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패싱'에 '공동 운전대論'까지…한미, 대북 정책 엇박자 심화
【워싱턴=뉴시스】전신 기자 =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2017.07.01. [email protected]
美 고위 관계자들 '코리아패싱' 의심 발언 쏟아내
내퍼 미국대사대리, 야당 세미나서 '공동 운전대' 언급
【서울=뉴시스】이근홍 기자 = 대북 정책을 둘러싸고 한국과 미국 양국이 엇박자를 내고 있다. 특히 '코리아패싱'(Korea passing·한반도 관련 논의에서 한국이 배제되는 상황)에 이어 북한 문제에 대한 '공동 운전대론'까지 언급되며 우리 정부와 미국 정부 간 정책 공조에 금이 간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다.
최근 코리아패싱이 화두로 떠올랐다. 강력한 국제적 대북 제재 분위기 속에서 한국 정부가 대북 대화 기조를 유지하자 글로벌 외톨이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반영된 현상이다.
문제는 최대 우방국인 미국이 최근 미묘한 입장 변화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일 미국 정부는 자국민의 북한 여행을 금지하는 명령을 발효했다. 이에 따라 다음달 1일부터 언론인과 적십자사 직원 등을 제외한 미국 여권 소지자는 북한에 입국할 수 없다. '베를린 구상'의 후속 조치로 북한에 군사당국회담과 적십자회담을 연이어 제안했던 우리 정부와는 반대의 행보를 보인 셈이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미국 전·현직 고위 관계자들의 작심 발언도 쏟아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달 28일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을 발사하자 행정부 고위 당국자들에게 "북한 정권 붕괴 이후의 상황에 대해 미국이 중국과 사전에 합의하면 북핵 문제 해결에 더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며 "중국의 우려를 덜기 위해 (북한 붕괴 후) 주한미군 철수 공약 같은 것이 포함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논의 테이블에서 한국을 배제한 채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 문제를 결정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가 가능하다.
마이크 폼페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지난 달 26일 보수진영 정치 매체 워싱턴프리비컨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테러와 더불어 미국에 대한 최고의 위협"이라며 "비밀공작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그는 북한의 핵무기 및 탄도미사일 개발을 막으려면 김정은 체제를 무너뜨려야 한다며 에둘러 '레짐체인지'(정권교체)를 언급하기도 했다. CIA는 지난 5월 이례적으로 북한 문제를 다룰 '한국임무센터(Korea Mission Center)'를 설립했다.
상황이 이쯤 되자 국내에서도 코리아패싱 현실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북한이 ICBM급을 발사한 이후 우리나라는 6·25 동란 이후 최대 위기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며 "한반도 안보 정세는 소위 코리아패싱이 현실화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문 대통령은 (한국이) 드디어 한반도 문제의 운전석에 앉았다고 얘기하지만 (현재) 그 운전석에는 미국과 중국이 앉아있고 조수석도 일본에 빼앗겨 우리는 뒷자리에서 남의 일 보듯이 하는 게 아닌가 걱정스럽다"고 덧붙였다.
박주선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청와대가 코리아패싱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는지 의심스럽다"며 "한반도와 동북아 안보의 새로운 질서, 누구와 전략적 파트너 맺을 것인지, 지금처럼 미국에는 사드배치, 중국에는 사드반대 신호를 보내는 것이 맞는 것인지 문재인 정부가 이런 오락가락 외교를 하기 때문에 코리아패싱을 자초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서울=뉴시스】배훈식 기자 =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3간담회실에서 열린 포용과 도전 포럼 긴급 세미나 '북한 미사일 시험 발사 관련 한반도 상황'에 참석한 마크 내퍼(왼쪽) 주한 미국대사대리가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과 대화하고 있다. 2017.08.03. [email protected]
코리아패싱 논란이 가열되자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오는 5일 여름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면 조만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가 진행될 것"이라며 "외교와 관련한 부분은 여당이든 야당이든 신중하게 접근하면 좋겠다. 비판을 하는 것은 좋지만 중요한 외교적 사안에 꼬투리를 잡으면서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식의 접근은 지양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민감한 시기에 웃지 못 할 해프닝도 벌어졌다.
마크 내퍼 주한 미국대사대리는 지난 3일 한국당과 바른정당 등 보수야당 의원들의 모임인 '포용과 도전'(포도 모임) 세미나에 참석해 때 아닌 '운전대 논란'을 일으켰다.
이날 세미나 참석자들에 따르면 내퍼 대사대리는 대북 문제의 주체, 즉 운전대를 누가 쥐고 있는지를 두고 의견을 내놨다. 지난 한·미 정상회담 이후 문 대통령이 한반도 문제 해결의 운전대를 잡았다고 밝혔지만 당시 공동성명에는 이에 대한 표현이 '더 리딩롤'(the leading role)이 아닌 '어 리딩롤'(a leading role)로 돼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이는 대북 문제의 주역, 다시 말해 정책 운전대를 '정관사' 더 리딩롤로 특정한 한국 혼자 잡은 것이 아니라 '부정관사' 어 리딩롤의 의미로 미국과 공동으로 잡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한국이 주도하는 대북 정책 추진에 대한 미국의 인식이 한 단계 후퇴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내퍼 대사대리의 주장은 틀린 것으로 확인됐다. 한·미정상회담 공동 성명서 원문에는 'the ROK's leading role'이라는 문구가 담겨있다. 문장 전체로는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통일 환경 조성을 위한 한국의 주도적인 역할을 지지한다'는 내용이다.
세미나에 참석했던 한 야당 의원은 뉴시스와 통화에서 "내퍼 대사대리의 발언은 개인적인 의견으로 착각에서 빚어진 해프닝일 뿐"이라고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한 미국대사대리 신분으로 한국의 야당 국회의원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리퍼 대리대사가 그 같은 실수를 한 건 쉽게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공동성명서 원문에 다 나와 있는 내용을 착각한데다 그에 대한 해석까지 덧붙인 건 단순한 실수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날 세미나 주제는 '북한 미사일 발사 관련 한반도 상황'이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국회의원들이 마련한 한반도 관련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대사대리가 그 정도 팩트도 확인하지 않았다는 건 납득이 가질 않는다"며 "중간에 단어 한 두 개를 착각했다면 이해가 가지만 이건 기본적인 맥락을 잘못 짚고 있는 수준"이라고 전했다.
포도모임 대표인 나경원 한국당 의원은 "우리가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 배치 문제를 갖고 환경영향평가를 운운하고 있고 (북한 미사일 도발 이후) 한미 정상간 통화가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은 걸 보면 (양국 관계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며 "오늘 세미나를 마치고 보니 실질적으로 우리 정부와 미국 정부 사이 동맹에 가느다란 금이 그어지기 시작한 거 아닌가 하는 우려가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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