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문항 논란 여전한데…정답률·과목별 표준점수 공개 거부
평가원 "공개, 비교육적…선택 왜곡할 수 있어"
통합형 수능 도입 후 고교 진학교사들까지 분석
"정보 감춰…사교육 상담 받으라는 거냐" 지적
[서울=뉴시스] 배훈식 기자 = 강태훈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채점위원장이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수능 채점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23.12.07. [email protected]
교육당국은 부작용을 이유로 문항별 정답률과 과목별 표준점수 격차 등의 점수 공개를 올해도 거부했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수험생들을 '사교육 컨설팅'으로 내모는 실책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7일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은 2024학년도 수능 채점 결과를 발표했으나, 여전히 국어와 수학 영역의 선택과목별 표준점수 차를 공개하지 않았다. 문항별 정답률 역시 공개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평가원은 매년 수능 채점 결과를 엑셀 파일 형태로 가공해 영역별 등급 구분 표준점수와 도수분포표, 등급별 누적 수험생 수와 그 비율 등을 공개하고 있다.
이는 고교의 수험생 진학 지도를 지원하는 차원이다.
하지만 이 자료에는 문·이과 통합형 수능이 도입된 2022학년도 시험부터 국어와 수학의 선택과목별 표준점수 자료는 나와있지 않다. 현재는 공통과목을 모든 수험생이 풀고 선택과목 1개를 골라 치른다.
매년 채점 결과 발표 이후 공개 요구를 받았음에도 평가원은 부작용을 우려하며 답변하지 않았다.
오승걸 평가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학생들의 선택, 진로에 대한 여러 가지 잘못된 해석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공개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문영주 평가원 수능본부장도 "대입 전형에서 선택과목별 표준점수를 활용하지 않고 있어 추가적으로 제공해야 될 정보가 아니라고 판단한다"며 "현행 교육과정 취지는 잘하는 과목을 택해서 점수를 획득할 수 있게 하는데 이런 정보가 학생의 선택을 왜곡시킬 수 있는 교육적이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했다.
[서울=뉴시스] 2024년 수능 채점 결과 주요 영역별 최고 표준점수는 국어 150점, 수학 148점으로 집계됐다. 국어는 지난해 시험의 134점보다 무려 16점 상승했다. 절대평가 영어영역은 1등급은 2만843명으로 전체 4.71%였다. 이는 절대평가 도입(2018학년도) 이후 7년 동안 가장 낮은 비율이다. (그래픽=안지혜 기자) [email protected]
수능에서 어떤 과목을 선택함에 따라 같은 만점을 받아도 표준점수 격차로 원하는 대학에 못 갈 수 있는 상황에서 진학 지도를 위한 중요성은 결코 작지 않다.
통합형 수능 첫 해였던 지난 2021년 고교 진학교사들로 구성된 서울중등진학지도연구회가 학생들의 6월 모의평가 가채점 결과를 분석해 '미적분' 선택자의 원점수 평균이 높다는 예측 자료를 내놓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각 대형 입시학원은 수능 또는 모의평가 성적표가 나오는 날 수강생들의 등급과 표준점수 정보를 받아 정말 '미적분'이 '확률과 통계'보다 높은 점수대가 형성됐다는 통계를 내놓고 있다.
'잘하고 좋아하는 과목'을 택하게 하겠다는 교육과정 취지를 준수하겠다는 원칙도 퇴색됐다는 지적이다. 통합형 수능 도입 후인 2022학년도부터 '미적분' 선택자는 39.7%, 45.4%, 51.0%로 올해는 절반을 넘겼다.
한 대형학원 관계자는 당국 입장이 되풀이되는 것에 대해 "정부가 사설 교육기관 가서 상담 받으라는 메시지"라며 "교사들조차 자료를 취합해서 '미적분' 수학 1등급 비율이 90%라고 공개하고 나서지 않나"라고 말했다.
문 본부장은 이런 지적에 대해 "일정 부분 동의할 수 있는데 사교육 업체가 그거(정보)를 제공해서 과목 선택을 유도하는 것과 평가원이 제공해서 방향을 준다는 것은 굉장히 큰 차이"라고 거듭 해명했다.
그는 "저희는 공교육을 대변하고 있는 문항 출제기관"이라며 "여기서 표준점수 최고점이나 선택과목 표준점수 차이를 공개함으로써 학생들이 그 점수에 따라서 선택과목을 선택하게 했다는 것은 제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좀 비교육적"이라고 했다.
[세종=뉴시스]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수학 22번 문항. (사진=한국교육과정평가원 홈페이지 갈무리). 2023.12.07.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6월 모의평가가 끝난 뒤 '교육과정 밖 내용과 사교육 기관의 문제풀이 스킬을 익혀야 풀 수 있는' 문제, 소위 '킬러문항'을 배제하라고 지시하면서 '정답률' 역시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수험생 커뮤니티와 관련 업계 전반에서는 그간 킬러문항을 '초고난도 문항'으로 해석해 왔기 때문이다. 올해 수능이 끝난 당일부터 EBS와 메가스터디교육 등에서 공개하는 가채점 결과 1%대의 정답률을 나타낸 수학 22번이 '사실상 킬러문항 아니냐'는 등의 논란을 사기도 한 이유다.
오 원장은 '공개 요구가 나오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교육적인 측면을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게 지배적 의견"이라고 답했다.
오 원장은 "마치 '정답률'이 하나의 기준인 것처럼 학습 방향을 또 잘못 오인하도록 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는 게 많은 교육학자들의 견해"라며 "(수능) 문항이라는 것은 교육과정을 근거로 난도를 어렵게 출제할 수 있고 쉽게 출제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한 입시 전문가는 "수험생들 입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라며 "어려운 문제를 뺀다고 했는데 1교시부터 어려워지니까 '멘탈 붕괴'가 되거나 학원으로 빨리 나오게 한다든지 이런 것은 비교육적인 게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애초 킬러문항의 정의가 모호해 수험생들 혼란을 가중시키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겠냐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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