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 내 학교'서 수능 준비하는 푸른 수형복의 소년수들[현장]
충동 조절·인내심 기르기·교우 관계 형성
'범죄자 교육 안 된다' 지적에 "재사회화 과정"
교장 "질풍노도 시기에 교육자 따라 교화 가능"
[서울=뉴시스] 이영환 기자 = 수능을 한 달 여 앞둔 지난 11일 서울 구로구 서울남부교도소 내 만델라 소년학교에서 수능 준비반 소년수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2024.10.13.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오정우 기자 = 수능을 약 한 달 앞둔 전날(11일) 오후 1시께 만델라 소년학교 내 12평 남짓 강의실에서 푸른색 수형복을 입은 수형자 12명은 수능 국어 수업을 듣느라 여념이 없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 기출 문제집을 보며 연세대학교에 재학 중인 김수민(25)씨는 수형자들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눈이 상징하는 게 뭐라고 했지?"
"시련입니다."
또렷한 눈의 5~6명이 수업에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이었다. 한 교시에 50분씩, 주중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쉴 틈 없이 수업이 이어지고 점심시간도 지났으나 이들은 눕거나 졸지는 않았다.
김씨는 "올해 1월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화장실을 가고 싶다거나 수업 시간에 사탕을 먹고 싶다고 한 수형자들이었다"면서 "수능을 한 달 정도 앞둔 지금은 그런 기색이 없고 쉬는 시간에도 장난치는 대신 다같이 공부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교도소 내 학교'인 만델라 소년학교는 지난해 3월 서울 구로구 서울남부교도소에 둥지를 텄다. 국내 최초로 교정시설 내 교육과정이 만들어진 이곳에서는 여느 학교처럼 정규 수업·자율 학습이 진행되고 있다.
학교는 '인생의 가장 큰 영광은 결코 넘어지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일어서는 데 있다'는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명언을 교훈으로 삼고 수형자들의 ▲재사회화 ▲재범 방지 ▲교정·교화를 목표로 한다. 이곳에서 14세 이상 17세 이하의 소년수 35명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반·검정고시반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수능 교육도 교화 일부…'One of Them' 목표"
[서울=뉴시스] 이영환 기자 = 수능을 한 달 여 앞둔 지난 11일 서울 구로구 서울남부교도소 내 만델라 소년학교에서 수능 준비반 소년수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2024.10.13. [email protected]
"소등 시간인 오후 9시가 지나서도 몰래 공부할 정도로 수능 공부에 열심입니다."
한 교도소 관계자는 수능을 한 달 앞두고 수형수들이 '긴장된다'고 말할 정도로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소년수들이 이토록 수능에 '진심'인 이유는 무엇일까. 학교 관계자는 이들에게 '수능 성적' '대학 입시' 등도 중요하긴 하지만, 그보다는 교육을 통해 이들이 교정·재사회화를 받아들이고 과거를 뉘우치게 되는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박민용(37) 교도관은 '수능 교육과 교화·재사회화의 연결고리가 약할 수 있지 않냐'는 지적이 있다는 취재진에 "만델라 학교에서의 수능 교육은 'One of Them'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며 "앉는 것도 힘들었던 수형자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교육을 받으면서 충동을 조절하고, 다른 이들과 교류하게 되는 과정을 배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도관은 국·영·수 교육과 함께 생활 지도가 수반돼 이들이 사회의 일부로 성장한다고 봤다. 이를 통해 타인과 원만한 관계를 형성하는 등 재사회화할 수 있다고 평했다.
심리 치료도 지원…"질풍노도 수형자들 교화"
[서울=뉴시스] 이영환 기자 = 지난 11일 서울 구로구 서울남부교도소 내 만델라 소년학교에서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의 명언으로 만들어진 교훈이 보이고 있다. 2024.10.13. [email protected]
여기에 육명인(47) 심리상담가도 매주 금요일마다 수형자들을 면담해 교화의 길을 열어준다. 육 상담가는 내담자의 한 일화를 설명하며 '인지행동치료'를 통해 수형자들의 충동성을 줄이는 데 주안을 둔다고 설명했다.
육 상담가는 내담자가 "자기보다 모든 면에서 떨어지는 친구가 술을 마시자 우월한 부분을 자랑했었다"며 "평소에도 자존감이 낮은 데다가 술김에 충동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고 고백했다"고 말했다.
그는 "매주 내담하던 수형자가 '반성하고 있다'며 충동적이고 왜곡된 사고를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을지 물었다"고 했다. 이어 "수형자 중 90%가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ADHD)인 것으로 나타났다"며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깨닫게 하고 이를 차분히 고쳐나가는 게 만델라 학교 내 교육·교화의 효과"라고 부연했다.
국어를 가르친 김씨도 이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김씨는 "수능 교육을 받으며 참기 힘든 것을 인내하고, 때로는 원치 않은 결과에서 비롯하는 좌절감을 느낄 것이다"며 "충동적인 욕구를 제어하는 과정에서 종합적인 성장을 가능케 하는 곳이 만델라 학교"라고 봤다.
김인곤 만델라 소년학교 교장은 "질풍노도의 시기에 있어 교육자에 따라 이쪽으로도, 저쪽으로도 바뀔 수 있는 게 만델라 학교 내 수형자들"이라며 "교육자가 이끌어만 주면 재범 가능성이 낮게끔 교화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서울=뉴시스] 이영환 기자 = 지난 11일 서울 구로구 서울남부교도소 내 만델라 소년학교가 보이고 있다. 2024.10.13. [email protected]
한편, 수능(11월14일) 당일 만델라 소년 학교에도 고사장이 차려질 가운데,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원서 접수 관련 비용을 지급하고 교정협의회도 교재비 1000만원을 지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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