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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미국에서 독재국가식 언론 탄압할 것"-NYT 발행인[2024美대선]

등록 2024.09.06 11:16:53수정 2024.09.06 11:5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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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즈버거 경쟁 WP에 장문의 기고문

독재국가 언론 탄압 방식 자세히 소개

"100년 내 트럼프만 언론 지속 공격"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A. G. 설즈버거 미 뉴욕타임스(NYT) 발행인이 5일(현지시각) 경쟁지인 워싱턴포스트(WP)에 기고한 장문의 글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이 독재국가에 만연한 언론 자유 탄압을 미국에서도 자행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음은 기고문 요약.

트럼프가 포퓰리즘을 앞세워 재집권하려 한다. 그는 언론의 부정적 보도로 인해 재선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사실 보도에 집중하면서 책임을 추궁하는 언론 때문에 자신이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면서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결의에 차 있다.

러시아, 중국 등과 달리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언론 공격

미국은 민주주의 국가다. 트럼프가 언론의 문을 닫고 기자들을 투옥할 수는 없다. 트럼프는 대신 독립 언론 기관들을 훼손하는 미묘한 방법들을 동원하고 있다. 세법, 방송 허가, 정부 계약 등을 통제하는 방식이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언론에는 정부 광고를 늘리고 세금을 면제하고 각종 보조금을 준다. 그런 뒤 취약해진 언론 기업을 자신과 가까운 기업인이 싼 값에 사게 해 정부 대변인 노릇을 하게 만든다.

수년 안에 소수의 독립 언론만이 남게 되면 갈수록 독재를 하는 트럼프를 막기가 힘들어질 것이다. 많은 심야 뉴스와 방송 제목이 트럼프 주장을 칭송하고 사실과 다른 내용들로 트럼프에게 아부하며 비판자들을 악마화해 불신을 조장할 것이다.

헝가리 정치국장은 “언론을 장악하면 여론을 장악하고 나라를 장악한다”고 말했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헝가리 언론을 해체한 이유다. 헝가리를 “비자유주의 국가”로 개편한 오르반 총리의 핵심 비결이다. 언론이 약해지자 오르반은 비밀을 감추고 현실을 왜곡하며 정적을 약화시키고 무제한의 권력을 행사하면서 헝가리와 국민들을 못살게 만들었다. 민주주의가 퇴색하는 모든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지난 1년 동안 NYT의 발행인인 나에게 미국에서 언론자유가 유지될 수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이 늘었다. 터무니없는 질문이 아니다.

재집권을 노리는 트럼프와 지지 세력들이 “국민의 적”이라고 오래도록 비난해온 언론에 대한 공격을 강화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트럼프의 고위 참모인 캐시 파텔은 “거짓과 부정한 보도로 익히 알려진 기존 매체들에 대한 감독을 강화할 것”이라고 노골적으로 위협했다. “형사적으로는 물론 여론 차원에서도 이들을 처벌할 것”이라고도 했다. 트럼프와 측근들이 이미 행동에 나선 증거들도 있다. 트럼프는 대통령 말년에 언론에 적대적 발언을 하면서 미국과 전세계 언론에 대한 반감을 부추겼다.

언론 장악 성공한 오르반 헝가리 총리 "영리한 지도자" 칭찬

트럼프가 재선해 언론 탄압 공언을 실천하면 트럼프가 “영리하고 강력하며 공감이 가는 지도자”라고 칭송한 오르반과 같은 독재자를 따라 행동할 것이다. JD 밴스 트럼프 러닝메이트도 최근 “오르반이 취한 멋진 조치들에서 미국이 배울 수 있다”고 했다.

공화당 정책 설계자인 헤리티지 재단의 케빈 로버츠 이사장은 오르반 총리의 헝가리가 “보수 통치의 모델을 넘어 순수한 모델”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벌어질 수 있는 일들에 대비하기 위해 나와 동료들이 헝가리와 인도, 브라질에서 벌어진 언론 탄압을 연구했다. 정치 환경과 서로 다른 나라들이지만 반 언론적 행태들에서 공통점이 나타난다.

이들 국가의 지도자들은 집권하는 과정에서 러시아,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등 엄격한 검열과 투옥, 언론인 살해와는 달리 섬세한 통제 방식을 구사했다. 나라의 통치 체계에 내재하는 법적 취약점을 최대한 활용하는 이들의 언론 탄압은 다음 다섯 가지 특징을 보인다.

-자유 언론에 대한 대중적 불신을 조장해 탄압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한다.

-세금 부과, 이민 통제, 사생활 보호 등의 법률적, 제도적 규제를 강화해 비판적 언론인과 언론 기관을 처벌한다.

-민간이 언론을 기소하게 만들어 비판언론의 재정을 약화시킨다.

