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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 고향 못 가는 호국영령들…"국립묘지 간 이장 허용해야"

등록 2023.10.02 07:30:00수정 2023.10.02 15:4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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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정·위패로 봉안 중인 안장자만 국립묘지 간 이장 허용

시신·유골의 국립묘지 간 이장 금지한 국립묘지법이 원인

고향에 국립묘지 조성돼도 이장 못해…유족들 불합리 지적

[임실=뉴시스] 현충일인 6일 전북 임실군 임실국립호국원을 찾은 시민들이 묘비를 닦아내고 있다. 2023.06.06. pmkeul@nwsis.com

[임실=뉴시스] 현충일인 6일 전북 임실군 임실국립호국원을 찾은 시민들이 묘비를 닦아내고 있다. 2023.06.06. [email protected]


[무안=뉴시스] 이창우 기자 =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도 죽어서 고향 땅에 묻히지 못하는 호국영령들.

한 번 안장하면 평생 안장지를 바꿀 수 없고, 현재 안장된 국립묘지에서 문중 선산 등으로 이장한 후에는 고향과 가까운 국립묘지에 다시 안장할 수도 없다. 국립묘지법에 규정된 '국립묘지 간 이장 금지' 조항 때문이다.

국가에서 국립묘지로 조성한 장묘시설은 국립현충원과 국립호국원이 있다.

현충원은 국립서울현충원과 국립대전현충원 등 2곳이 있다. 전국에 걸쳐 들어선 국립호국원은 경기 이천, 경북 영천, 전북 임실, 경남 산청, 충북 괴산, 제주 등 6곳에 조성돼 있다.

국가보훈부는 오는 2028년 강원, 2029년 전남에 국립호국원을 추가로 개원할 예정이다.

문제는 거점 지역별로 국립묘지 조성이 연차적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안장자의 국립묘지 간 이장 금지로 유가족들이 묘소를 찾는 과정에서 겪는 불편이 크다는 데 있다.

여기에 무엇보다도 생전에 고향 산천에 묻히고 싶어 했던 유공자의 마지막 소원마저 들어주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 유가족들이 겪는 좌절감은 날로 커지고 있다. 

2일 뉴시스 취재를 종합하면 추석 연휴를 전후로 국가유공자 유가족 상당수는 멀리 타지역 국립묘지에 안장된 가족의 성묘를 위해 장거리 이동을 해야 하는 불편을 겪어야 했다.

유가족 중 일부는 고향과 가까운 곳에 조성된 국립묘지를 두고도 이장을 할 수 없어서 매년 명절 때면 장거리 이동 때문에 반나절에서 하루 이상을 타지역에 머물러야 하는 불편의 연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안=뉴시스] 전남 장흥군 유치면에 오는 2029년 개원 예정인 '전남권 국립호국원' 조감도. (이미지=전남도 제공) 2023.09.1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무안=뉴시스] 전남 장흥군 유치면에 오는 2029년 개원 예정인 '전남권 국립호국원' 조감도. (이미지=전남도 제공) 2023.09.11.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한국전쟁 참전용사인 부친을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안장한 전남 영암 거주 유가족 A씨는 최근 전남 장흥군 유치면에 국립전남호국원이 2029년 개원한다는 뉴스를 접하고 지자체에 문의했지만 현행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지 않고서는 이장을 할 수 없다는 답변을 들고 크게 낙심해야 했다.

A씨는 미물인 여우도 죽을 때 머리를 고향으로 향한다는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는 사자성어를 인용하면서 국립묘지법 개정이 하루빨리 이뤄져 부친을 고향에 조성되는 호국원에 모실 수 있기를 기원했다.

이와는 반대로 국가보훈부는 지난해 10월12일 국립묘지에 '영정 또는 위패'로 봉안 중인 안장자에 한해서는 국립묘지 간 이장을 허용하는 '국립묘지 영정·위패봉안자의 이장 업무 지침'을 개정하고 시행에 들어갔다.

이는 유골을 찾지 못한 유공자에 대한 배려지만, 유해가 국립묘지에 안장된 유공자는 국립묘지 간 이장을 허용하지 않는 것과 배치된다는 점에서 유공자 모두에게 동일한 법령과 지침이 적용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국립묘지법을 손보기 위해 국회에서 법안 개정이 진행되고 있지만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지난해 11월2일 더불어민주당 박성준 의원(서울 중구성도구을)은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대표 발의를 통해 '국립묘지에서 다른 국립묘지로의 이장 허용'을 골자로 법 개정을 추진했다.

현재 개정안은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소위를 통과한 가운데 상임위 전체 회의에 상정된 채 계류 중이다. 법안 개정이 이뤄지려면 상임위와 본회의 통과 절차를 남겨두고 있다.

그러나 여야 대치 국면이 지속되면서 국회 상임위 정무위가 열리지 않아 법안 통과는 요원한 상황이다.

국립전남호국원 조성 사업 업무를 담당한 전남도 곽영호 사회복지과장은 국립묘지 간 이장이 가능하도록 법령이 하루빨리 개정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전남지역에 국립묘지가 없어서 전북에 위치한 임실호국원에 안장된 전남지역 국가유공자만 1만1551명으로 전체 안장자의 36%를 차지하고 있어서다.

곽 과장은 "죽어서라도 고향에 묻히고 싶어 하는 마음이 우리 모두의 인지상정"이라며 "전남에 호국원이 조성되면 타지에 외롭게 잠들어 있는 국가유공자들이 나고 자란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유공자를 가까운 고향에 모시는 것이 국가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에게 후손들이 해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예우라는 이유에서다.

곽영호 과장은 "6년 후 추석 명절에는 고향을 찾는 보훈 가족들이 성묘를 위해 멀리 타지역 국립묘지로 가지 않고 가까운 고향에서 공원에 소풍 가듯 국가유공자를 찾는 날이 오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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