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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항쟁 참상 손글씨로 전하다' 박용준 열사 누구인가

등록 2021.05.18 12:12:32수정 2021.05.18 13: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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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주년 기념식서 80년 5월21일 비장한 일기장 공개

야학·주민운동 이끈 25세 청년, '투사회보' 제작 동참

손글씨로 등사원지 새기며 오월항쟁 확산 기여 평가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제41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1부 공연 영상 중 박용준 열사 조명 내용. (사진=제41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공연 영상 갈무리) 2021.05.1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제41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1부 공연 영상 중 박용준 열사 조명 내용. (사진=제41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공연 영상 갈무리) 2021.05.1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희생으로 자유라는 대가를 얻을 수 있다면 나는 희생하겠다."

18일 광주 북구 운정동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1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는 항쟁 당시 민중 언론 역할을 했던 '민주시민회보'(투사회보) 제작에 참여한 박용준 열사가 조명됐다.

투사회보를 통해 계엄군 만행을 널리 알리고 항쟁 참여 확산을 이끌어냈던 박 열사의 삶에 관심이 모여진다.

이날 기념공연 1막 '광주의 오월' 중엔 배우들의 독백극에 이어 항쟁 의의와 교훈을 되짚어보는 공연이 상영됐다. 영상에선 항쟁 당시 광주 YWCA 신용협동조합 직원이던 박 열사가 등사기와 함께 찍은 사진이 등장했다.

동시에 하단 자막엔 박용준 열사(투사일보 필경사)라고 쓰여졌고, 곧바로 계엄군 발포를 목격했던 1980년 5월21일 그의 일기장에 적힌 글이 소개됐다.

"그들이 우리의 피를 원한다면" "희생으로 자유라는 대가를 얻을 수 있다면" "나는 희생하겠다" 등 자막이 내레이션 없이 차례로 나오며 박 열사의 비장한 일기장 내용이 공개되자 식장은 숙연해졌다.

1980년 당시 25세였던 박 열사는 광주 YWCA 신용협동조합 직원이었다. 고아였지만 학업을 포기하지 않았고 주민 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들불야학에선 불우한 도심 빈민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활동했다.

계엄군 만행에 격분한 박 열사는 들불야학당 출신 인사들과 함께 항쟁 진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는 언론을 대신해 민중신문을 펴내자고 결의를 모았다.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5·18민주화운동 당시 들불야학 교사들이 항쟁 참상을 알리고 참여를 독려하고자 만든 민중신문 '투사회보'. 투사회보 글씨는 박용준 열사가 손수 등사지에 쓴 것으로 최근 디지털 글꼴로 제작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사진=지역공공정책플랫폼 '광주로' 제공) 2021.05.1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5·18민주화운동 당시 들불야학 교사들이 항쟁 참상을 알리고 참여를 독려하고자 만든 민중신문 '투사회보'. 투사회보 글씨는 박용준 열사가 손수 등사지에 쓴 것으로 최근 디지털 글꼴로 제작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사진=지역공공정책플랫폼 '광주로' 제공) 2021.05.1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처음엔 '광주시민 민주투쟁회' 명의 형태의 유인물이었으나, 항쟁이 본격화된 5월21일부터는 '투사회보'라는 이름의 민중 신문을 냈다.

평소에도 반듯한 손글씨로 유명했던 박 열사는 필경(筆耕) 작업을 도맡았다.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 등이 쓴 초고를 건네받은 박 열사는 등사원지에 한 글자씩 또박또박 옮겼다.

이렇게 그의 손글씨로 쓰여진 '투사회보'는 1호부터 9호까지 시민들에게 전달됐다. 투사회보는 5·18을 학생운동이 아닌 민중항쟁으로 확산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항쟁이 격화되면서 5월24일부터는 광천동 들불야학 학당이 아닌 박 열사의 사무실이 있던 대의동 광주 YWCA 회관에서 제작되기도 했다.

박 열사는 최후 항쟁 소식인 10호 필경 작업을 마친 직후인 27일 새벽 YWCA회관 2층 창가에서 건너편 건물에 배치돼 있던 계엄군 저격수가 쏜 총에 맞아 산화했다.

박 열사는 항쟁의 토대를 만들거나 이끈 들불7열사 (박기순·윤상원·박용준·박관현·신영일·김영철·박효선) 중 1명이다.

기념식 주제였던 '우리들의 오월'에 쓰인 글꼴은 박 열사의 글씨를 본떠 만든 '투사회보체'였으며, 이날 처음 대중에 공개됐다. 이 글꼴은 투사회보가 처음 발간됐던 5월21일에 맞춰 무료 배포된다.

1부 영상에선 41년 만에 영정을 찾은 '초등학생 희생자' 전재수 열사의 사연도 함께 소개됐다.

당시 효덕초등학교 4학년생(12살)이던 전 열사는 1980년 5월24일 광주 남구 진월동 인근에서 또래 친구들과 놀다가 계엄군의 오인 사격에 의해 숨졌다.

그동안 생전 사진이 발견되지 않았던 탓에 묘에는 영정 사진을 대신해 무궁화 사진이 놓인 채 41년이 흘렀다.

그러던 중 유족이 올해 1월 우연히 생전 사진을 발견, 지난 어린이날에 비로소 민주묘지 영정 표지석, 유영봉안소에 영정이 놓였다.

한편, 정부가 주관하는 41주년 5·18 기념식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우리들의 오월'을 주제로 거행됐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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