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수확이 코앞인데···태풍 피해, 신음하는 보성 벼 농가들
쓰러지거나 물에 잠겨 뿌리부터 썩기 시작
수확 물 건너 갔다, 잇단 태풍에 전전긍긍
【보성=뉴시스】변재훈 기자 = 제18호 태풍 '미탁'(MITAG)이 한반도를 빠져나간 3일 전남 보성군 겸백면의 한 논에서 벼가 비바람에 쓰러져 물에 잠겨 있다. 한 농민이 피해를 입은 논을 둘러보고 있다. 2019.10.03. [email protected]
제18호 태풍 '미탁'이 휩쓸고 간 3일 전남 보성군 겸백면 용산리 이장 선점자(59)씨의 논. 3㏊의 논에 심어진 벼 대부분이 속절없이 누워 있다. 도랑 주변 논의 벼는 물에 잠겨 있다.
물에 젖어 축 늘어진 벼를 들어올리니 벌써부터 썩기 시작한 뿌리가 힘 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논 곳곳에는 물폭탄에 떨어진 나락에서 난 새파란 싹이 자라고 있었다.
다음주면 본격적인 수확철이지만 상당수의 알곡들은 벼에서 떨어져 나가 물 속에 떠 있다. 누운 벼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해도 출하해 제 값을 받기는 어려워 보였다.
30여년째 벼농사를 짓는 선씨는 "벼가 썩거나 싹이 나버려 손도 못 댈 지경이다. 올해 농사는 접을 수 밖에 없다"면서 "물에 젖은 알곡은 손으로 만져보면 금세 바스라져 떡을 지어도 맛이 없어서 제 값에 못 판다"며 울상을 지었다.
"물이 빠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벼를 모두 벤 뒤 내년 농사를 준비해야 한다. 출하조차 기대할 수 없는 복구작업은 농민으로서 힘 빠지는 일이다"며 "일손도 부족해 인건비를 들여 복구한다고 해도 보람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전날 하루 종일 내리는 장대비 속에서도 선씨는 흙탕물에 잠긴 벼를 하나라도 건져보려 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보성=뉴시스】변재훈 기자 = 제18호 태풍 '미탁'(MITAG)이 한반도를 빠져나간 3일 전남 보성군 겸백면의 한 논에서 벼가 비바람에 쓰러져 물에 잠겨 있다. 한 농민이 피해를 입은 논을 둘러보고 있다. 2019.10.03. [email protected]
또 다른 논 주인 김기환(59)씨도 망연자실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김씨가 경작하는 논 중 40%가량인 1.3㏊는 앞서 강타한 태풍 '링링' 때 이미 한 번 쓰러졌었다. 당시 군청 공무원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다시 세워 묶어놓은 벼들은 또 다시 모진 비바람을 맞았다.
나머지 논은 복구작업조차 마치지 못했다. 김씨는 "한 해에만 두 번 태풍 피해를 입은 벼가 온전할까 싶지만 현재로서는 세워놓은 벼라도 거둬들여 싼 값에 처분하는 게 최선"이라면서 긴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의 표정에서는 착잡한 마음이 묻어나왔다.
어렵게 출하를 한다해도 비바람 피해를 입은 벼는 시세(80㎏ 1포대 20만원)보다 20% 가량 저렴한 16만~17만원 밖에 받지 못한다.
선씨와 김씨 모두 이 곳에서 나고 자랐지만 이번 태풍은 유달리 큰 피해를 남겼다고 입을 모았다.
한편 지난 1일부터 보성에 내린 비의 양은 305㎜다. 이번 태풍으로 보성에서만 벼 침수·쓰러짐 피해는 670㏊로 잠정 집계됐다. 현장 조사·복구 작업이 본격화되면 피해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보성=뉴시스】변재훈 기자 = 제18호 태풍 '미탁'(MITAG)이 한반도를 빠져나간 3일 전남 보성군 겸백면의 한 논에서 벼가 비바람에 쓰러져 물에 잠겨 있다. 한 농민이 피해를 입은 논에서 물에 젖은 벼를 들어올려 보이고 있다. 2019.10.03.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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