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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평창대관령음악제'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아시아의 LFO' 증명

등록 2018.07.29 13:54:17수정 2018.07.29 14: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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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평창대관령음악제'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아시아의 LFO' 증명

【평창=뉴시스】 이재훈 기자 = 젊음의 패기로 무장한 채 싱그럽게 약동하는 오케스트라는 자신들의 열정과 색채를 남김없이 내뿜었다.

'제15회 평창 대관령 음악제'를 위해 구성한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28일 강원 평창 알펜시아 뮤직엔트에서 펼친 콘서트 '고잉 홈'은 젊은 프로젝트성 오케스트라가 내놓을 수 있는 '모범 답안'이었다.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피아니스트로 올해부터 이 음악제를 이끄는 손열음(32) 음악감독이 또래 연주자들을 불러모아 구성했다.

세계적인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발돋움한 20~30대 한국인 오케스트라 플레이어들이 콘서트 타이틀처럼 고향으로 돌아와 뭉쳤다.

스타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31)이 악장을 맡은 이 오케스트라 구성원은 대충 봐도 눈을 번쩍 뜨게 된다. 설민경 독일 밤베르크 심포니 정단원, 김두민 독일 뒤셀도르프 톤할레 오케스트라 수석, 배지혜 독일 쾰른 귀르체니히 오케스트라 부수석, 조성현 독일 쾰른 귀르체니히 오케스트라 솔로 플루트, 함경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콘서트허바우 제2 오보에, 조성호 일본 도쿄 필하모닉 수석, 김홍박 노르웨이 오슬로 필하모닉 종신 호른 수석, 조인혁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클라리넷 수석….

이들이 리허설 등을 통해 본격적으로 호흡을 맞춘 것은 전주 중반부터였다. 그러나 그 짧은 기간 호흡을 맞춘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응집력이 돋보였다. 악기마다 선명한 색깔을 내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오케스트라의 매력이 극대화했다.

1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에서 오케스트라 연주와 함께 돋보였던 것은 협연자로 나선 손열음이었다. 피아노의 유려한 타건이 돋보이는 이 곡은 자칫 피아니스트의 기교와 개성만 도드라질 수 있다.

하지만 노래하듯 연주해나간 손열음은 본인 터치의 세밀함을 신경 쓰면서도 오케스트라와 호흡한다는 큰 그림을 보는 데 주력했다. 오케스트라는 합창단 코러스처럼 기민하게 반응했다.

류태형 음악평론가(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는 "어느 유명한 피아니스트라도 3악장에서는 힘이 달리기 마련인데, 손열음은 템포가 느려지지 않았다"면서 "오케스트라 페이스에 내내 맞췄다. 연습을 많이 한 증거"라고 들었다.

손열음은 연주를 마친 뒤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선후배 사이로 '클래식계 단짝'으로 통하는 클라라 주미 강을 환한 웃음과 함께 힘껏 끌어안았다. 이후 주최 측으로부터 받은 꽃다발에서 꽃을 빼서 단원들에게 하나씩 나눠줬다.

[리뷰] '평창대관령음악제'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아시아의 LFO' 증명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2부에서 들려준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은 다채로운 악기의 조화로운 백화제방이었다.

현은 부드러우면서도 매끈하게 질주해나갔고 관악 기들은 그 사이에 세밀한 감정의 뿌리와 기분 좋게 그르렁거리는 황홀한 정서를 촘촘히 심어놓았다.

그간 한국은 비교적 관악기 분야가 취약한 편이었다. 그러나 이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에서 확인할 수 있듯, 해외 명문 오케스트라에 연이어 입단하는 관악 주자들이 늘어나면서 일취월장했다는 평을 듣는다.

류 평론가는 "현악기가 촘촘한 그물처럼 깔아주고, 그 위에서 금관이 포효했다. 목관의 푸르름도 좋았다"고 들었다.

이처럼 이날 공연은 젊은 오케스트라에부여될 수 있는 '정언명령(定言命令)'을 적확하게 보여줬다.

사실 내로라하는 오케스트라에 속한 동시에 훌륭한 솔리스트이기도 한, 개성 강한 연주자들이 짧은 시간에 다른 오케스트라를 구성해서 공연한다는 것에 대한 우려도 따랐다.

그러나 기본기가 탄탄한 이들이 고국에서 악보의 밑바닥까지 진정으로 파고들어 한마음으로 뿌리는 색감은 찬란했다.

류 평론가는 "최근 공연에서 현악 트레몰로를 이렇게 열심히 한 오케스트라를 보지 못했다. 대단한 팀워크"라고 평가했다.

[리뷰] '평창대관령음악제'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아시아의 LFO' 증명

손열음은 "이들이 고국에서 처음으로 함께 만들어 내는 하모니가 이번 음악제 중심축"이라면서 "한국을 제2 고향으로 삼은 코스모폴리탄 음악가들"이라고 소개했다.

"유럽에서 활동하면서 사람들의 힘을 느꼈다. 특출한 몇 명에게서 그 힘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꾸준하고 뚝심이 있는 다수에게 나오는 것을 느꼈다. 음악에서 이런 부분의 결정체가 오케스트라"라며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결성 이유를 밝혔다.

연주자들의 사운드를 유연하게 묶은, 덕장으로 통하는 러시아 출신 거장 지휘자 드미트리 키타옌코(78)의 공도 컸다. 그는 손열음을 아끼기로 유명하다. 류 평론가는 "간결하고 단호한 소리를 찾아낸 키타옌코도 역시 좋은 지휘자"라고 했다.

 이번 무대는 클래식계 새로운 흐름도 톺아볼 기회였다. 솔리스트로서 부각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 예전 클래식계 분위기였다면, 해외 명문 오케스트라 단원으로서 안정된 생활과 함께 자신의 음악적 이상향을 다른 방식으로 추구해나가는 것이 요즘 젊은 연주자들이 이뤄낸 음악계 흐름이다.

노승림 음악 칼럼니스트(문화정책학 박사)는 "20~30대가 주축이 돼 세대교체 신호탄을 쐈다"고 했다.

이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LFO)'를 떠올리게도 한다. 스위스의 루체른 페스티벌에서 3주간 다양한 음악회를 소화하는 프로젝트성 교향악단이다. 유럽 정상급 악단들의 악장과 각 악기 수석 연주자 등이 모여 '오케스트라의 드림팀'으로 통한다.

평창 대관령 음악제가 손열음을 감독으로 임명한 뒤 새로운 도약을 예고한 만큼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아시아의 LFO'가 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이번 음악제에서 한 차례 더 공연한다. 8월4일 폐막 공연으로 이날은 강원 출신 지휘자 정치용(61·한국예술종합학교 전 음악원장)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상임 지휘자가 지휘봉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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