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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희의 타로 에세이-4] 통증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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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1/04/10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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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왜 우리는 통증을 느낄까. 절지동물처럼 다리 하나가 잘려도 통증을 못 느낀다면 사는 게 훨씬 수월할 텐데 말이다.

의학계에서는 통증 척도를 10점 만점으로, 치통이 4.5 출산이 7.5 희귀 난치성 질환 같은 극심한 고통을 8로 수치화하고 있다. 출산이 난치성 질환의 고통과 맞먹을 정도로 통증이 심하다는 것이다.

문득 내가 출산하던 날이 떠올랐다. 새벽 5시부터 배가 아팠다. 꿈에서도 계속 배가 아팠다. 6시쯤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만큼 심한 배뇨를 느끼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비몽사몽 소변을 보고 휴지로 닦으려는데 핏덩이가 묻어나왔다.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인가. 몇 분 후 생리를 하는 느낌에 다시 화장실에 달려가니 이번엔 자궁벽에서 떨어져 나온 것 같은 하얀 이물질이 나왔다. 그러면서 10분 간격으로 통증이 왔다.

하필 중복날이었다. 본격적인 더위를 알리듯 아침부터 매미가 요란하게 울었다. 난 부풀어 오른 배를 감싸 쥐고 느릿느릿 걸었다. 한껏 짙어진 플라타너스 잎사귀에 아침 햇살이 열매처럼 매달려 찰랑거렸고 보도블록 위로 햇빛이 사선으로 튀어 오르고 있었다. 내 통증과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이 출근하려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 휴가를 떠나는 듯 젊은이들이 배낭을 멘 채 삼삼오오 웃고 떠들고 있는 모습들이 무척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저들처럼 다시 이 길을 걸을 수 있을까. 내 인생의 변곡점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하늘이 노랗게 느껴진다던데…, 창문으로 뛰어내리고 싶을 만큼 아파야 아기가 나온다던데….

통증은 의식이다
삼복더위가 시작되던 그 날, 난 11시부터 촉진제를 맞은 뒤 오후 4시가 다 돼서야 수술실로 들어갔다. 정말 온몸 구석구석 분포돼 있던 통점이 일제히 비명을 지르는 것 같은 통증이었다. 

신은 어쩌자고 출산에 그토록 심한 통증을 부여한 것일까.

출산이 ‘벌’이기 때문이었다. 신은 아담과 이브에게 모든 것을 먹어도 좋지만 선악과만은 따먹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런데 이브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서 아담과 함께 나눠 먹는다. 진노한 신은 에덴동산에서 이 둘을 쫓아내며 벌을 내린다. 아담에게는 ‘노동’을 이브에게는 ‘분만’이란 고통을 준다.

그런데 의문이 생겼다. 분만은 고통의 결과이지 원인은 아니다. 고통의 원인은 선악과였다. 선과 악을 안다는 것은 한마디로 ‘의식’이 생기는 것이다. 분별력이 생기는 것이고 자각하고 깨닫는 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의식을 갖는 것이 에덴동산에서 퇴출되고, 고통이란 벌을 받을 만큼 중죄일까.

그렇다면 선악을 모르는 ‘무지’ 상태가 ‘천국’이란 말인가. 고통도 없지만 의식도 없는 ‘무지’의 동산이 천국이었다니. 어쩐지 독재자의 통치를 떠올리게 했다. 그리스 로마 시대의 원형경기장이나 3S정책 등 우민화 정책이 혹 에덴동산에서 기원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엄마는 아프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었다는 것은 선악과로 대변되는 신의 지혜를 탐한 것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만일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지 않았다면 통증도 없었을 테지만 ‘의식’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의식을 얻음으로써 신의 식민지로부터 독립해 주체적 인간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주체적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한 성장통으로 통증을 얻은 셈이다. 이 순간 삶이 고해가 된 것이다.   

