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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현장] 연극 '문제적 인간 연산', 싹 바꿨지만 여전히 도발적

등록 2015.06.18 16:55:25수정 2016.12.28 15: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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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문제적 인간 연산'(사진=국립극단)

연극 '문제적 인간 연산'(사진=국립극단)

이윤택 "나 이후도 계속 공연되기 바란다" 7년 연인 이자람·백석광 무대서 첫 호흡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약 20˚ 앞으로 기울어진 무대는 차츰 고통과 좌절의 늪으로 빠지는 연산군의 운명을 예고하는 듯했다.

 12년 만에 돌아온 이윤택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의 대표작인 연극 '문제적 인간 연산'에서 타이틀롤을 맡은 국립극단 단원인 백석광은 그 무대 위에서 "돌아가려고 하니 정작 식칼처럼 집이 없네"라고 울분을 토한다.  

 먼저 세상을 뜬 어머니 폐비 윤씨에 대한 그리움,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신하들, 성왕의 그늘에 가려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하는 내적 갈등 등 고뇌가 느껴지는 장면이다.  

 개막에 앞서 18일 오후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 내 스튜디오 하나에서 연습이 한창인 '문제적 인간 연산'을 미리 엿본 순간. 연산군이 어머니를 위한 굿판을 벌이기 직전까지 약 40분만 지켜 봐도 연산군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7월1일 막이 오르는 명동예술극장 무대에서는 이태섭 무대디자이너가 폐허가 된 궁중에 대들보를 쓰러뜨리고, 투명 아크릴 바닥을 깔아 인물들의 위태로운 모습을 부각한 것을 볼 수 있다.

 이곳은 귀신과 인간이 한데 어우러진 놀이터 같은 공간이기도 하다. 이날 그리스 비극에서 주로 등장하는 코러스들이 귀신 역을 맡아 무대 위로 걸어나왔다. 이 코러스들은 대신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대다수가 국립극단 시즌 단원이다.

 이윤택 연출은 "대사와 말 뿐 아니라 소리까지 어우러지는 육체적인 연극"이라고 했다.    

연극 '문제적 인간 연산'(사진=국립극단)

연극 '문제적 인간 연산'(사진=국립극단)

 실연 무대에서는 공중에서 연못 위로 물체가 떨어지는데 이는 탄생을 의미한다. 연산군의 탄생. 백석광은 실제 공연에서 누드지만 그위에 탯줄처럼 보이는 줄들을 감고 등장하게 된다. 

 제대로 갖춰진 무대가 아닌데 몽환적이고 영적인 기운이 물씬 풍겼다.

 판소리 브레히트인 '사천가' '억척가'로 유명한 소리꾼 이자람이 연산의 연인 녹수와 어머니 폐비 윤씨를 1인 2역으로 연기한다. 녹수에 대한 연산의 이중적인 감정을 상징한다.

 실제 이자람은 한 없이 막막한 눈을 들어 앞만 쳐다보는 폐비 윤씨로 등장했다가, 뇌쇄적인 면모지만 한 없이 연산군을 품어주는 모성애로 가득찬 장녹수로 이내 감정이입을 했다.

 이윤택 연출은 "녹수가 원래 가인이자 기생이다. 이번에는 제대로 가보자는 생각했다. 원래 녹수가 소리꾼이었으니 이자람이 녹수로 가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지"라고 알렸다. "초연 때는 녹수 역의 이혜영이 소리를 못해서 윤복희씨가 폐비 윤씨를 연기했다. 이번에는 소리까지 하는 이자람이 맡았으니 둘 다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처선 이승헌·숭재 이원희·자원 배보람, 내시 3인방은 무대를 흥겨운 놀이터로 만드는 넉살이 일품이다. 비명 횡사한 폐비 윤씨의 혼령이 궁궐을 떠돌아다니자 굿을 하려고 한다.

 연산군이 이들을 예뻐할 수밖에 없다. 대신들은 굿이 불교 문화라 공자가 노할 것이라며 굿을 철저하게 반대하고 있다. 대신을 연기하는 노장 배우 오영수·이문수 등의 능청스런 연기는 극에 윤기를 더한다.     

 정명주 국립극단 홍보팀장은 "원로 배우들의 내공 있는 연기와 이자람, 백석광 등 젊은 배우들의 신선한 에너지가 만나 시너지를 발휘하고 있다"며 뜨거운 연습 현장을 전했다.

