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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종이 줄께, 새 종이 다오"…엡손, 페이퍼랩 원리는?

등록 2023.05.25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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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량의 물로 폐 종이를 재생하는 신개념 장치

기업 기밀 유출 방지에 탄소 배출·폐지 수거비 절감

내년 2세대 제품 국내 출시 예정…크기·가격 관건

[나가노=뉴시스]지난 24일 일본 나가노현 시오지리시 소재 히로오카 사무소에서 엡손 관계자가 종이재생장치 '페이퍼랩(A-8000Z)'을 시연하고 있다. photo@ne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나가노=뉴시스]지난 24일 일본 나가노현 시오지리시 소재 히로오카 사무소에서 엡손 관계자가 종이재생장치 '페이퍼랩(A-8000Z)'을 시연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나가노=뉴시스]이인준 기자 = "엡손은 종이의 미래를 바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것입니다."

프린터와 복합기기 제조업체인 세이코 엡손(엡손)이 지난 24일 일본 나가노현 시오지리시 소재 히로오카 사무소에서 폐지를 새 종이로 바꿔주는 종이재생장치 '페이퍼랩(A-8000Z)'을 한국 기자들에게 공개했다.

이 장비는 엡손이 2016년 11월 세계 최초로 출시한 건식 오피스 제지기다. 그동안 재생 용지를 생산하려면 폐종이에서 잉크를 제거하기 위해 많은 양의 물을 써야 했다. 하지만 엡손은 시스템 내부 습도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로 재생 용지를 생산하는 신기원을 이뤘다. 엡손은 내년에는 이 페이퍼랩을 한국 시장에도 출시할 계획이다.

페이퍼랩은 이미 사용한 종이를 재사용한다는 점에서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효과가 뛰어나다. 폐종이 100을 넣는다고 가정하면 78.7% 수준의 새 종이를 얻을 수 있다.

1시간당 최대 처리매수는 915장. 기계에 투입된 폐지 중 720장이 새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A4 용지 환산 시 1분에 12장이 재생된다. 엡손의 가정용 프린터 복합기의 컬러 인쇄 속도가 1분에 11~12장(11ipm)인 점을 고려하면, 재생 종이가 만들어지는 속도가 프린터 출력 속도와 비슷하다. 이 페이퍼랩의 전력 소모는 시간당 6.5㎾다.

종이의 백색도와 색상, 두께도 조절 가능하다. 엡손 관계자는 "물 만 있으면 폐종이를 복사 용지는 물론, 명함·카탈로그·팜플렛 등에 쓸 수 있는 두꺼운 용지도 제작 가능하다"며 "페이퍼랩과 소비전력이 낮은 잉크젯 프린터간 순환을 통해 사무실 폐종이 부담을 한결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현장 시연에서도 인쇄물이 출력되듯 기계 안에서 종이가 빠른 속도로 밀려 나왔다. 종이 걸림 등 이상 증상은 확인하지 못했다. 종이 재생 과정에서 일부 불량품이 발생했지만, 별도의 배출구로 나와 따로 분류되기 때문에 장치에 다시 투입할 수 있었다.

현재 색상도 화이트(흰색), 옐로우(노랑색), 마젠타(자홍색), 시안(청록색) 등 여러 가지를 선택할 수 있다. 실제 화이트로 재생된 용지를 자세히 보니 흰색보다는 회색에 가깝다. 다만 메모지나 노트로 쓰기에 전혀 거슬리지는 않을 정도다.
[나가노=뉴시스]페이퍼랩으로 만든 재생 용지.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나가노=뉴시스]페이퍼랩으로 만든 재생 용지[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엡손 원천 기술, 종이 산업의 패러다임 전환

엡손이 용지 재생의 패러다임을 바꾼 건 독자적인 '드라이 섬유 기술(Dry Fiber Technology)' 덕분이다.

페이퍼랩은 크게 '섬유화-결합-성형' 등 3단계를 거쳐 종이를 재생한다. 엡손의 이 기술을 통해 물리적 충격만 가해, 종이를 섬유 같은 '드라이 파이버' 형태로 만든다. 이 과정에서 문서에 담긴 정보는 말소되고 보안성을 확보한다.

섬유화된 종이는 엡손이 개발한 접착 재료 '페이퍼 플러스'와 섞인다. 여기에 압력을 가해 종이의 밀도와 두께, 형상 등이 결정된다.

