿함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서 도리어 분명한 가사를 쓰게 됐습니다. 곡의 제목은 저에게 많은 영향을 준 친구가 알려준 노래(코코어 - 슬픈 노래)의 뮤직비디오 제목 속 괄호에 적힌 숫자입니다. 아마 노래가 발매됐던 연도겠죠? 그 숫자가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만큼이나 저에게 어떠한 심상을 느끼게 하였기에, 이 곡의 제목으로 정했습니다."(김도언)
[서울=뉴시스] 박쥐단지. (사진 = 인스타그램 캡처) 2024.07.0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쥐단지. (사진 = 인스타그램 캡처) 2024.07.0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힘 포 파레이돌리아(Hymn For Pareidolia)'의 경우 우연히 지인의 샘플러 장비를 맡아두게 됐을 때 작업 했습니다. 기존의 컴퓨터와 DAW에서 벗어나서 작업할 수 있었던 점이 기존 작업과 가장 달랐던 부분이에요. 동굴의 이미지를 생각하면서 작업했고 하나의 장비를 사용해서 제한적인 환경에서 작업하다 보니 오히려 기존에는 오래 걸리던 작업 과정에서의 선택을 더 빠르게 내릴 수 있어서 편하게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BAT APT.'의 경우에는 '박쥐단지'가 물리적으로 실제한다는 가정하에 이 곳에 입주하게 될 입주민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그들이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 공간 만의 특이점은 무엇이 있을 수 있을까? 등의 상상으로 작업했습니다. 내레이션 부분은 실제로 입주 공고 격의 메시지를 담고 있어요. 또 저희 음악을 들으시는 분들이라면 왠지 자기만의 시간을 소중히 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을 향한 넘치는 온기 때문에 때로는 괴롭고 외로울 거라는 상상도 멋대로 해보았어요. 그래서 저의 버스(VERSE)에서는 '괴롭거나 외로울 때는 박쥐단지를 찾아줘! 바로 튀어갈게'라는 식의 작사를 해봤습니다."(김아일)

"제 작업 방식은 늘 한편의 영화 또는 극과 같은 시청각적인 예술을 제작한다고 생각하고, 제 머릿속에서 스토리보드를 짜고 장면마다 이음매듭을 지으면서 곡을 쓰는 편입니다. 기존 작업 방식과 크게 태도가 달라지지 않았지만 곡의 다양한 연출을 통해서 청자분들께서 제가 연출한 장면들을 떠올릴 수 있게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사운드적인 면에서 공간계 이펙터들의 여러 오토메이션을 통해 장소의 특징과 살짝의 괴기함 같은 것들을 느끼셨으면 했거든요. 제가 생각하는 음악의 아름다움은 제가 가장 영향을 많이 받았고 존경하는 아티스트 중에 한 분인 니나 시몬의 말처럼 예술가들의 창작물에 그들이 살아가는 시대가 반영돼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Mesani)

"'BAT APT.'의 경우는 메인이 되는 신스 악기 패치부터 직접 만들었는데 기타, 일렉트릭 피아노, 그리고 콘트라베이스 샘플과 삼각파 등을 이용해 완전한 일렉트로닉도 어쿠스틱도 아닌 느낌의 사운드를 만들고 싶었어요. 또 코드 보이싱을 동시에 2개 노트만을 사용하는 대신 노트마다 피치가 계속 변화하도록 하면서 만들어지는 독특한 느낌 같은, 관습적이지 않은 방식의 작법을 의도적으로 썼습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그게 재밌어서예요. 저는 음악이나 예술의 아름다움의 한 끝이 결국 어떤 종류의 유희에 닿아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쥐단지는 제게 일종의 놀이터이기도 해요."(이이언)
 
