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 군용기 충돌 '진실공방'…"일상적 정찰" vs "경계 침범"

美 "드론, 공역서 임무 중 충돌…국제법 위반"

러 "사건 지역은 러시아 특별군사작전구역"

'우크라전'악화...미·러 관계 경색 심화할 듯

[AP/뉴시스] 미국 정찰용 무인기(드론) MQ-9

[서울=뉴시스] 권성근 기자 = 러시아 전투기가 흑해 상공에서 미군 무인기(드론)와 충돌하는 초유의 일이 발생한 가운데 미국과 러시아는 드론 추락 원인을 놓고 상반된 주장을 펼쳤다. 두 나라가 진실공방을 벌이는 양상이다.

미국 측은 자국의 무인기가 국제공역(비행정보구역 등 공중영역)에서 일상적인 임무 수행을 했다고 주장한 반면 러시아 측은 무인기가 러시아 공역을 침범했다고 맞섰다.

패트릭 라이더 미 국방부 대변인은 14일(현지시간) 브리핑을 통해 "중부유럽표준시(CET) 기준 오전 7시3분께 러시아 수호이(Su)-27 1기가 미군 드론 MQ-9 프로펠러를 강타해 공해상으로 추락시켰다"고 밝혔다.

MQ-9 '리퍼'는 미국 군수업체 제너럴 아토믹스가 개발한 무인 공격기로 MQ-1 '프레데터' 모델 개량형이다. 장거리 비행을 통해 고도 정찰임무 수행이 가능하다. 

미 '국제공역서 일상적 정찰 임무' 주장

미국은 MQ-9가 국제 공역에서 일상적인 정찰 임무를 하다가 러 전투기와 부딪혔다며 러시아 책임론을 부각했다.

라이더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러시아 전투기가 미국 리퍼 드론과 30~40분 동안 나란히 비행하다가 충돌해 결국 드론이 추락했다고 밝혔다. 충돌 장면이 영상에 담겼으며 이를 공개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내가 갖고 있는 정보에 따르면 그것들(러시아 전투기)은 MQ-9 근처에서 약 30~40분을 비행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충돌로 인해 무인기는 더 이상 비행할 수 없게 됐고 무인기를 공해상으로 떨어트릴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라이더 대변인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을 포함해 미국 무인기는 흑해 국제 공역에서 첩보, 감시 및 정찰 임무를 계속 수행해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핵심은 러시아 조종사들의 이런 (위협적인) 행동은 드물지 않다는 것"이라며 러시아가 추락한 드론을 회수하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제임스 해커 미 유럽사령부 공군 사령관은 "MQ-9는 국제 공역에서 일상적인 작전을 수행하던 중 러시아 전투기와 충돌해 완전히 손실됐다"며 "러시아인들의 안전하지 않고 전문적이지 못한 행동으로 두 항공기 모두 추락할 뻔 했다"고 말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기자들에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번 사건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며 러시아가 미국 항공기나 드론 비행을 방해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지만 "이런 행위가 우리 드론의 추락으로 이어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고 밝혔다.

[워싱턴=AP/뉴시스] 패트릭 라이더 미 국방부 대변인이 14일(현지시간) 워싱턴 국방부 청사에서 브리핑하고 있다. 라이더 대변인은 "러시아 전투기와 미군의 무인항공기 충돌 장면 영상이 녹화됐으며 이를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흑해 상공에서 러시아 전투기가 미군의 드론 MQ-9 프로펠러와 충돌해 드론 조종사가 드론을 추락하도록 유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3.03.15.

커비 조정관은 "MQ-9는 국제 공역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으며 이는 누구에게도 위협이 되지 않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은 "러시아의 행위는 국제법 위반"이라며 "이에 대한 강한 반대를 전달하기 위해 러시아 고위급과 접촉했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는 이날 아나톨리 안토노프 주미 러시아 대사를 국무부로 초치해 항의했다.

러 "무인기 영공 경계 넘어" 반박

반면 러시아는 자국의 전투기는 미국 드론과 충돌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리아노보스티에 따르면 러시아 국방부는 미 드론이 오히려 영공 경계를 넘어 방공군 전투기가 출격했던 것이라면서 미 드론이 고도를 상실한 채 통제 불능 상태로 비행한 뒤 수면과 충돌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러시아 전투기는 공중 무기를 사용하지 않았고 드론과 부딪히지도 않았다"면서 "전투기는 안전하게 비행장으로 복귀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안토노프 러시아 대사는 "우리는 이번 사건을 (미국의) 도발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는 미국과의 대립을 원하지 않는다"면서도 러시아 전투기와 미국 드론이 충돌한 흑해 상공이 러시아의 특별 군사작전 구역이었다고 주장했다.

안토노프 대사는 "우리는 (구역에) 진입하지도, 침투하지도 말라고 경고했다"며 "러시아 무인기가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에 근접할 경우 미국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라고 되물었다.

러시아 국방부는 전투기들이 미국 드론을 향해 무기를 발사하지 않았고 충돌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워싱턴=AP/뉴시스] 아나톨리 안토노프 주미 러시아 대사가 14일(현지시간) 워싱턴 미 국무부에서 캐런 돈프리드 유럽·유라시아 담당 차관보를 만난 후 기자들과 얘기하고 있다. 국무부는 러시아 공군기가 흑해 상공에서 미군의 무인항공기 MQ-9 프로펠러와 충돌해 추락시킨 것과 관련해 안토노프 대사를 불러들여 항의했다. 2023.03.15.

러시아 국방부는 "우리의 전투기들은 무인기를 식별하기 위해 출격했다"며 "드론은 러시아 연방 국경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었다"고 밝혔다.
 

미러 관계 더 경색될 가능성

우크라이나 전쟁이 진영간 대리전 양상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이번 사건으로 미러 관계가 지금보다 더 악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조 바이든 행정부와 미 정치권은 러시아 전투기 2대가 안전하지 않고 비전문적인 행위로 미국 MQ-9를 손상시켰다며 러시아를 비난했다.

이건 사건이 러시아 조종사의 실수에 의한 것인지 불분명하지만, 미 유럽사령부는 러시아의 행동은 위험했다며 오판과 의도하지 않은 긴장 고조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 싱크탱크 신미국안보센터 베카 와서 연구원은 과거에도 미국과 러시아 항공기 간 근접 비행으로 인한 사고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무인기가 추락했다는 것이 다른 점이라고 말했다.

와서 연구원은 더힐과의 인터뷰에서 "사건 발생(공해) 지역은 우려할만한 부분이지만 그것(사고기)이 무인기였기 때문에 긴장감을 폭발적으로 증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지난 2019년 이란이 RQ-4 글로벌 호크 무인기를 격추한 사례를 예로 들며 당시 미국의 직접적인 군사 대응으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미 육군 예비역 중장 출신으로 현재 유럽정책분석센터(CEPA) 연구원인 스티븐 트위티는 이 사건은 충분히 해결될 수 있다며 미국이 긴장이 더 고조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트위티는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성급하게 두 나라를 분쟁에 빠뜨리는 것"이라며 "러시아인들이 우리를 자극하여 비이성적인 행위를 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 우리는 미국이나 나토(NATO)가 직접 전쟁에 개입하지 않도록 통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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