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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 밭' 외국인 인부들 "또 불난 비닐하우스 숙소 내몰려"

등록 2020.09.21 07: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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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4월 불난 비닐하우스 안에 또 샌드위치 패널 숙소 지어

'불법건축물 기숙사 사용 금지' 법 규정 없어, 농장주들 악용

지자체 불법건축물 단속해도 과태료 내고 버티면 그만

[나주=뉴시스]이창우 기자 = 지난 4월8일 오전에 발생한 화재로 외국인 인부들이 숙소로 사용해 온 전남 나주시 노안면 미나리 농장의 불법 비닐하우스 건축물이 불에 타 뼈대만 남아있다. (사진=나주소방서 제공) 2020.09.21.  photo@newsis.com

[나주=뉴시스]이창우 기자 = 지난 4월8일 오전에 발생한 화재로 외국인 인부들이 숙소로 사용해 온 전남 나주시 노안면 미나리 농장의 불법 비닐하우스 건축물이 불에 타 뼈대만 남아있다. (사진=나주소방서 제공) 2020.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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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뉴시스] 이창우 기자 = 시골 미나리 농장에서 머물며 일하는 외국인 인부들이 올 봄 불난 비닐하우스 숙소로 또 내몰려 화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지만 단속의 손길은 미치지 않고 있다.

정부가 농촌지역 인력난 해소를 위해 이역만리에서 외국인 계절근로자들을 데려 오지만 현행법상 엉성한 기숙사 운영 규정과 허술한 제도 때문에 이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21일 전남 나주시 노안면의 들녘 한 복판에 자리한 미나리 농장. 이 일대 농경지 430㏊는 연간 100억원 대의 매출을 올리는 돌미나리 특용작물 재배단지로 유명하다.

지금 같은 9월이면 벼 수확을 일찍 마치고 겨울 미나리 정식 작업으로 눈 코 뜰 새  없는 바쁜 일과가 시작된다.

[나주=뉴시스]이창우 기자 = 외국인 계절 근로자들이 나주 노안면의 한 농장에서 미나리를 옮겨 심는 정식 작업을 하고 있다. 2020.09.21.  lcw@newsis.com

[나주=뉴시스]이창우 기자 = 외국인 계절 근로자들이 나주 노안면의 한 농장에서 미나리를 옮겨 심는 정식 작업을 하고 있다. 2020.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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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까지 빠지는 야외 수렁논에서 종일 일해야 하는 척박한 작업 환경 때문에 내국인 농작업 인부들은 이곳에서 일하기를 꺼려한다.

결국 여느 농촌처럼 일손이 항상 부족하기 때문에 빈 틈을 외국인 인부들이 메꾸고 있고, 사실상 힘든 미나리 농사를 도맡아 하고 있다.

주로 베트남과 캄보디아 등 동남아 국적의 인부들은 짧게는 3개월, 길게는 5개월짜리 단기 취업비자로 입국해 현지에서 머물며 일한다.

숙식은 이른 아침부터 곧바로 미나리 밭으로 가서 작업을 해야 하는 까닭에 농장주들이 제공하는 숙소에서 해결한다.

[나주=뉴시스]이창우 기자 =농지에 비닐하우스를 위장한 불법 건축물이 외국인 인부들의 숙소로 사용되고 있다. 해당 조립식 건축물은 지난 4월8일 발생한 화재로 전소돼 다시 지은 건축물로 확인됐다. 이곳 농경지는 개발제한구역이라 콘크리트로 바닥을 포장하거나 건축물을 지을 수 없다. 2020.09.21. lcw@newsis.com

[나주=뉴시스]이창우 기자 =농지에 비닐하우스를 위장한 불법 건축물이 외국인 인부들의 숙소로 사용되고 있다. 해당 조립식 건축물은 지난 4월8일 발생한 화재로 전소돼 다시 지은 건축물로 확인됐다. 이곳 농경지는 개발제한구역이라 콘크리트로 바닥을 포장하거나 건축물을 지을 수 없다. 2020.09.21. [email protected]

그러나 이들 인부들이 생활하는 숙소 대부분이 불법건축물이라 보험가입도 안될 뿐 아니라 화재에 취약한 스티로폼 패널로 지어져 불이 날 경우 인명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 지난 4월8일 오전 9시께 들녘 한 복판의 미나리농장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지내던 외국인 인부들이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음식을 조리하던 중 불이 나자 소방차가 출동했지만 순식간에 숙소가 모두 불에 타는 피해가 발생했다.