연극 '문제적 인간 연산'(사진=국립극단)

연극 '문제적 인간 연산'(사진=국립극단)

 좀 더 미니멀해지고 모던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윤택 연출은 "이전 버전들이 뜨거웠다면 이번에는 차갑다"고 말했다. 하지만 연산군은 여전히 도발적이었다. 왜 공자 말을 듣지 않느냐는 대신들의 힐난에 "내가 중국놈이냐"라고 반박하는 연산군은 여려보이지만 그 안은 옹골찬 백석광의 눈빛과 맞물리며 색다른 에너지를 발산했다.

 그는 또 말한다. "죽은 임금도, 공자도 책임지지 않는다. 내가 책임진다. 나는 공자의 제자가 아니다. 조선의 왕이다. 그래 굿을 하자. 여기서. 무당은 필요 없다. 여기 왕무당이 있다. 풍악을 울려라."

 이윤택 연출은 연습을 잠깐 멈춘 뒤 "직전인 2003년 버전은 1995년 초연과 무대까지 다 똑같았다. 이번에는 대본 빼고 완전히 바뀌었다"고 전했다.  

 음악감독과 작창까지 맡은 이자람이 들어오면서 본래 음악을 맡았던 최우정 서울대 교수가 빠졌다. 무대미술도 신선희 감독 대신 최근 연극 '리어왕'(연출 윤광진)으로 모던한 무대 미학의 절정을 보여준 이태섭 무대디자이너가 맡았다.

 국립극단의 시즌계약단원 중 한명인 백석광은 이력이 특이하다. 한예종 무용원 실기과를 중퇴한 뒤 같은 대학 연극원으로 들어가 연기를 공부했다. 그는 "초연 때와 바뀌었으니 새로운 해석과 함께 연산군의 입장을 배우로서 공고히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자람은 처음에 녹수 역에 자신이 캐스팅된 것이 의아했는데 "연산군의 모성애를 채우면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동지이자 노래로 위로해준 가인"이라는 이윤택 연출의 설명을 듣고 이해가 됐다고 했다.

 백석광과 이자람은 약 7년 간 교제한 연인이다. 함께 출연하는 작품은 이번이 처음인데 마지막이 될 것 같다고 웃었다. 둘 다 이윤택 연출의 작품이라 함께 출연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자람과) 같이 일을 하지 말자고 했는데 이윤택 선생님이 전통 예술과 연극 예술을 두루 섭렵하신 분이라 이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성격이 (둘 다) 원만한 편이라서 심신이 피곤한 것은 말고 애로사항은 없다(웃음)."  

이윤택, 연극 '문제적 인간 연산' 연출(사진=국립극단)

이윤택, 연극 '문제적 인간 연산' 연출(사진=국립극단)

 "이윤택이라는 거목 밑이 아니면 둘이서 언제 서보겠냐고 생각했다. 앞으로는 함께 작업을 하지 않을 것 같다. 연애를 계속 하려면 그것이 안전할 것 같다(웃음)."(이자람)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배우 이혜영이 연산과 녹수로 열연했던 1995년 초연 당시 그 해 대산문학상 희곡상, 동아연극상 작품상·희곡상·여자연기상(이혜영)·무대미술상, 백상예술상 대상·작품상·남자최우수연기상(유인촌),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창작극 부문 작품상 등 각종 연극상을 휩쓸었다  

 호평을 받았음에도 이번에 개작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윤택 연출은  내가 죽어도 이 작품이 계속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내 스타일로 계속 해나가면, 내가 죽은 다음에는 못 하니까. 희곡은 남으니까 그대로 두고 배우, 디자인, 음악 등을 새롭게 다 수용해서 교통 정리를 하고자 했다. 이 작품은 그렇게 해도 재미가 있고, 의미가 있다. 가능하면 나중에는 내가 연출하지 않았으면 한다(웃음)."

 '문제적 인간 연산'을 누구나 연출하고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는 판단이다. "옛날에는 한국적, 민족적 특성을 강조했다. 게다가 이 작품이 만들어진 90년대에는 한국 연극의 정체성, 한국 연극의 세계화에 대한 움직임이 싹틀 때였다. '이게 한국적이야'라고 주장해야할 시기였는데 이게 탄생한 거지."

 지금은 이게 살아남을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하는 시기라 했다. "세계 연극 속의 한국 연극의 레퍼토리가 됐으면 한다"는 것이다. "한국적이면서도 현대적인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극은 정해진 인터미션 없이 2시간10분 동안 진행될 예정이다. 7월26일까지. 의상디자인 송은주, 조명디자인 조인곤, 안무 김남진. 2만~5만원. 국립극단. 1644-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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