"장비나 기술 보다는 태도. 기존의 곡 작업과 달랐던 점이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 해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장비나 기술 등 방법론적인 부분은 음악적으로도 음악 외적으로도 너무나 많은 행위를 하는 편이기는 합니다.) 꼭 이번뿐 아니라 늘 그렇지만 작업을 할 때의 태도는 나의 에고(고정된 마음의 방식)와 마음의 원형을 구분하며 그 원형만을 따라가려 노력합니다. 오직 주제, 이 음악만을 생각합니다. (저는 진심으로 제 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이라고 표현하겠습니다.) 처음 아이를 만날 때 제가 이 아이에게 원하거나 혹은 기억의 형태로 필터 역할이 될 수 있는 내 안의 모든 언어를 잊습니다. (잊는다는 표현보다 한 점으로 모은다는 표현이 나을수도 있을거 같습니다. 저에게 이 둘은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원하는 모습만을 온전히 들을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어느 정도 아이를 만나면 그 아이의 언어가 들리기 시작하는데 그것을 더 집중해서 들어보려는 태도를 유지하려 늘 노력합니다. (그러한 나의 태도의 뉘앙스가 사랑이기를 늘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번에 박쥐단지 앨범 작업을 하면서 느낀 마음 중 일부 가장 예로 들기에 적절한 마음으로 이야기 해보자면 저는 '러브 포엠(love poem)'을 마감하는 날까지도 이 멋진 뮤지션들 사이에서 제가 꿀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는데요, 그 마음을 작업이 끝날 때까지 이 아이와 철저히 분리했습니다. (한쪽 개념을 밀어내기보다는 양쪽 개념을 더 온전히 이해하고 싶은 뉘앙스의 구분.) 내가 뭔가 잘해(?) 보이고 싶고, 힘 주고 싶고, 이 사이에서 꿀리지 않았으면 좋겠고 하는 그런 마음들은 내가 나를 지키고자 만들어낸 마음이지, 이 아이를 위한 마음의 원형이 아니라고 생각을 해요. 물론 굉장히 자연스러운 감정이라 그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조금은 어려웠지만 온전히 해냈다고 생각하고 늘 그랬듯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차종환)

"특정 장르의 사운드를 적극적으로 차용해서 작업한 것이 가장 달랐던 태도였습니다. 언젠가는 굉장히 신나는 덥스텝 트랙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하고 있었는데, 이번 앨범에 수록한 '라-가-다-디-도(La-ga-da-di-do)'가 그 기획의 테스트 버전이라고 생각해주시면 됩니다. 아마 BPM이 130 이상이었으면 정말 신나게도 만들 수 있었겠죠? 약속한 BPM 속도가 신나는 곡을 만들기엔 다소 느렸다보니 작업의 초점이 흥분도보다는 장식성을 높이는 것에 맞춰졌습니다. 그래서 귀를 간지럽히는 여러가지 소스들을 한 냄비에 담다보니 이렇게 완성이 됐네요."(HWI)

-요즘 대중음악은 상업성과 결부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죠. 그런 가운데 비상적업적인 이런 방식을 시도할 수 있는 이유, 그 바탕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그 상업적인 것 외 음악 존재 이유에 대해 서로가 공통적으로 믿는 구석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부분이 혹시 있나요? 상업적인 것과 비상업적인 것을 나누는 기준은 혹시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투자금 대비 수익을 크게 내야 하는 보편적인 의미의 상업성을 생각했다면 이런 프로젝트를 시작조차 안 하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이렇게 음악가들을 모아 컴필레이션 앨범을 발매하는 시도가 꼭 비상업적인가라고 하면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상업/비상업, 언더/오버를 나누는 기준이 그 어느 때보다도 자의적이고 흐릿하다고 생각하는 편인데요, 저희가 앨범을 만들기 위해 자금을 끌어모으고, 피지컬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열어서 앨범을 홍보하고 판매하고,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서 우리를 알리는 모든 활동이 상업 활동 아니면 뭘까 싶습니다. 저희는 음악가로서 끊임없이 저희의 음악을 재화로 치환해내야 다음 작업의 동력을 마련할 수 있거든요. 제가 소속된 또 다른 아티스트 집단인 '업체eobchae'의 멤버 김나희가 활동 초기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끊임없이 계속 작업할 수 있는 삶이 예술가로서는 최고'라고 했는데, 저는 그 말이 오래 기억에 남아요. 저는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을 지속할 수 있는 삶을 꾸리기 위한 상업 행위를 계속해서 시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지향점이 더 큰 돈에 있는 게 아니라 더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것에 있는 것이죠."(HWI)

