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은 K팝 불모지? 글래스턴베리 '만점' 받은 세븐틴 '언행일치'
[K팝 情景] 자부심 높은 英 음악축제에 화합 맥락 만들어
[서머싯 워시 팜=AP/뉴시스] 세븐틴이 6월28일 K팝 아티스트 처음으로 영국 대형 음악축제 '글래스턴베리' 메인 무대에 입성해 공연하고 있다.
지난 3월 말부터 5월 말까지 세븐틴과 함께 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세븐틴 '팔로우(FOLLOW)' 크루즈 파티' 참여(?)를 시작으로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세븐틴 투어 '팔로우' 어게인 투 인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세븐틴 투어 '팔로우' 어게인 투 서울' 그리고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닛산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세븐틴 투어 '팔로우' 어게인 투 재팬'까지 모두 객석에 있었거든요.
그런 가운데 세븐틴 힙합팀이 2017년 믹스테이프 형태로 공개한 '언행일치(言行一致)' 노랫말이 떠올랐습니다. "30에서 100에서 300 800 담엔 3000 7000 13,000 눈앞에" 대목이요. 숫자는 콘서트 관객을 의미합니다. 이 중 30은 사실 콘서트 관객 숫자는 아니에요. 데뷔 전 연습실에서 30여명의 관객들 앞에서 실력을 다졌을 때를 가리킵니다.
힙합팀은 이 곡을 2017년 잠실 종합운동장 보조 경기장 콘서트에서 처음 불렀습니다. 이후 케이스포돔(체조경기장)(1만명)을 거쳐 고척스카이돔(1만7000명), 인천 아시아드 주경기장(2만8000명), 서울 월드컵 경기장(3만5000명)에서 공연했습니다. 말 그대로 계단식 성장이죠. 해외에선 더 큰 공연장 무대에 올랐습니다. 특히 닛산 스타디움 공연은 1회당 7만2000명이 운집했습니다. 파도타기 응원만 해도 한참이 걸리는 이곳 공연장의 풍경은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세븐틴이 마침내 지난달 28일(현지시간)엔 K-팝 아티스트 최초로 영국 대형 음악 축제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이하 '글래스턴베리') 메인 스테이지인 '피라미드 무대'에 입성했습니다. 아쉽게 이 축제 현장엔 함께 하지 못했는데요. 대신 열심히 온라인에서 영상과 외신·현장 관객들의 반응을 찾아봤습니다.
[서머싯 워시 팜=AP/뉴시스] 세븐틴이 6월28일 K팝 아티스트 처음으로 영국 대형 음악축제 '글래스턴베리' 메인 무대에 입성해 공연하고 있다.
라이브 밴드와 함께 한 이번 글래스턴베리 공연은 흡사 록밴드 공연을 방불케 할 만큼 강렬했습니다. 우지의 건반 연주로 시작한 '마에스트로(MAESTRO)'를 신호탄으로 자신들이 무대에 있는 1시간 만큼은 글래스턴베리의 지휘자가 되겠다는 각오를 분명히 했죠. 그리고 무대는 이들의 뜻대로 됐습니다.
'레디 투 러브(Ready to love)' 'SOS'를 거쳐 '록 위드 유' 무대에선 안무보다 록밴드처럼 노래하며 관객들과 호흡에 더 신경을 썼습니다.
유닛 무대로 장르의 다변화도 꾀했죠. 힙합팀, 퍼포먼스팀, 보컬팀은 각각 '라라리(LALALI)', '아이 돈트 언더스탠드 벗 아이 러브 유(I Don't Understand but I Luv U)', '청춘찬가'를 통해 다양한 음악 색깔을 뽐냈다. 조슈아와 버논는 영어곡 '투 마이너스 원(2 MINUS 1)'을 부르기도 했습니다.
[서머싯 워시 팜=AP/뉴시스] 세븐틴이 6월28일 K팝 아티스트 처음으로 영국 대형 음악축제 '글래스턴베리' 메인 무대에 입성해 공연하고 있다.