-자신의 지지자들도 언론에 대한 공격 전술을 사용하도록 권장한다.

-권력을 동원해 비판적 언론인을 처벌하는 한편 충성하는 언론에 보상한다. 이를 통해 경제적으로 취약해진 언론을 집권당 지지자들이 장악하는 것을 돕는다.

이런 방법들에서 보듯 언론 탄압은 최대한 드러나지 않게 해야 효과가 크다.

언론 기관 경제 압박해 지지자가 인수하게 만드는 것이 전형

이런 우려 때문에 NYT가 정치적 중립에서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을 선도하는 독립 언론 기관의 책임자로서 나는 언론 자유에 대한 위협에 대해 공개적으로 발언할 필요를 느낀다. 경쟁사 신문이 내글을 실은 것은 우리가 언론 자유가 위기에 처했다는데 동의하기 때문이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자유롭고 강력하며 독립된 언론만큼 이 나라의 성공에 핵심적 역할을 한 것은 없다. 우리 건국 선조들은 이를 자치 정부의 ‘소중한 경험’이라고 불렀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전 국민적 합의가 깨지고 있다. 언론인의 자유로운 보도를 훼손하려는 새로운 모델이 만들어지고 있다.

지난해 수십 명의 인도 당국자들이 BBC의 뉴델리 및 뭄바이 사무실을 덮쳤다. 컴퓨터와 휴대폰을 압수해간 이들이 3일 동안 돌려주지 않고 조사했다. 이들은 스스로를 사법 기관 소속이 아닌 세금 징수원이라고 밝혔다. BBC가 모디 총리가 지방 유혈 탄압에 큰 역할을 했다는 내용의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때문이었다.

BBC 공격에서 인도 정부는 컴퓨터와 휴대폰의 비밀 정보들을 입수함으로써 언론에 대한 제보를 하지 말도록 경고한 것이다. 언론에 제보하면 우리가 곧 알게 된다고 말이다. 제보자 여러 명이 해고되고 배척되고, 학대당하고 체포됐다.

인도 정부는 이민 제도를 활용한 탄압도 하고 있다. 최근 언론인에 대한 비자 발급을 엄격히 통제하면서 인도인과 결혼한 외국 언론인을 추방했다.

건전한 언론 환경을 내세우는 제도들도 악용될 수 있다. 헝가리의 경우 오르반 정부가 유럽연합(EU)의 디지털 프라이버시 규제를 악용해 공공 기록 데이터베이스에 대한 접근 등 언론의 탐사보도를 막은 것이 대표적이다.

사법 기관도 언론탄압에 악용

미국인들은 사법 기관들이 정부의 언론 탄압을 막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사법 기관도 언론탄압에 악용된다.

인도의 경우 유명 경제 기자가 명예훼손 소송에 7년 동안 시달리는 일이 있었다. 모디 총리와 가까운 억만장자의 불법행위를 보도한 때문이었다. 언론사들을 상대로 한 소송도 자주 제기된다. 소송 때문에 언론사가 경제적 압박을 받는 것은 물론이다. 이 때문에 상당수 기자들이 사법적 보복을 우려해 유력 인사에 대한 보도를 회피한다. 유력 인사들은 소송에서 지더라도 기자에 대한 경제적, 심리적 압박만으로도 충분한 효과를 거둔다.

브라질에선 하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 일당의 사법기관 남용이 ”사법적 학대“로 일컬어진다. 소송은 언론에 비판적 판사를 골라 제기된다. 기자의 거주지로부터 먼 지역의 여러 법원에 소송을 동시에 제기해 압박하는 방법도 동원됐다.

이 같은 반 언론적 조치들은 지도자가 언론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 와중에 이뤄진다. 미국에서도 정치인의 언론 비판하는 글들이 지지자들 사이에 신념으로 굳어져 있다. 오늘날 언론에 대한 믿음이 역사상 가장 낮은 수준이다. 범람하는 흑색선전, 음모론, 선전과 소셜 미디어의 낚시 글 등이 원인이다. 언론기관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갈수록 줄어드는 신뢰할 만한 언론인들이 보도 때문에 공격과 위협을 당하는 일이 늘고 있다.

대중의 불신, 경제적으로 취약해진 언론 기관, 공격행위의 증가는 독립 언론을 훼손하는 표준 방정식이다.

트럼프의 "가짜 뉴스" 표현 전 세계 70여국 독재자가 따라 사용

트럼프는 8년 전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을 ”가짜 뉴스“라고 규정했다. 미국 대통령의 표현을 전 세계 70여 독재국가 지도자들이 따라서 쓰면서 독립 언론을 탄압하는데 활용했다. 역으로 트럼프와 지지자들은 해외의 언론 탄압 방법을 배우는데도 적극적이다.