-6일 성수동 애프터타임에서 처음 여시는 오프라인 이벤트 '박쥐단지: 밤의 횡단자들'은 단숨에 매진을 기록했습니다. 박준우 평론가님과 얘기를 나누는 토크 세션이 상당히 많은 비중을 차지하더라고요. 오프라인 이벤트는 어떤 부분에 방점을 찍고 있나요?
[서울=뉴시스] 박쥐단지. (사진 = 인스타그램 캡처) 2024.07.0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쥐단지. (사진 = 인스타그램 캡처) 2024.07.0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먼저 멤버들을 대신해 정말 감사드린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어요. 이 모임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들을 위해 전원이 참여하는 공연을 준비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시간적으로 멤버 전원이 양질의 공연을 만들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어요. 이런 상황에서 저희가 어떤 이벤트를 준비할 수 있을까 함께 고민 한 끝에 도언이, HWI, Cha(차종환)님의 공연과 더불어 앨범에 관해 이야기하는 토크 세션을 갖게 됐습니다. 앨범이 만들어진 과정에 대해 필터 없이 솔직하게 이야기 해볼 예정이고, 무엇보다도 자리해주신 분들과 직접 인사드리고 소통하는 데에 가장 큰 의의를 두고 준비하고 있습니다."(김아일)

-다른 인터뷰를 보니까 박쥐단지가 계획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이 상당하더라고요. 기술적 워크숍이 눈길을 끌던데요. 전자음악에선 필수적인 요소죠. 이런 부분을 떠올리게 된 이유나 과정이 있습니까?

"박쥐단지는 형성 과정부터 일종의 워크숍의 형태를 띠었다고 생각합니다. 멤버들 각자 삶과 음악적 배경은 다르나 새로운 무언가를 모색하고 있다는 큰 공통 분모가 저희를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모이게 된 이후 치열하게 나눈 의견들이 무엇보다 중요한 구성 요소가 됐어요. 아, 참고로 앞서 HWI님이 말씀하셨듯 새로운 무언가가 꼭 비상업적이며 통상 말하는 순수한 무언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전자음악에 대한 기술 공유와 연구가 활발해지기 위해서는 전자음악을 만들고 소개하고 소비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것에 대해 글을 쓰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하겠죠. 다음으로 그러한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며 일종의 화학작용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무료의 온라인 공간을 넘어서 기반 시설이 확충된 실제의 공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사실 어떤 프로젝트든 그 시작이 자생적일 수는 있어도 제도권 외부에서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뒷받침할 수 있는 공간과 인프라가 마련되어야겠죠. 어쩌면 당연한 말을 한 것 같은데요. 박쥐단지가 그런 움직임에 조금이라도 일조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김도언)

-밴드 '못(MOT)으로 음악을 시작한 이이언 씨가 벌써 데뷔 20주년을 맞이하셨습니다. 이이언 씨 덕분에 우리 대중음악의 결이 풍성해졌습니다. 이미 이이언 씨 음악에 대한 광적인 팬들이 많지만, 이이언 씨는 자신의 음악에 대한 믿음이 비교적 최근에 생겼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믿음이 계속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인가요? 다른 멤버분들은 이이언 씨의 데뷔 20주년이 어떤의미가 있다고 보십니까?

"계속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진한다고 스스로는 잘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언제나 그때 그때 재미있고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있는 느낌인데, 스스로에 대한 믿음 덕분에 그것을 멈추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이이언)

"끊임없이 계속 작업할 수 있는 삶”의 좋은 사례가 돼주고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오랜 시간동안 작품 활동을 계속 이어나가는 분들은 그 존재 자체로 후배들에게 동기 부여가 되는 것 같아요. 선배의 모습 속에서 내 삶의 어떤 가능성이 투영돼 보이니까요. 심지어 이언 님은 적극적으로 후배들을 위하려 노력하시는 분이기도 합니다. 박쥐단지를 처음 시작할 때 이언 님께서 컬렉티브를 만들게 된 여러가지 이유 중 하나가 음악을 잘 하는 친구들이 더 이상 음악을 포기하고 사라지지 않았으면 했기 때문이라고 하신 적이 있었는데요, 저는 이렇게 따뜻한 선배를 본 적이 없습니다. 이이언 최고!"(HW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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