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 사건' 경찰들 한숨…"잘못했지만 제도도 미비"
경찰, '부실 수사' 의혹에 국민적 공분 사
일선 경찰들 "잘못했지만 법적 제도 부실"
"아이와 부모 강제격리 조치할 권한 없어"
증거 확보도 문제…"가정에는 CCTV 없다"
"경찰 심증만으로 격리?…현실적 불가능"
전문가 "분리된 아이 양육할 시스템 없어"
[서울=뉴시스]김병문 기자 = 16개월 입양 아동 '정인이'를 학대한 혐의로 구속된 입양모가 지난해 11월19일 오전 서울 양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2020.11.19. [email protected]
이같은 분노를 반영하듯 지난 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아동학대 방조한 경찰 파면 요구' 청원글은 하루 만에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는데, 일선 경찰관들은 "경찰이 잘못한 것은 맞다"면서도 "현재 경찰에는 아동학대 사건을 적극 조치할 인력도, 법적 권한도 없다"고 호소했다.
7일 뉴시스와 만난 경찰 관계자들 모두가 최근 정인이 사건 논란에 대해 "안타깝다"며 "경찰이 잘못한 것은 맞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신고 접수 후 현장에 가장 먼저 출동해 초동 대응에 나서는 일선 경찰관들이다.
그러면서도 상당수 관계자는 "여성 성범죄와 아동학대 등 민감한 사건은 충분한 조사와 연결성 있는 후속 조치가 필수인데, 현재 경찰에게는 이를 지원할 인력도, 법적 권한도 없다"며 "학대 아동을 책임질 전문기관 시스템 역시 미흡하다"는 속내를 털어놨다.
서울 지역 한 파출소에서 만난 경찰 A씨는 "아동학대가 의심되는 상황에서는 경찰이 부모와 아이를 강제로 격리 조치할 수 있도록 권한을 보장해주는 제도가 필요한데, 한국에는 그런 제도가 없다"며 "만약 격리 조치를 한다고 해도 나중에 부모가 문제를 삼아 법정으로 가게 되면 '절차에 문제가 있다'면서 경찰이 무조건 지게 돼 있다"고 말했다.
서울 지역 다른 파출소에서 만난 경찰 B씨 역시 "경찰이 보장된 권한도 없이 의심만 품고 나서서 부모와 아이를 분리하고 양육권을 뺏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이번 사건은 우리가 실수를 한 건 맞지만, 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나서 비난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양평=뉴시스]김선웅 기자 = 지난 5일 경기 양평군 서종면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안치된 故 정인 양의 묘지에 추모객들이 놓은 선물과 추모 메시지가 적혀있다. 2021.01.05. [email protected]
가정에는 폐쇄회로(CC)TV가 없는 만큼 영상을 통한 증거 확보도 힘들고, 그렇다고 아동으로부터 "학대를 당했다"는 진술을 받을 수도 없는 상황이 대부분인 만큼 심증만으로 부모와 아이를 분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경찰 C씨는 "매뉴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동학대는 현장에 직접 들어가서 확인을 해야 하는데, 부모가 문을 안 열어주거나 들어가도 CCTV가 없어서 학대 사실을 규명하기가 힘들다"며 "아이의 상태를 확인할 때 제한되는 것이 많다. 매뉴얼이 있지만 보완돼야 할 부분들"라고 전했다.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오면 경찰뿐만 아니라 이를 함께 담당하는 지방자체단체 및 아동보호소 등 관계기관들도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경찰 D씨는 "현장에 출동하는 경찰이 초동 대응을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후 아동을 위한 복지 및 문제 해결 등은 경찰이 아닌 지자체, 아동보호센터 등이 담당하는 영역"이라며 "이번 (정인이) 사건은 경찰보다는 2차 영역의 문제가 더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D씨는 "경찰에게는 한 가정을 매일 찾아가서 감시할 여력도, 인원도, 권한도 없다"며 "경찰 비판은 둘째 치고, 아동복지를 담당하는 행정관청과 아동보호센터 등의 시스템을 더 세부적으로 손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뉴시스]배훈식 기자 = 양부모 학대로 사망한 '정인이 사건' 관련 경찰의 대처에 대한 비판이 이어진 지난 6일 오전 서울 양천경찰서에 깃발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양천경찰서는 정인이에 대한 아동학대 신고를 받고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021.01.06. [email protected]
오 교수는 "전담 공무원이 학대 아동을 맡기려고 해도 쉼터에서 '정원이 다 찼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며 "미국의 경우 아동학대로 부모의 양육권을 박탈해도 전문기관이 대신 돌볼 수 있는 대책들이 마련돼 있다. 한국도 양육이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정인이 사건은 아이가 사망하기 전 경찰에 3차례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들어왔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적 공분을 샀다.
이 사건을 담당한 서울 양천경찰서 관계자들은 지난해 5월25일, 6월29일, 9월23일 정인이를 입양한 부모에 대한 학대 의심 신고를 접수하고도 부실 처리한 의혹으로 '주의'나 '경고' 등 징계를 받았다. 또 양천경찰서장과 여성청소년과장은 전날 대기발령 조치됐다.
지난해 11월 진행된 경찰 수사 브리핑에서 양천경찰서 측은 "(첫 신고는) 멍에 대한 것이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여러 자료로 입증하기가 어려웠던 점이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세 번째 신고에 대해서는 아이의 몸 상태를 체크한 병원 원장이 학대를 의심해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대질조사를 진행했지만 별다른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남부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부장검사 이정우)는 입양모를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아동학대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입양부에 대해서는 아동복지법 위반(아동유기·방임) 등 혐의를 적용해 불구속기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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