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한상언의 책과 사람들]‘거꾸로 읽는 세계사’로 떠난 추억여행

등록 2021.11.06 06:00:00수정 2021.11.06 08:20:43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서울=뉴시스]거꾸로 읽는 세계사(사진=한상언 제공)2021.11.0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거꾸로 읽는 세계사(사진=한상언 제공)2021.11.0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중학교 1학년 딸아이가 울면서 전화를 했다. 왜 우는지 물어도 훌쩍일 뿐 대답이 없었다. 별일은 없다는 걸 보니 학원 숙제를 안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제 엄마에게 학원을 빠지겠다는 이야기를 했다가 크게 한 소리 들은 모양이었다.

급하게 집에 돌아와 보니 내 예상이 맞았다. 나는 훌쩍이는 아이에게 오늘 하루 학원을 쉬어도 되고, 아빠가 선생님께 전화를 해주고 엄마에게도 혼나지 않게 잘 이야기하겠다는 말로 마음을 달래주었다. 그러면서 아빠 찬스는 한 달에 한 번밖에 안 된다는 다짐도 받았다.

아이는 어느새 생기가 돌았다. 나는 아이에게 아빠가 전화를 해줬으니 네 용돈으로 아빠에게 맛있는 것을 사라고 했다. 평소 같으면 귀찮아할 아이가 조금은 미안했는지 선선이 따라나섰다. 그렇게 평일 오후, 예상에 없던 사춘기 딸아이와 데이트를 하게 되었다.

선선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빙수가 먹고 싶다는 아이의 제안에 우리는 빙수집으로 향했다. 아이는 학원을 안 가도 된다고 하니 잔뜩 신이 난 모양이었다. 차를 타서는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들을 묶어 만든 플레이리스트를 자랑하며 가수 디오가 부른 노래를 내게도 들려주었다.

주문한 빙수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각자 핸드폰을 보며 수다를 떨었다. 아이는 이제 막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다며 오늘 올린 사진들을 보여주었고 분위기 있게 찍은 사진을 보며 마음껏 칭찬해 주었다.

빙수를 먹으며 핸드폰을 보는데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가 새로운 출판사에서 33년 만에 다시 출간하게 되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나는 마치 과거로 돌아간 듯 그 책을 처음 읽었던 때가 떠올랐다.

중학교 1학년에서 2학년으로 올라가던 때였다. 한 학년을 마무리 하는 시점에 담임 선생님께서는 학급 임원이던 나와 친구 녀석 한 명을 데리고 학교 근처 경양식집에서 돈가스를 사주셨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비밀이라는 다짐도 받았다. 아마도 그때가 레스토랑이라 간판이 붙은 곳에 가본 첫 번째 경험이었을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우리에게 일 년간 수고했다며 각자 관심 있어 할만한 내용의 책을 한 권씩 선물로 주셨다. 그때 내가 받은 책이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였다.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길에 선생님께 선물로 받은 책을 펴서 읽기 시작했다. 20세기의 여러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나를 책 속으로 밀어 넣는 것 같았다. 버스에 내릴 때쯤에는 줄어 있는 페이지가 아깝기만 했다. 하루 만에 책을 다 읽고 그 후에도 몇 번이나 같은 책을 반복해 읽었다.

그렇게 나는 유시민이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고 그의 이름을 보거나 들을 때마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떠올렸다. 유학을 갔다던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칼럼니스트로 활동했고 방송진행자로, 노무현 정부 시기에는 정치인으로 이름을 떨쳤다. 다들 알다시피 지금은 가장 많은 고정 독자를 거느린 잘 나가는 작가이기도 하다.

빙수를 맛있게 먹고 있는 아이에게 아빠가 꼭 네 나이 때 읽었던 책이 새롭게 다시 나온다며 반가운 듯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사무실 어딘가에 있을 책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짧은 데이트를 마치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 서가를 서성거리며 중학생 시절 읽었던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찾았다. 한쪽 구석에 꽂혀 있는 책을 꺼내 펴보았다. 선생님이 적어 준 메시지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했는데 책은 깨끗했다. 생각해 보니 선생님께서는 카드에 메시지를 적어주었던 것 같다. 그 카드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을 것이다. 선생님께서 어떤 말씀을 적어주셨을까?

유시민의 책은 새로운 얼굴로 돌아왔지만 사라져 버린 카드는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빙긋 웃었다.

▲한상언영화연구소대표·영화학 박사·영화사가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