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적 순기능의 어떤 본보기, 정혜진 안무 '궁:장녹수전'
'궁: 장녹수전'
정동극장이 7월31일까지 오후 4시 상설공연으로 선보이는 '궁: 장녹수전'(연출 오경택)은 조선 중기 연산군(1476~1506)의 귀염과 사랑을 받은 총희(寵姬) 장녹수를 예인(藝人)으로 톺아본다.
여느 문화 콘텐츠는 연산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장녹수의 섹슈얼리티에 초점을 맞춰왔다. 그러나 한국무용에 기반한 '궁:장녹수전'은 이러한 편견을 걷어낸다.
지금은 거의 잊힌 전통 서민 놀이문화인 정월대보름 답교놀이를 비롯해 장구춤, 한량춤, 교방무 등 쉽게 접할 수 없는 기방문화가 장녹수를 재발견하게 만든다. 궁녀들이 꽃을 들고 추는 화려한 '가인전목단', 배를 타고 즐기는 '선유락' 등은 장녹수뿐 아니라 당대 여성 예술가들에 내재된 섬세하면서 힘찬 리듬을 찾아낸다.
안무가 정혜진(59) 전 서울예술단 예술감독의 공이 크다. 이화여대 무용과를 나와 중요 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를 이수한 정 안무가의 고민이 녹아 들어 있다. 섬세한 감성과 기본에 충실한 안무가 좋은 비율로 섞이며 한국무용의 다채로운 면을 뽑아낸다.
정 안무가는 일찌감치 공연계에 기분 좋은 균열을 내왔다. 특히 서울예술단 시절 남성 중심의 서사 체계가 공고한 이 판을 건강하게 흐트러뜨렸다.'여자' 명성황후의 삶을 되짚어볼 수 있었던 '잃어버린 얼굴 1895', 애인 주몽을 도와 고구려를 세우고 아들 온조와는 백제를 건국한 소서노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소서노'가 대표적이다.
안무가 정혜진
'궁:장녹수전'에서는 춤과 의상의 시각적 황홀경에서도 장녹수의 기개를 꺼내 보인다. 수동적인 자세로 남자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것이 아닌, 홀로서도 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장녹수에 대해 엇갈리는 사후 평가는 차치하고라도, 다른 면을 보게 하고 사유하게 만드는 것이 예술의 힘이다.더구나 그 화법도 세련됐다. 지루하게 설파하는 것이 아닌, 뮤지컬 넘버처럼 다채롭게 펼쳐낸다. 이에 힘 입어 국내 관객은 물론중국, 일본 아시아, 그리고 유럽 등 외국인들의 마음까지 움직였다.
한국 무용, 새삼 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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