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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재능 팝니다"···재능거래 염가경쟁에 '받은 만큼만'

등록 2017.09.10 10: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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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재능 팝니다"···재능거래 염가경쟁에 '받은 만큼만'

재능거래 경쟁 심화···판매자들 자체 몸값 절하
구매자들 "가격 낮아지면서 질도 떨어져" 불만
기업처럼 낮은 가격 표시하고 옵션거래 모습도
"적절한 보상 없다보니 기존 상거래 방식 답습"
"서로 속고 속여, 좋은 의도 벗어나 부작용 발생"

 【서울=뉴시스】심동준 기자 = 부업으로 재능거래 플랫폼을 통해 지난 2015년 4월부터 영어 과외를 뛰고 있는 직장인 김덕호(31)씨는 시간당 강의료를 점차 낮추고 있다. 김씨는 플랫폼 이용 초기에는 강의료를 1시간에 3만5000원 정도 받았으나 최근에는 2만원 정도를 제시하고 있다. 금액을 낮추지 않으면 계약이 성사되지 않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해진 것이다.

 김씨는 "일정 금액을 넘어가면 구매자로부터 연락이 오지 않는다. 점점 가격을 내릴 수밖에 없다"며 "돈을 벌려고 하는 일이 아니지만 금액이 낮아지면 '받은 만큼만 하면 된다'라는 심리가 생기게 된다"고 토로했다.

 자신만의 재능을 전수해주고 일정한 돈을 받는 '재능거래'가 성행하고 있다. 원하는 분야의 일을 하면서 부수입까지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재능거래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 또는 직장인들도 많아지고 있는 이유다.

 재능거래 플랫폼은 판매자가 경쟁적으로 지적 재산과 같이 형태가 없는 자산을 교육이나 용역 형식으로 제공하고 구매자는 돈을 지불하는 성격의 장터다. 한국에는 2011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현재는 크몽·오투잡·숨고·탈잉 등 다수의 재능거래 플랫폼이 영업 중이다.

 거래되는 재능 종류는 영어·프랑스어 등 외국어, 중·고등학교 교과목부터 꽃꽂이, 사진 촬영법, 컴퓨터 활용법, 게임 잘 하는 법 등 다양하다. 문서를 대신 작성해주거나 홈페이지를 제작·운영하고 홍보를 대행해주는 등 기존에 회사가 하청 또는 용역 계약으로 처리했던 일들도 재능이라는 이름으로 거래되고 있다.

 문제는 재능 거래 시장 규모가 커지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판매자들이 스스로 가격을 낮추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재능 거래가 '적정 가격'으로 수렴되는 현상으로 볼 수 있지만 가격과 함께 질까지 떨어진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재능거래는 대체로 일반인이나 비숙련 노동자를 통해 공급이 이뤄진다는 점에서 결과물에 대한 초기 기대치가 높은 편이 아니다. 하지만 최근 재능거래가 점차 '나눔'보다는 '인력사무소'와 같은 모습으로 진행되고 있어 성과와 전문성을 요구하는 구매자가 점증하는 추세다.

 한 창업초기기업에서 근무했던 이해인(28·여)씨는 회사에서 재능거래 플랫폼을 이용해 블로그 운영을 맡겼지만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아 계약을 연장하지 않았다.

"내 재능 팝니다"···재능거래 염가경쟁에 '받은 만큼만'

이씨는 "재능거래 플랫폼에서 사람을 구해 저렴하게 운영을 맡겼다가 계약을 멈춘 기억이 있다"며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않아 계약을 끊었다"고 말했다.

 시장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가격 인하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은 판매자들도 대체로 동의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들은 재능 거래 가격의 하락 속도가 너무 빠르고 정도가 심하다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본인의 노동에 대한 대가를 낮추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은 일부 판매자가 기본 상품에 추가 요금을 요구하는 '옵션' 형태의 거래를 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창업초기기업을 운영하면서 영업 창구로 재능거래 플랫폼을 이용하고 있다는 K(31)씨는 "경쟁이 워낙 치열해지다보니 표면적인 가격을 낮춰 게시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영업 자체를 할 수가 없다"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기본적인 상품 하나를 개발해 올리고 계약이 성사되면 구체적인 서비스 옵션을 달아 추가 금액을 청구하는 방식으로 거래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그는 "경쟁이 치열해지다보니 플랫폼에 노출조차 되지 않는 경우도 부지기수"라며 "이런 때 별도의 돈을 내면 플랫폼에서 노출도를 높여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서비스 가격과는 무관하게 판매자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옵션거래 등 경쟁의 부산물은 구매자 피해로 돌아간다. 재능거래 플랫폼에서 옵션거래를 접한 구매자들이 '속았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분통을 터뜨리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블로그에 재능거래 플랫폼을 언급하면서 "다시는 이용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글을 작성한 한 누리꾼은 표시된 거래 가격과 실제 요구하는 금액이 달랐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누리꾼은 "판매자가 처음 올린 가격은 2만5000원이었는데 막상 거래를 진행하려고 하니 11만원을 요구했다"며 "같은 재능을 2만원에 올린 판매자는 결제를 하고 메시지를 보냈지만 읽기만하고 아무런 연락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최근의 고용 여건과 특별한 진입장벽이 없다는 측면에서 재능거래 시장은 공급하는 쪽이 다수로 형성될 가능성이 큰 시장"이라며 "참신할 수 있는 시장임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아 겉으로는 저렴하지만 실제로는 비싸게 파는 기업의 상거래 방식을 답습하는 현상이 나타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개인과 개인의 나눔은 금전적으로 환산할 때 기준을 마련하기 어렵고 왜곡이 나타날 수 있는 영역"이라면서 "나눔이 상거래의 영역으로 오게 되면서 서로 속고 속이는 모습이 나타나 원래의 좋은 의도를 벗어난 부작용들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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