원칙적으로 이 기술은 종이 외에도 나무 등에서 섬유를 추출하는 것도 가능하다. 실제 엡손과 일본 패션 디자이너 나카자토 유이마는 3년간의 협업해 잉크젯 프린터와 중고 옷을 재활용한 섬유로 의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 옷은 2023 파리 오트 쿠튀르 컬렉션에 선보였다.

엡손은 이미 일본 3대 은행 중 한 곳인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을 포함한 은행과 롯데 등 일반 기업, 아키타현 등 공공기관 등에 페이퍼랩 72대를 납품해 현장에서 장비가 활용되고 있다. 이 제품은 물 사용량이 극히 적어 대형 배관 공사도 필요 없기 때문에 일반 오피스 사무실에서도 얼마든지 쓸 수 있다.

엡손은 "페이퍼랩은 '카본 오프셋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실질적인 0으로 만든다"라면서 "자원 재생의 의미를 다지고, 적극적으로 환경적 가치 실천해 나가기 위한 친환경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또 유럽에도 종이를 많이 사용하는 금융기관, 자치단체 등에 3대가 판매되는 등 도입이 늘고 있다.
[나가노=뉴시스]페이퍼랩로 재생한 종이로 제작한 명함과 메모장 등.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나가노=뉴시스]페이퍼랩로 재생한 종이로 제작한 명함과 메모장 등.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내년 국내 출시 예정…크기·가격 등은 도입에 난점

엡손은 내년 국내 시장에 페이퍼랩을 판매할 계획이지만, 아직까지 극복해야 할 난제가 있다는 평가다.

이날 시연에 앞서 야스노리 오가와 엡손 대표이사 사장은 "아직 생산 능력이 안정적인 수준까지 올라오지 않은 상태"라고 생산 제약이 있음을 공개했다. 가격도 2500만엔(2억4000만원)으로 초고가다.

엡손은 관공서나 금융기관 등 일반 오피스 고객을 제품 판매 타깃으로 삼았지만 이 역시 난관이 많다. 이 제품 크기는 폭 4500㎜, 너비 3700㎜, 높이 2500㎜로 웬만한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보다 큰 편이다. 장치 가동 중 소음도 65㏈로, 확성기 수준이다.

엡손은 이 같은 단점을 극복한 업그레이드 모델을 개발 중이다. 엡손은 내년 한국에서는 기존 제품보다 성능이 개선된 2세대 제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엡손 관계자는 "크기는 기존의 절반이고, 가격도 지금보다 경쟁력 있는 수준으로 출시하려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미 도입한 고객사는 보안 문제 등에서 만족해 앞으로 성장성을 긍정적으로 본다"고 밝혔다.

엡손 "창의적 기술로, 더 나은 세상 만들 것"

엡손은 폐기물을 원재료로 돌리는 '스마트 사이클' 비전을 지속 실천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세이코 엡손(엡손)의 전신인 다이와 쿄고(大化工業)의 설립자 야마자키 히사오(山崎久夫)는 1942년 천혜의 자연인 스와 호수 근처에 창업을 결정하며 "스와 호수를 절대 오염시키지 않겠다"는 친환경 경영을 선언했다.

엡손은 시계 부품 제조업체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1992년 세계에서 최초로 CFC(프레온가스) 프리 선언을 할 정도로 환경 경영과 사회적 문제 해결에 적극적이다.

현재 엡손은 인쇄 작업 시 예열 과정이 필요해 소비전력이 높고 에너지 효율은 낮은 레이저 프린터를 대체하기 위해, 전력 소비를 최대 85%까지 낮춘 '히트프리(Heat-Free)' 기술에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또 전 세계 폐수 배출량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패션 산업에서 물과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한 신개념 디지털 텍스타일 프린팅 기술도 개발 중이다.

한국엡손 후지이 시게오 대표는 지난해 창립 80주년 맞아 '사람과 지구 풍요롭게 한다'는 기업 목적(Purpose)을 선포했다. 그는 "업계를 대표하는 1위 기업으로서 도전적인 혁신을 통한 창의적인 기술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가노=뉴시스]일본 나가노현 시오지리시 소재 엡손 히로오카 사무소.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나가노=뉴시스]일본 나가노현 시오지리시 소재 엡손 히로오카 사무소.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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