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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폭력에 맞서는 천재의 자세, 연극 '갈릴레이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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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4-10 06:02:00  |  수정 2019-04-10 07: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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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갈릴레이의 생애' ©국립극단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17세기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겸 수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 이토록 인간적이었던가.

이성열 예술감독의 연출로 28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하는 국립극단의 신작 '갈릴레이의 생애'는 과학자로서 갈릴레이의 얼굴보다 그 안의 고뇌와 의지를 톺아본다.

이성을 광적으로 믿지만, 포도주를 비롯한 미식을 좋아하는 갈릴레이는 몸의 감각도 중요하게 여긴다. 고문 기구를 본 것 만으로 종교재판에서 지동설을 철회한 이유다.

이런 갈릴레이를 용기가 없다고 힐난하기에는 이르다. 몰래 연구를 계속해 과학적 과업을 완성한 갈릴레이의 삶은 '지식인의 용기'가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순간의 객기로 화염에 내던져 육신과 함께 지식까지 불 태워지는 것을 그는 경계한다. 자신을 믿고 따르는 이들의 기대를 배반했다는 이유로 치욕을 감당하고 감시까지 묵묵히 감당한 뒤 눈까지 버려가며 몰래 연구한 갈릴레이는 누구보다 용맹하다. 폭력에 희생되는 것이 아닌, 폭력을 피해 오래 살아남는 방법을 안다. '장애물을 피하는데 곡선이 지름길'일 수 있음을 아는 지식인의 현명함이다.

국내에서 드물게 공연한 독일 시인 겸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의 대표작을 무대로 옮겼다. 러닝타임이 인터미션 15분을 포함해 170분에 달하지만 지루하지 않다.

초반에 배우들이 극을 소개하면서 최근 영화를 통해 조명된 영국 밴드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 속 "갈릴레오. 갈릴레오. 갈릴레. 피가로"를 합창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연극은 유려한 리듬감이 돋보인다.

극을 이어 주는 브리지 장면에서 앙상블의 노래를 비롯한 코러스를 적재적소에 활용한 연출 등이 부드럽다. 국립극단과 꾸준히 작업을 해온 음악감독 겸 작곡가 장영규 그리고 김선이 맡은 음악은 밀물과 썰물처럼 극을 꾸준히 환기시킨다.

천체를 떠올리는 동시에 갈릴레이가 목성 주변에서 발견한 위성 4개 그리고 삶의 순환이 겹쳐지게 하는 둥그런 이태섭의 무대는 고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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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갈릴레이의 생애' ©국립극단
이 감독을 필두로 이 무대 디자이너 조명 김창기, 의상 이수원 등은 지난해 호평을 받은 국립극단 '오슬로'의 창작진인데, 이번에도 호평을 이어갈 만하다.

갈릴레오를 맡은 배우 김명수의 열연도 빼놓을 수 없다. 대부분의 장면에서 무대 위에 있는 그는 정확한 발성, 설득력 있는 감정 연기로 갈릴레이를 무대 위에 다시 살려낸다. 종교재판관 등 멀티 배역을 소화한 노장 이호재를 비롯, 거리악사 부부 이원희와 황미영 등 1인 다역을 배우 12명 역시 호연한다.

저항과 변혁의 예술가로 통한 브레히트의 작품답게 계급 모순을 비판한 부분도 곳곳에서 눈에 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무엇보다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사람들이 봐야한다. 극중에서 겨울이 가고 봄이 온다는 말이 몇 번 언급되는데, 그 따스한 정서가 막판에 스멀스멀 봄의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기 때문이다.

스승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철회하자 "영웅을 갖지 못한 불행한 이 나라여!"라고 한탄한 제자 안드레아는 마지막에 하늘의 별처럼 그를 우러러본다.

 모차르트의 '반짝반짝 작은별' 변주곡이 청량하게 연주된다. 영롱하게 빛을 내뿜은 별에 포위된 밤하늘은 결국 제 빛을 낸 영웅의 과업을 이어나가려는 제자의 앞길을 비춘다.

하지만 극은 함부로 자만하지 않는다. '우린 아직 멀었단다. 사실 이제 겨우 출발점에 서 있는 것'이라는 명제를 깔고 있다. 울퉁불퉁한 고된 역사의 길을 돌아도, 따스한 봄날은 저 멀리서 꾸역꾸역 온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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