'헤드라이너(Headliner)'에선 팀의 메인보컬들인 승관, 도겸의 가창력이 방점을 찍었고요. 신나는 '음악의 신'에선 멤버들은 무대 곳곳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리고 글래스턴베리 마지막 곡 역시 세븐틴 공연 끝의 인장과도 같은 '아주 나이스' 였습니다. 캐럿들이 모인 콘서트처럼 글래스턴베리 관객들 역시 '아주 나이스'의 후렴을 계속 반복해 불러 공연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른바 '무한 아나스'(무한 '아주 나이스'의 줄임말)가 펼쳐졌습니다. 승관은 객석으로 내려가 백발의 우아한 중년 여성, 그리고 어린이 관객 등에게 마이크를 넘기며 분위기를 절정으로 끌어올렸죠. 틱톡엔 승관이 공연 스태프와 함께 즐기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최근 K팝 팬들에겐 미국 최대 음악 축제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트 페스티벌'이 더 알려졌지만, 세계에선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에 더 열광하는 음악팬들이 많습니다. 1970년 레드 제플린의 공연을 시작으로 만들어진 축제인데 매년 라인업을 공개하지 않고도 약 20만장의 티켓이 단숨에 매진됩니다. 전설적인 무대도 많이 나왔는데요. 최근엔 2022년 영국의 전설적인 밴드 '비틀스' 출신 폴 매카트니가 팔순의 나이에 최고령 헤드라이너로 나서 3시간 동안 36곡을 부른 순간이 명장면으로 회자됩니다.
앞서 글래스턴베리에 국내 팀으로는 싱어송라이터 최고은, 밴드 술탄오브더디스코와 잠비나이 등이 출연했는데 출연 뮤지션 선정에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지 언론에서도 이번 K팝 아티스트의 첫 '글래스턴베리' 메인 스테이지 입성을 두고 "이제야"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니까요.
[서머싯 워시 팜=AP/뉴시스] 세븐틴이 6월28일 K팝 아티스트 처음으로 영국 대형 음악축제 '글래스턴베리' 메인 무대에 입성해 공연하고 있다.
그런 곳에서 세븐틴의 '글래스턴베리' 공연은 현지 권위 있는 매체들로부터 호평을 받았습니다. 영국 음악전문 'NME'은 평점 5점 만점에 5점을 주며 "글래스턴베리의 정신은 언어, 인종, 문화에 관계없이 즐겁게 화합하는 것이다. 세븐틴의 공연은 이 같은 맥락에 충분히 부합했다"고 봤습니다. 특히 "세븐틴을 잘 몰랐던 관객들마저 무대에서 쏟아지는 엄청난 에너지에 아찔한 행복을 느꼈다"고 했죠. 이브닝 스탠다드도 평점 5점 만점에 5점을 매기며 "팬이든 팬이 아닌 관객이든 즐겁게 즐길 수 있는 공연"이라고 했습니다. 음악 매거진 도크(DORK)는 "K-팝의 세계적인 위력과 이를 수용할 수 있는 글래스턴베리의 능력을 보여준, 세븐틴과 글래스턴베리 모두에게 의미 있는 공연"이라고 평했습니다.
특히 현지화 대신 '세븐틴스러움'으로 승부를 한 것이 통했다는 반응입니다. 김영대 대중음악평론가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 '환상의 영대랜드'에서 "사람들이 세븐틴 공연에 납득하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보였다. 콧대 높은 관객들에게 세븐틴스러움을 보여줬다는 것만으로도 훌륭하지만 무대 완성도도 높았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관객들의 반응도 찾아봤습니다. 그 중 미국 소셜 뉴스 사이트 '레딧'에 올라온 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글쓴이는 세븐틴의 글래스턴베리 공연에 회의적이었으며, 라인업 공개되기 전에 티켓이 매진됐기 때문에 세븐틴이나 세븐틴 팬들에게도 우호적인 환경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메인 무대지만 낮 공연인 데다가 그곳엔 세븐틴의 음악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관객들이 다수라고 추정됐기 때문입니다.
[서머셋 워시 팜=AP/뉴시스] 세븐틴이 6월28일 K팝 아티스트 처음으로 영국 대형 음악축제 '글래스턴베리' 메인 무대에 입성해 공연하고 있는 가운데 현지 음악 팬들이 열광하고 있다.
세븐틴이 최근 K팝 가수 처음으로 유네스코 청년 친선 대사로 임명되면서 세계 청년들을 위해 100만달러(약 13억9000만원)를 기부하기로 한 것도 이들이 평소 음악을 통해 내세운 신조와 일치합니다.
소셜 미디어에 올라온 글래스턴베리 한국 관객 반응도 현장 분위기를 대변합니다. 세븐틴 팬은 아니고 한국인으로서 의리를 지켜주고자 피라미드 무대 앞으로 향했다는 이 음악 팬은 "라이브를 정말 잘해서 놀랐다. 승관 씨가 서양 관객들도 '아주 나이스'를 외우게 만들어 공연이 끝나고 모두 '아주 나이스'를 부르며 헤어졌다"고 썼어요. 다음엔 저도 페스티벌에 참여한 세븐틴의 모습을 꼭 현장에서 보고 싶습니다. 그러면 아주 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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