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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군 탈환 리만서 붙잡힌 민간인은 적일까?

등록 2022.10.05 11:20:12수정 2022.10.05 12: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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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 민간인 차림 전투 현장에서 붙잡힌 60대와

내통자 확신하는 우크라군 병사간 대화 내용 기록

[리만=AP/뉴시스] 우크라이나군이 최근 탈환한 리만 마을에서 3일(현지시간) 한 우크라이나군 병사가 전우의 시신을 발견해 신원을 확인한 후 담배를 피우고 있다. 2022.10.04.

[리만=AP/뉴시스] 우크라이나군이 최근 탈환한 리만 마을에서 3일(현지시간) 한 우크라이나군 병사가 전우의 시신을 발견해 신원을 확인한 후 담배를 피우고 있다. 2022.10.04.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우크라이나군이 최근 탈환한 리만 인근에서 러시아군 협력자 색출에 나섰지만 협력의 증거를 밝혀내기가 쉽지 않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동부 강변에 도착한 쾌속정에서 총과 배낭을 멘 우크라이나 군인 6명이 지친 모습으로 배에서 내렸고 뒤이어 러시아군 위장복 차림의 두 남성이 얼굴을 수건으로 감싸고 포장테이프로 칭칭 두른 모습으로 내렸다.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하게 가린 것이다. 러시아군 출신으로 69살인 알렉산드르는 자신이 잘못한 일이 없다고 했지만 우크라이나군인들은 믿지 않았다.

전쟁 발발 이래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은 수많은 포로를 붙잡았다. 밀고당기는 공방전에서 붙잡힌 포로들은 종종 사령부로 끌려가 심문을 받았다. 군복을 입은 경우라면 그가 전투원인지를 쉽게 식별할 수 있다.

그러나 알렉산드르는 지난 주 리만에서 붙잡힐 당시 옷을 얇게 입고 있었고 팔에는 적백색의 러시아 국기 또는 청황색의 우크라이나 국기 완장을 두르고 있지 않았다. 우크라이나군 병사들이 참호속에 널려 있던 러시아군 위장복을 줏어서 입혔다.

알렉산드르를 발견한 우크라이나군 병사 세르히는 "그가 숲에서 나와 우리 쪽으로 왔다"고 설명했다. 전장에선 확실한 일들이 많지 않다. 적이 어느곳을 공격할 지, 강 주변에는 누가 매복했는지, 깊은 풀밭속을 지나다 지뢰가 터질 지 아무도 모른다. 우크라이나군 병사들이 알렉산드르에게 15분 동안 전선에서 살아 남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설파했다.

주요 철도 전략 도시인 리만은 시베르스키 도네츠강 동북쪽 들판과 숲 지대에 있다. 지난 5월 러시아군이 점령했으나 지난 주말 우크라이나군이 탈환해 추가 진격의 거점으로 삼은 곳이다.

탈환 과정에서 많은 포로들을 붙잡았다. 대부분 군인들로 우크라이나군 포로들과 교환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러시아군에 협력한 민간인으로 의심되는 사람들도 있다. 알렉산드르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우크라이나 군인들은 알렉산드르가 인근 러시아군이 보낸 정탐병이라고 확신한다. 세르히는 "그가 이곳 저곳 살피고 다니며 정찰했다"고 강조했다.

알렉산드르가 "두리번거렸다니, 장작을 찾았을 뿐인데"라고 항의했다. 나직한 목소리로 "내가 누가 어느 편인지로 무슨 수로 아누"라고 했다.

한 병사가 "여기가 어디라고 거짓말이야! 장작을 찾았다고?"라며 코웃음쳤다.

지난 월요일 알렉산드르가 잡힌 날 우크라이나군이 치른 전투는 극도로 혼잡했다. 우거진 숲 때문에 표적을 볼 수 없었고 이동할 때 나뭇잎 스치는 소리가 크게 들려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관목 숲은 매복하기 딱 알맞았다. 이런 상황에서 먼저 발견되면 포격을 당하기 십상이었다.

세르히는 "그가 12시 방향에서 나타났다. 적이 아니라면 나타날 수 없는 곳이었다"고 했다.

다른 병사가 "놈들을 돕고 있지"라고 묻자 알렌산드르가 "돕다니 누굴, 무슨 소리야"라고 답했다.

멀리서 포성이 울리는 속에서 우크라이나 병사들이 타고 온 보트를 진흙 강변으로 끌어올렸다. 알렉산드르의 손을 묶진 않았지만 우크라이나 병사들이 뒤에서 그의 양손을 잡고 있었다. 소총을 빗겨 든 세르히가 간간이 포로에게 두 손을 보일 수 있게 하라고 했다.

군인들과 포로 사이는 그다지 험악하지 않았지만 전쟁 중 포로를 고문하고 일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동료 군인들이 세르히에게 포로의 손을 묶으라고 했다. 밧줄이 있느냐고 묻는 군인도 있었다. 세르히가 "필요없어. 도망 못가"라고 했다, 알렉산드르가 도망칠 가망은 없어 보였다.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큰 검은 장화를 신고 뛰어가도, 물 속에 가라앉아 숨어도 붙잡힐 것이 뻔했다.

우크라이나군은 교량이 모두 부서진 시베르스키 도네츠강을 리만을 공략하는 병력과 물자 이송에 십분 활용했다. 고무보트, 노젓는 배, 쾌속정 등 이리저리 구한 배들로 강을 오가며 병력과 사상자와 피난민을 수송했다. 소련제 수륙양용차도 보였다. 강 건너 마주보는 두 지점을 밧줄로 이어 사람들과 물자를 옮겼다. 두 초소는 보초병들이 지켰다.

얼굴을 수건으로 감싼 알렉산드르는 소리만 들을 수 있었다. 자신이 어디 있는지 도통 모르는 듯했다. 세르히가 그의 목 뒤를 가볍게 붙잡고 있었다.

알렉산드르는 1971년 소련군으로 복무했지만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반군에는 가담하지 않았다고 했다. 옆의 병사가 낄낄거리면서 협력자임이 분명하다고 했다. 반군에는 나이많은 징집병들이 많았다. 그래도 70 가까운 사람을 징집하지는 않았을 법했다.

알렉산드르가 "지금 사는 곳은 젤레니요. 리만에는…다차(별장)하고 정원이 있어요. 그곳에 밭이 있어요"라고 했다.

세르히가 "감자를 캔댄다. 감자를!"이라고 비웃었다.

알렉산드르의 말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의 주머니에는 러시아 루블(현지 시장에서 쓰고 남은 돈이라고 했다)이 있었고 리만에서 반군 지역 도시 일로바이스크까지 가는 편도 기차표가 있었다.

기차표는 지난 달 첫주가 유효기간이었지만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영토를 벗어나는 것을 허가함"이라고 씌여 있었다. 그는 현재 우크라이나군 점령지에 있고 곧 정보부대의 심문을 받을 것이다.

겁이 나느냐는 질문에 알렉산드르가 어깨를 으쓱하며 "당연하지"라고 답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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