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성추행 피해자, 20여명에 SOS했다는데…제왕적 권력에 외면·묵살
지난 4년간 20여명에게 고충 호소해
피해자 측 "무마하기 급급했다" 주장
인사권자에게 충성과 보위문화 영향
안희정·오거돈도 제왕적 권력의 폐해
[서울=뉴시스]추상철 기자 = 고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며 고소한 전 비서를 대리하는 김재련 변호사를 비롯한 한국여성의 전화, 한국성폭력상담소 관계자가 22일 오전 서울의 한 모처에서 열린 '박 시장에 의한 성폭력 사건 피해자 지원단체 2차 기자회견'에 참석해 있다. 왼쪽부터 고미경 한국여성의 전화 상임대표, 김재련 변호사, 송란희 한국여성의 전화 사무처장,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2020.07.22. [email protected]
서울시는 박 전 시장 재임 때 시청 내 성폭력 사건 처리 지침 매뉴얼을 만드는 등 여성과 인권을 강조했지만 정작 박 전 시장 관련 피해 호소에는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절대적 인사권을 가진 지자체장의 제왕적 권력이 A씨의 절박한 호소를 묵인하는 데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A씨를 돕고 있는 한국성폭력상담소과 한국여성의전화는 22일 오전 서울의 모처에서 두번째 기자회견을 열고 A씨는 비서실 20여명에게 성추행 사실을 알렸으나 무마하기에 급급했다고 주장했다.
이들 단체에 따르면 A씨는 지난 4년 동안 인사담당자를 포함한 20여명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고충을 호소했다. 비서로 근무하면서 호소한 사람은 17명, 다른 부서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3명에게 피해사실을 털어놨다는 것이다.
이들 중에는 피해자보다 직급이 높은 사람들이 있고 이 문제를 책임 있는 사람에게 전달해야 하는 인사담당자도 포함돼 있었다.
실제로 A씨는 박 전 시장이 보낸 속옷 사진과 그의 대화가 있는 텔레그램을 보여주면서 인사담당자에게 직접 설명했다.
하지만 인사담당자는 A씨에게 "30년 공무원 생활 편하게 해줄테니 제발 비서실로 와라", "(박 전 시장이) 뭘 몰라서 그런다", "예뻐서 그렇다, 인사이동은 박 시장에게 직접 허가를 받아라" 등의 발언을 했다고 김재련 변호사는 설명했다.
[서울=뉴시스] 박미소 기자 = 10일 오전 서울시청 시장실 앞에 고 박원순 시장의 사진이 서울시 지도에 반영되어 보이고 있다.2020.07.10. [email protected]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상임대표는 "피해자는 4년이 넘는 동안 성고충 전보 요청을 20명 가까이 되는 전·현직 비서관들에게 말해왔다"며 "(성추행)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아는 20여명의 동료가 사건을 은폐하고 왜곡·축소하는데 가담한 것"이라고 밝혔다.
A씨의 절박한 호소에도 비서실 근무자들이 침묵과 묵인, 방조로 일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는 절대적 인사권을 가진 지자체장의 제왕적 위치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지자체장은 절대적 인사권을 가진 제왕적 위치에 있다. 공무원들 입장에서는 인사권자에게 충성경쟁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인사권자의 성희롱·성추행 가해 상황을 목격해도 쓴소리를 할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이는 곧 지자체장의 성인지 감수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이 같은 우려는 비단 박 전 시장에게만 해당되는 사안은 아니었다. 정치무대를 떠난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사례를 살펴봐도 제왕적 권력의 폐해는 여실히 드러났다.
안 전 지사 성폭력 사건은 2018년 3월 JTBC를 통해 피해자인 현직 수행비서를 통해 알려졌다. 안 전 지사는 2017년 7월~2018년 2월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4회,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1회, 강제추행 5회를 저지른 혐의로 기소됐다.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항소심은 징역 3년6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9월 원심 확정 판결을 내렸다. 안 전 지사는 현재 복역 중이다.
[서울=뉴시스]추상철 기자 = 고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며 고소한 전 비서를 대리하는 김재련 변호사가 22일 오전 서울의 한 모처에서 열린 '박 시장에 의한 성폭력 사건 피해자 지원단체 2차 기자회견'에 참석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20.07.22. [email protected]
조직에 만연한 기관장 '보위 문화'도 빼놓을 수 없다. 비서실이 있는 서울시청 6층은 박 전 시장 최측근으로 구성돼 있다. 정무라인인 이들을 소위 '6층 사람들'로 부른다. 외부에서 영입된 박 전 시장 정무라인 인사들 대부분이 정치권과 시민단체 출신이다. 서로 간 동지적 유대감에 비판과 직언보다는 박 전 시장 보호에 더 신경 썼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임순영 젠더특보는 박 전 시장의 '불미스러운 일'에 대한 소식을 접한 뒤 이를 해결하기 보다는 직접 보고하고 대책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시장 개인의 보좌에 더 신경 쓴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다른 정무라인 인사들은 사태가 발생한 후 침묵으로 일관하며 진실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 상임대표는 "시장을 정점으로 한 업무체계는 침묵을 유지하게 만드는 위력적 구조였음이 드러났다"며 "이 구조가 바뀔 지 확신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시 관계자는 "사실상 인사권 등 모든 권력을 가지고 있는 시장에게 쓴소리를 하거나 직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 지 의문"이라며 "절대적 권력은 침묵을 만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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