[나주=뉴시스]이창우 기자 = 지난 4월8일 오전. 전남 나주시 노안면의 한 미나리 농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인부들이 불법 비닐하우스 숙소에 불이 나자 인근 논으로 대피해 있다. (사진=나주소방서 제공) 2020.09.21.  photo@newsis.com

[나주=뉴시스]이창우 기자 = 지난 4월8일 오전. 전남 나주시 노안면의 한 미나리 농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인부들이 불법 비닐하우스 숙소에 불이 나자 인근 논으로 대피해 있다. (사진=나주소방서 제공) 2020.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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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나자 비닐하우스 내 숙소에서 지내던 외국인 인부 5명은 인근 농경지로 제 빨리 탈출해 다행히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불에 탄 하우스 안에 또 조립식 패널로 숙소를 새로 짓고 외국인 인부들을 지내게 하고 있어 안전 불감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만일 화재로 외국인 인부들이 사망했다면 국가 간 외교적인 문제로도 비화될 수도 있었다.

[나주=뉴시스]이창우 기자 =농지에 비닐하우스를 위장한 불법 건축물이 외국인 인부들의 숙소로 사용되고 있다. 해당 조립식 건축물은 지난 4월8일 발생한 화재로 전소돼 다시 지은 건축물로 확인됐다. 이곳 농경지는 개발제한구역이라 콘크리트로 바닥을 포장하거나 건축물을 지을 수 없다. 2020.09.21. lcw@newsis.com

[나주=뉴시스]이창우 기자 =농지에 비닐하우스를 위장한 불법 건축물이 외국인 인부들의 숙소로 사용되고 있다. 해당 조립식 건축물은 지난 4월8일 발생한 화재로 전소돼 다시 지은 건축물로 확인됐다. 이곳 농경지는 개발제한구역이라 콘크리트로 바닥을 포장하거나 건축물을 지을 수 없다. 2020.09.21. [email protected]

문제는 이러한 불법 숙소 건축물을 갖춘 농장이 한두 곳이 아니라는 데 있다. 겉으로 보면 농사짓는 비닐하우스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가서 확인하면 비닐하우스 안에 은밀하게 감춰진 조립식 건물에서 지내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지자체가 하는 단속에 걸려도 불법건축물에 대한 과태료를 1년 단위로 내면 철거하지 않고 계속 사용할 수 있다.

나주시가 최근 미나리 농장 한 곳의 불법건축물을 적발했지만 단속의 실효성은 크게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농장주들이 과태료 부과 제도의 맹점을 악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농장주들이 고용노동부와 지자체를 통해 외국인 계절근로자를 신청할 때 기숙사를 제공하는 조건을 내세워도 기숙사 시설이 불법건축물인지에 대한 여부를  확인하지 않는 것도 불법을 양성화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유일하게 확인하는 부분은 기숙사의 형태가 주택 또는 컨테이너인지만 구분해서 제출·등록하도록 하고 있을 뿐이다.

실제 근로기준법 시행령에는 사용자(농장주)는 '소음이나 진동이 심한 장소, 산사태나 눈사태 등 자연재해의 우려가 현저한 장소, 습기가 많거나 침수의 위험이 있는 장소, 오물이나 폐기물로 인한 오염의 우려가 현저한 장소 등 근로자의 안전과 쾌적한 거주가 어려운 환경의 장소에 기숙사를 설치해서는 안 된다'라고 만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미나리 농장의 외국인 인부들이 머무는 숙소와 같은 건축법상 불법건축물에 해당하는 시설에 대한 사용을 금지하는 조항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광주지방 고용노동청 관계자는 "에어컨 등 냉·난방 시설을 갖췄는지 사업주가 제공하는 기숙사의 형태가 주택이냐 컨테이너냐 등을 구분해서 등록하도록 하고 있을 뿐 불법건축물 유무까지는 고용노동청이 확인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사업주가 기숙사 형태를 허위로 작성해 제출 후 발생하는 문제는 사업주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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