3번 타로는 임신한 여황제다. 엄마 카드로 불리기도 한다. 안락의자에 임부복을 입은 채 평온하게 앉아 있는 그녀에겐 출산의 두려움 따위는 없어 보인다. 그녀의 정원은 생기로 가득하다. 나무는 울창하고 밀 이삭은 누렇게 여물었다. 폭포수가 흘러내리는 그녀의 정원은 황금빛 미래로 가득한 듯하다.

어릴 적 궁금했던 것 중 하나가 임신이었다. 1+1=2인데, 왜 남자1이 여자1을 만나면 아기라는 또 다른 1이 탄생하는 것일까. (물론 쌍둥이는 예외지만)
 
사랑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덧셈
나와 네가 만나 우리가 되지
그러나 사랑은 참 이상한 뺄셈
나와 너를 빼고도
우리가 남지

난 어렴풋하게나마 타로 3번에서 그 의미를 발견했다. 임신부가 여황제 칭호를 얻은 것은 임신한 여자가 인간으로서 가장 고귀한 지위이며, 인간이 스스로 생산능력을 갖게 되었다는 것은 신으로부터 독립을 의미한다는 것을.

수비학적으로 보면 숫자 1이 점(·)이라면 숫자 2는 선(-)이다. 그리고 숫자 3은 선과 선이 만나 최초의 ‘면’(△)을 만든다. 숫자 3은 이처럼 모호했던 것들의 실체를 드러내 준다. 숫자 2가 신과 인간과의 ‘관계’를 나타낸다면 숫자 3은 인류의 탄생을 의미한다. 나와 네가 만나 ‘우리’가 되는 것. 온전히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 낸 우리라는 공동체. 그래서 숫자 3은 번영 성장, 속세의 시작과 확장을 의미한다.

여황제는 오른손으로 권장을 들고 있다. 이는 의지의 상징이다. 이 땅의 주인이 되기 위해 출산의 고통도 거뜬히 이겨내겠다는 다짐이다. 속세는 의지로 만들어가는 세계이기도 하니까.

아파야 산다
인간이 진정한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한 통과 의례. 인간의 의지로 이 땅의 주인공이 되기 위한 성장통이 바로 통증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엄마는 아프다. 잉태하기 위해서. 아버지도 아프다. 양육하기 위해서. 우리도 아프다. 번성하기 위해서.  

그런데 얼마 전 책에서 통증에 대한 생물학자의 글을 보았다. 통증은 인간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본능이라는 것이다.
선천성 무통각증이란 병이 있다. 육체적으로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병이다. 뼈가 부러지고 피가 철철 넘쳐흘러도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이 병은 통증을 자각하지 못해 다시 말하면 위험을 방치해 대개 일찍 죽는다고 한다.

통증이란 순수한 의식적 경험이므로 의식이 없으면 통증도 없다. 그래서 생물학에서는 의식이 발달할수록 즉 대뇌피질이 복잡할수록 통증 감수성이 크다고 한다. 하등동물 일수록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최근 동물에 대한 통증 연구가 계속 진행되고 있다. 의식적으로 느끼지는 못하지만(결국 통증이란 것도 뇌의 작용이므로) 뇌가 없는 하등동물도 감각으로 통증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고도로 발달된 신경계와 신경세포의 분포 밀도가 조밀한 뇌를 가진 인간은 통증에 더 민감하다는 사실이다.

통증은 내 몸이 내게 주는 메시지이다. 통증을 통해 우리는 삶을 조율한다. 샤론 모알엠이 말한 것처럼 아파야 산다. 아니 아파서 더 강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다. 아파서 더 진화할 수 있었다. 우리 마음과 정신을 깨어 있게 해주는 비상벨이 바로 통증인 것이다. 

▲조연희 '야매 미장원에서' 시인 golenelia@hanmail.net

※이 글은 점술학에서 사용하는 타로 해석법과 다를 수 있으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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