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태풍·홍수 피해 8천억인데…재난 관리 투자 안 하는 지자체들
의무 적립해야 하는 재난관리기금 1조321억
지자체 13곳은 법적 기준에 미달하게 편성
'예산 부족' 핑계…추경 통해 뒤늦게 메우기도
[예천=뉴시스] 이무열 기자 = 지난해 7월17일 오후 경북 예천군 감천면 진평리 마을이 산사태로 초토화됐다. 2023.07.17. [email protected]
1일 뉴시스 취재를 종합하면, 행안부는 최근 전국 지자체 13곳에 공문을 보내 법정기금인 '재난관리기금'의 최저 적립액 기준을 준수하기 위한 추후 계획을 요청했다.
재난관리기금은 지자체가 재난안전 예방과 재난현장 복구를 위해 적립하는 법적의무기금을 말한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라 지자체들은 3년간 보통세 결산액 중 1%를 재난관리기금으로 반드시 적립해야 한다.
이 돈으로 지자체는 재난 대비에 필요한 물자와 장비 등을 구입하고 수해 등 재난이 발생했을 때 응급복구나 응급조치를 위한 투자에 나설 수 있다.
재난은 언제 발생할지 예측하기 어렵고 지자체가 재난 관리의 1차적 책임을 진다는 점에서 재난관리기금의 충분한 확보는 재난 대응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올해 전국 지자체들이 의무적으로 적립해야 하는 재난관리기금 규모는 총 1조321억원으로 행안부는 추산한다.
그러나 243개 지자체 중 13개 지자체가 법적 기준보다 부족한 수준으로 재난관리기금에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광역지자체 중에서는 광주광역시, 강원특별자치도, 울산광역시 등 3곳이, 시·군·구 중에서는 경기 고양시, 경기 안양시, 경기 안산시, 강원 홍천군, 강원 철원군, 강원 양양군, 부산 연제구, 인천 중구 등 10곳이 기준에 미달했다.
경기 광명시는 2024년도 본예산에서 재난관리기금을 최저 적립액보다 부족하게 편성했지만, 이후 추가경정예산안(추경) 편성을 통해 채운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재난관리기금에 ‘한 푼’도 투자하지 않거나 수년째 기준에 못 미치게 투자하는 지자체들도 있다.
나라살림연구소 손종필 수석연구위원이 지난 3월 작성한 '2024년 지방자치단체 재난관리기금 적립 현황 분석'에 따르면 강원특별자치도는 158억원을 적립해야 하지만 올해 '한 푼'도 적립하지 않았고, 광주광역시는 '2년 연속' 기준에 미달한 수준으로 재난관리기금을 편성했다.
재난관리기금에 투자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지자체들은 '예산 부족'을 핑계 삼는다. 한정된 재원 안에서 다른 급한 사업에 우선 지출하다 보니 재난관리기금에 대한 투자는 후순위로 밀리는 것이다.
특히나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의 경우 세수 부족으로 재정이 악화돼 재난관리기금에 대한 투자를 여의치 않아 한다고 한다.
적립식으로 운영되는 재난관리기금 특성상 ‘올해 적립하지 않더라도 전에 쌓아둔 돈으로 지출할 수 있다’는 인식 때문에 지자체들의 투자가 소홀해지는 점도 있다.
이에 상당수 지자체들은 한 해의 나라살림 계획(본예산)을 세울 때 재난관리기금을 법적 기준만큼 편성해놓지 않고, 추경을 통해 뒤늦게 투자에 나서고 있다.
실제로 행안부가 공문을 보낸 지자체 13곳도 모두 추경 편성을 통해 미달 적립액을 채우겠다고 회신한 것으로 전해졌다.
행안부는 지자체들이 연말 안에만 최저 적립액 기준을 충족하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재난관리기금의 잔액에 여유가 있고, 세수 부족으로 인한 지자체들의 재정 상황도 고려해줘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행안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전국 지자체들이 보유한 재난관리기금의 잔액은 총 3조6696억원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실제 적립액보다는 현재 가용한 돈이 얼마인가가 중요하기 때문에, 지자체들의 부족 편성이 그리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며 “12월까지는 최저 적립액을 준수하도록 독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재난 예방과 대응을 위한 지자체들의 의무적 투자를 유도하는 재난안전관리기금의 취지를 고려했을 때 본예산에 우선 반영하는 것이 맞다고 지적한다.
손종필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추경을 통해 적립할 경우 재원의 변동이 있을 수 있다"며 "지난해 같은 경우 보통교부세가 워낙 많이 줄어서 광주광역시는 추경 편성을 통해 적립하겠다는 계획만 밝히고, 이행하지 못한 사례도 있었다"고 말했다.
지자체들이 재난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하는 동안 기후변화에 따른 재난 피해 우려는 점점 커지고 있다.
행안부에 따르면 지난해 홍수로 발생한 재산 피해는 7513억원, 태풍 '카눈'으로 인한 재산 피해는 558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에만 여름철 수해로 총 8071억원의 피해가 발생한 것이다. 인명 피해는 재난지원금 지급 기준으로 48명 발생했다.
행안부 관계자는 "추경을 하겠다는 지자체들이 대다수라 지켜보면 변동이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