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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만 밥이지"…'새우 등 터지는 현장' 새벽 빅5 응급실 가보니

등록 2024.03.27 10:48:02수정 2024.03.27 10:4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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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日과 함께 병상 많은 나라…그런데 빅5는 부족"

"지역 병원들은 되레 병상 비어 있어…의료 초토화"

尹 "지방 거점 국립대 병원들 빅5 수준 되도록 지원"

[서울=뉴시스]오정우 수습 기자 =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병원 응급의료센터에 한 시민이 들어가고 있는 모습. 2024.03.22

[서울=뉴시스]오정우 수습 기자 =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병원 응급의료센터에 한 시민이 들어가고 있는 모습. 2024.03.22

[서울=뉴시스] 오정우 수습 기자 = 지난 22일 새벽, 40대 초반의 남성 김모씨가 서울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응급실)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푹 숙인 채 출입구 주위를 맴돌았다.

"오후 2시에 왔어요. 수술이 언제 끝난다 말씀도 따로 없어서 하루 종일 기다렸다가 이제 집에 가는 거예요."

김씨가 휴대전화를 켜니 '오전 12시28분'이 적혀 있었다. 이날 오전 0시 기준 체감 온도는 2.8도. 검은 코트를 입은 김씨는 전날(21일)부터 이 시간까지 약 8시간30분을 밖에서 꼼짝 없이 기다렸다.

응급실 안에 수술 현황이 뜨지 않았다고 한 김씨는 "저 말고도 수술 못 받거나 순서도 모르고 대기하는 분들도 있다고 하더라"며 "(의료진이) 언제 수술 끝난다, 이런 말씀도 따로 없었다"고 했다.

전공의 이탈 등의 여파로 김씨와 같이 야간·새벽 시간대 서울 주요 상급종합병원('빅5') 응급실 앞에서 장시간 기다리는 이들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응급의료포털에 따르면 지난 21일 오후 10시 기준 서울대병원에는 일반응급실병상 26개가 전부 채워졌고 7명이 추가로 대기하는 상황이었다.

이 같은 현상은 우리나라 특유의 상급종합병원 쏠림 현상에다 전공의 이탈로 일손까지 부족해진 탓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서울대병원은 전체 1603명 중 전공의가 740명(46.2%). 다른 빅5병원과 마찬가지로, 전공의 이탈로 '직격타'를 맞을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의료계 측은 이마저도 환자 수가 줄어든 상황이라고 했다. 서울아산병원 앞 편의점에서 5년 간 일해왔다는 직원은 "환자 수는 오히려 지금 더 적어진 것 같다"고 했다.

다만 환자들이 빅5 응급실로 몰려들고 병상도 부족해 현장은 '초비상'이었다.

맹장이 터졌다는 헝가리 출신 케이시(36)씨는 오전 7시30분에 와서 다음 날 오전 1시에 바깥 공기를 마실 수 있었다.

남편이 다쳐서 왔다는 50대 후반 박모씨도 장시간 대기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았다. 박씨는 "보호자 한 명만 들어갈 수 있고 대기 장소는 알아서 하라고 했다"며 "추운 날씨에 대기실이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진료로 인해 3~4시간 계속 기다려야 하는 건 알지만 전광판에라도 수술 순서가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으면 좋겠다"며 "무한정 5시간이고 6시간이고 무조건 기다리는 게 얼마나 답답하겠냐"고 했다.

박씨는 현재의 상황에 대해 "의사단체나 의사협회나 정부나 똑같다고 생각한다"며 "국민만 밥이지"라고 했다. 또 의사 수 감소로 간호사 무급휴가 등 비상체제에 돌입한 상황에 대해선 "왜 애매한 사람의 새우 등 터져야 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뉴시스]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병원 응급의료센터 앞에서 가족으로 보이는 시민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2024.03.22

[서울=뉴시스]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병원 응급의료센터 앞에서 가족으로 보이는 시민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2024.03.22 

이 같은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선 근본적으로 빅5로 몰리는 현 시스템을 손질해야 한다는 지적을 부인하는 이들은 없다.

이상이 제주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원래부터 대학 빅5 병원에는 병상이 부족했다. 거기에 전공의 파업 때문에 그 상황이 더 악화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재미있는 통계가 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병상이 일본과 함께 제일 많은 나라이다. 주요 국가 중 의사 숫자가 부족한 나라인데 병상 수는 일본과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톱"이라며 "그렇게 병상 수는 제일 많은데 왜 빅5 병원에는 병상이 부족할까. 빅5로 환자들이 다 몰려서 그런 것"이라고 했다.

이어 "지역 병원들은 병상의 대부분이 비어 있다. 비어 있거나 병상이 한 3분의2쯤 아니면 절반 차 있다"며 "지역 의료는 지금 초토화 돼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기자가 취재를 나간 22일에도 노원구에 사는데 인근 대학병원에 가지 않고 송파구에 있는 서울아산병원까지 왔다고 한 환자가 있었다.

이 교수는 "지금 이 불균형이 점점 더 심해지는 것"이라며 "이런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다. 지금 유럽에 있는 어떤 나라도 안 그렇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각 거점 국립대학교 병원들을 빅5 병원 수준만큼 되도록 끌어올려야 한다. 그러면 대전 환자가 충남대 병원에 가지 굳이 서울까지 귀찮게 안 갈 것"이라며 "지방 국립대 병원들에 과감하게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번 의대 정원 증원을 통해 이 같은 계획을 발표한 상태다.

지난 26일 윤석열 대통령은 늘어난 의대 정원 2000명을 거점 국립대를 비롯한 비수도권(지방)에 중점 배정했다며 이들 대학을 육성하기 위해 "수도권 빅5 수준의 진료, 교육, 연구역량을 갖추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앞서 20일 2025학년도 의과대학 정원 증원분 2000명을 경기·인천 대학들에 361명(18%), 나머지 1639명(82%)을 모두 지방에 배분했다. 서울 지역 의대는 정원을 한 명도 늘리지 않기로 했다.

특히 지방 거점 국립대인 충북대, 경상국립대, 경북대, 충남대, 부산대, 전남대, 전북대는 총 정원이 모두 200명으로 맞춰졌다. 인구가 적은 지역의 강원대는 총 정원이 49명에서 132명, 제주대는 40명에서 100명으로 각각 늘어난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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