언론 자유는 미국 민주주의가 퇴보하지 않도록 막는 핵심 방지 장치다. 미국 지도자들도 성가신 보도에 불만이 없지 않았다. 고령을 거론하는 기자들과 자유로운 회견을 회피하는 조 바이든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공화당과 민주당의 모든 정치인들과 판사들이 언론 자유를 옹호해왔다. 지난 1세기 동안 유일하게 언론 자유를 지속적으로 공격한 사람이 트럼프다.

트럼프는 재임 말기 법무부로 하여금 NYT와 WP, CNN 기자들의 통화 기록을 은밀히 확보했다. 트럼프가 감추고 싶어 하던 세금 납부기록, 대선 결과 전복 혐의 관련 내용들이다. 인도, 헝가리, 브라질과 달리 미국의 언론탄압은 드러나지 않는 일상적 방식으로 이뤄질 것이다. 적대적 여건 조성, 경제 압박을 통한 파산, 무기화된 당국자, 지도자를 모방하는 지지자들의 공격 등을 수년에 걸쳐 지속함으로써 언론기관을 약화시키는 방식이 될 것이다.

WP 사주의 회사 아마존의 우편국 이용 금지 위협

실제로 트럼프는 연방 재정과 세금 제도를 통해 공영방송인 PBS와 NPR 등 자신이 인정하지 않는 기관들을 제재하겠다고 밝혀왔다. 트럼프 시절 국토안보부는 기자들의 보도 내용을 근거로 외국 기자들의 비자 발급을 통제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었다. WP 기자에 대한 불만이 쌓이자 사주 제프 베조스의 다른 기업을 위협했다. 아마존의 미 우편국 이용을 막고 국방부문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한 것이다. CNN에도 법무부가 CNN 인수 합병 과정을 검토하도록 지시하겠다고 했다. 최근에는 NBC와 MSNBC의 방송 면허를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소송도 적극 활용한다. NYT, WP, CNN 등 독립 언론 사주를 여러 번 제소했다. 가장 최근에는 NYT 상대 소송에서 판사가 트럼프에게 40만 달러의 보상금을 담보로 제출하라고 명령했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소송이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다. 10년 전 NYT 기자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패소한 뒤 트럼프는 ”법률 비용으로 약간의 돈을 썼지만 상대는 훨씬 더 많은 돈을 썼다. 소송으로 그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들었기에 만족한다“고 썼다.

트럼프의 행동을 지지자들이 따라한다. 연방대법원의 보수적 판사 2명이 트럼프의 주장에 맞장구를 치며 언론을 상대로 한 명예훼손 소송 제기를 쉽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주 당국자와 판사들이 비판적 언론을 규제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지방 당국자들의 언론 적대 행위는 한층 도가 심하다.

언론 자유는 민주당을 위한 것도, 공화당을 위한 것도 아니며 미국을 위한 것임을 모두가 알아야 한다. 건국 선조들은 언론 자유가 정부의 권력 남용을 억제한다는 것을 알았다. 특정 정권의 권력 남용은 기류가 바뀌면 부메랑이 된다. 보우소나루는 결국 쫓겨났고 연방 검찰이 친 보우소나루 방송의 면허를 박탈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브라질 대법원은 수천 건의 소셜 미디어 글을 감시하고 보수 언론인 소유의 소셜 미디어 계정 수십 개를 충분한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금지했다. X를 전면 폐쇄한 대법원 판결도 그 중 하나다.

언론 자유 알 권리 보장 넘어 나라 안정 기여

언론 자유는 국민의 알 권리 보장 차원을 넘는 문제다. 기업활동을 강화하고 나라를 보다 안정되게 만든다. 불신과 소외를 넘어 상호 이해와 시민 참여를 강화한다. 부패와 무능을 폭로함으로써 위정자가 개인적 이익보다 국익을 앞세우도록 한다.

다행스럽게도 미국의 언론은 다른 나라 언론들만큼 취약하지 않다. 우리는 더 어려워진 언론 환경에 대비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기자들이 정보원을 보호하는 방법을 교육하고 소송에 대비하도록 하며 연방 요원이 통신회사에 은밀히 통화기록을 요구할 때 어떻게 대처하기 위한 예산도 늘리고 있다. 세금 탄압을 피하기 위해 모든 업무를 투명하게 하려고 노력하며 직원에 대한 위협이 있을 때는 최대한의 보호 노력을 한다. 정보원 보호 및 사소한 소송 제기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도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언론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려는 움직임에 맞서 자유언론이 왜 중요한지를 강조하고 있다.

나는 이번 선거 결과가 어떻게 되든 미국의 독특한 언론 자유가 지켜질 것으로 기대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두려움을 느끼거나 혜택을 받는 일 없이 대중에 진실을 알리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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