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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과는 또 다른 공포"…기후우울증 겪는 2030

등록 2023.02.25 08:00:00수정 2023.02.25 08:3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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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존재가 민폐 같이 느껴져"

출산 기피 현상으로도 이어져

[덜주라=AP/뉴시스] 지난해 9월1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덜주라에서 소방관들이 '보더 파이어' 산불을 진압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에 노동절인 5일까지 폭염이 이어질 것으로 예보된 가운데 로스앤젤레스 북쪽에서 발생한 '루트 파이어'와 샌디에이고 동쪽에서 발생한 이번 산불이 농촌 지역으로 번졌다. 2022.09.02.

[덜주라=AP/뉴시스] 지난해 9월1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덜주라에서 소방관들이 '보더 파이어' 산불을 진압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에 노동절인 5일까지 폭염이 이어질 것으로 예보된 가운데 로스앤젤레스 북쪽에서 발생한 '루트 파이어'와 샌디에이고 동쪽에서 발생한 이번 산불이 농촌 지역으로 번졌다. 2022.09.02.


[서울=뉴시스]임철휘 기자 = "기후위기가 무서워서 눈물이 나고 숨을 잘 못 쉬었어요. 당장 나무를 봐야겠다 싶어서 서울에 있는 유명한 산에 올라갔어요. 나무에 손을 대고 한참을 울었더니 좀 나아졌습니다."

취업준비생 이승주(26)씨는 기후 위기가 눈앞의 공포로 느껴질 때면 산을 오른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는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글을 읽고 난 후 느닷없이 눈물을 흘리기도, 갑자기 숨이 턱 막히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기후위기가 주는 공포는 귀신이 주는 공포랑 달랐다"며 "기후위기가 내 눈앞에 다가온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전례 없는 추운 겨울로 사망자가 나오고, 극심한 더위로 산불 등 피해가 발생하는가 하면, 급작스러운 폭우로 반지하에 살던 시민들이 숨지는 등 기후위기는 더 이상 상상 속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에 환경문제에 감수성이 높은 일부 젊은 세대는 '기후우울증(Climate Depression)'을 호소하고 있다.

기후우울증이란 기후위기가 자신과 공동체에 위기를 가져온다는 생각에 무기력·불안·우울 등을 느끼는 증상을 의미한다.

서울 관악구에 거주하는 송모(25)씨는 지난 여름부터 "내 존재 자체가 민폐라고 느껴져 이따금 무기력해지고는 한다"고 말했다.

그는 "어린애들이 마스크를 쓴 것을 볼 때마다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며 "먹고 마시고 움직일 때마다 기후위기를 심화시키는 것 같아 바깥 활동을 줄이곤 했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기후위기를 보며 힘들어하는 모습은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해 6월 유엔환경회의 50주년을 기념하는 브리핑에서 "빠르게 변하는 기후를 보면서 사람들은 두려움, 절망, 무력감 같은 감정을 강렬하게 경험한다"며 "기후변화는 정신건강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고 선언했다.

해외에서는 '외상전 스트레스 장애(Pre Traumatic Stress Disorder)'와 기후위기를 연결하는 작업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대구=뉴시스] 이무열 기자 = 지난해 9월23일 오전 대구 중구 대구시청 동인청사 앞에서 대구기후위기비상행동 회원들이 '924 기후정의행진 상경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2.09.23. lmy@newsis.com

[대구=뉴시스] 이무열 기자 = 지난해 9월23일 오전 대구 중구 대구시청 동인청사 앞에서 대구기후위기비상행동 회원들이 '924 기후정의행진 상경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2.09.23. lmy@newsis.com


기후위기로 인한 불안감과 우울증은 출산 기피 현상으로도 이어진다고 한다.

서울 신촌에 거주하는 문수영(26)씨는 "출산을 한다면 아이가 20대가 될 때쯤 2050년이 된다. 그 아이는 기후재난의 피해를 정면으로 받을 것이다"며 "그 아이에게 미안해서라도 출산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에 거주하는 봉덕균(29)씨도 "당장 미세먼지도 심해서 아이가 밖에서 잘 못 노는데 앞으로는 더 심해지지 않겠냐"며 "기후위기가 앞으로 나아질 가능성이 없으면 죄책감이 들어서라도 아이를 못 낳을 것 같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기후위기의 해법으로 출산을 하지 않겠다는 다소 급진적인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인구를 줄이는 것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이산화탄소 배출 저감 대책이라는 주장이다.

실제 지난 2018년 영국에서는 기후위기에 맞선 '출산파업(Birth strike)'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면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것이다.

지난 2017년에 발표된 스웨덴의 한 연구에 따르면 개발국 내 가족당 한 명씩 자녀가 줄어들 때 매년 58.6톤의 탄소를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김보림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는 "기후위기로 인한 미래 불확실성으로 '다음'을 상상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에 출산파업 주장까지 나왔다고 본다"며 "단순히 온도 상승을 막는 것을 넘어 기후위기라는 복합적인 위험에서부터 모두가 안전해질 수 있게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f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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