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댓차이나-알리바바 제국②] 중국몽(中國夢) 롤 모델 마윈…기부도 통 크게
【홍콩=AP/뉴시스】수백억대 자산을 가진 알리바바 마윈(馬雲) 회장이 자신은 못생긴 것이 아니라 특별하게 생긴 것이라면서 주장하는 등 개인과 자신의 회사 및 중국 경제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 주목받고 있다. 1일 중국 관차저왕(觀察者網)은 마윈 회장이 최근 야후의 창업주인 제리 양과 대화에서 "다른 사람들은 모두 내가 못 생겼다고 말하는데 나는 자신이 비교적 독특하게 생겼다고 느낀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지난 2월2일 홍콩에서 연설 중인 마윈의 모습. 2015.10.01
【서울=뉴시스】 이진영 기자 = 중국 최고의 부자이자 젊은이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한몸에 받는 알리바바 마윈 회장. 그의 성공담은 시진핑 국가주석의 국정 구호인 '중국몽'(中國夢)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차이니스 드림(Chinese Dream)을 이룬 그의 얘기는 글로벌 청년들에게 용기를 준다.
마 회장은 1964년 저장성 항저우에 태어났다. 부모는 경극 배우다. 시쳇말로 '빽' 없는 평범한 가정 출신이다. 외모도 별로(?)다. 비쩍 마른 데다 못생긴 편에 속한다. 그런 외모 탓에 취업의 문턱에서 번번이 떨어진 일화는 유명하다.
공부도 못했다. 수학에 특히 소질이 없었다. 대학입학 시험에서는 수학에서 1점을 받고 떨어졌다. 세 번 낙방 후 항저우사범대 영어교육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했다. 또 12살부터 9년 동안 항저우호텔(현재 샹그릴라 호텔)에서 공짜로 일하며 영어회화 실력을 다졌다. 영어 실력은 그의 자신감의 바탕이 됐다.
그는 긍정적이다. 경극협회 책임자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뛰어난 달변가인 그는 친화력으로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 이런 인맥은 창업하는 데 발판이 됐다.
아내이자 알리바바 창업 멤버인 장잉은 '캠퍼스 커플'로 만나 졸업 후 결혼했다. 장응은 진지하게 열중하는 마윈의 모습에 반했다고 한다.
마 회장은 졸업 후 5년 동안 영어 선생님으로 일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한 것은 미국 출장에서 우연히 접한 인터넷에 매료된 것이 계기가 됐다.
1995년 중국어 영어 통번역 회사와 중국판 전화번호부 '차이나페이지'를 만들었다. 중국 최초의 상업용 사이트였다. 그러나 당시 중국은 인터넷은커녕 컴퓨터도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던 때였다. 사기꾼, 미친 사람이라는 핀잔을 감수해야 했고 사업은 결국 실패했다.
마 회장은 좌절하지 않았다. IT 거품이 한창이던 1999년 인터넷 상거래 기업 알리바바를 창업. 'B2B(기업 간 거래) 인터넷 중개 사이트'를 열었다. 중국에 인터넷도 생소한 시절이었다. 사명은 세계적인 동화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에서 따왔다.
알리바바는 2003년 인터넷쇼핑몰 타오바오(B2C)를 개설한 후 비약적으로 성장한다. 2014년 9월에는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해 시가총액 2314억 달러(240조원)를 기록, 페이스북과 아마존을 앞질렀다.
그는 웹페이지 검색과 이메일 전송 외엔 할 줄 모를 정도로 컴퓨터에 문외한이다. 하지만 불굴의 도전 정신으로 세계적 거상으로 등극한 것이다.
마 회장은 노는 것도 잘한다. 2008년 회사 행사 때 공주로 분장하고 무대에 나선 일화는 잘 알려졌다. 그는 회사 차원에서 기념할 만한 일이 있을 때 종종 기발한 모습으로 분장해 직원들에게 팬 서비스를 확실히 한다.
그가 최근 그림에 남다른 소질을 보여 화제가 됐다. 마 회장과 중국 현대미술 3세대 화가인 쩡판즈가 함께 그린 유화 작품 '도화원'(桃花源)이 3600만 홍콩달러(54억원)에 낙찰된 것이다. 지구의 바다, 공기, 물을 보호하자는 뜻을 담아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의 모습을 그렸다.
작품의 수익금 전액은 도화원생태보호기금회에 기부됐다. 이 기금회는 마 회장이 지난해 4월 세운 환경보호를 위한 공익 단체다.
마 회장은 기부도 통크게 했다. 마윈은 2014년 싱가포르의 공익신탁제도를 활용해 169억 위안(3조원)을 쾌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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