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젠, 이제 데이터로 얘기하라"
임상 실패 후 후속대응에 업계·의료진 불안감 증폭
면역항암제 병용 흥망성쇠, 언급 단계 아니다
【서울=뉴시스】지난 4일 열린 긴급간담회에서 질의응답하는 신라젠 임원진의 모습.
신라젠은 앞서 미국 ‘독립적인 데이터 모니터링 위원회(DMC)’로부터 간암 3상(PHOCUS) 시험 중단을 권고받았다. 이에 "임상 실패는 추가 약물 투여에 따른 영향이다"고 추정·발표했다.
신라젠에 따르면, 임상 참여 환자 203명이 모집된 실험군(펙사벡+넥사바) 중 63명(31%)이 다른 약물을 추가 투여했고, 190명 모집된 대조군(넥사바) 중 76명(40%) 역시 다른 약물을 추가 투여했다.
추가 약물 중 표적항암제 ‘스티바가(레고라페닙)’와 ‘카보메틱스(카보잔티닙)’를 투여한 환자가 대조군에서 각 12명, 6명 더 많다 보니 그 비대칭의 값이 데이터에 합산해 유의미한 생존 기간 차이를 이끌어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회사 측은 추정한다.
"아마도 펙사벡 약효 문제는 아닐 것"이라는 주장을 설파하는 셈이다.
그러나 이는 근거 없는 추정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상 디자인의 문제이든, 시험 통제 실패의 문제이든 목표 평가 변수를 충족하지 못해 조기 종료했다는 명백한 사실 외에는 아직 어떤 근거도 확인되지 않아서다.
한 바이오 벤처업체 A대표는 “구제요법이란 임상약물 복용에도 치료 반응이 없어 암 환자가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에 의사가 다른 약을 추가 투여하는 것을 말한다. 대조군과 실험군 모두에 투여됐다”며 “추가 투여 환자 35%가 없었다면 통계적으로 유의미했을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오히려 더 나빴을 수도 있다. 신라젠의 설명을 전혀 납득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종양내과 B교수 역시 “개발사가 임상 디자인을 잘 짰다, 잘못 짰다 부연한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라며 “명백한 것은 임상시험이 실패했다는 것 외에 없다. 약제 효과를 증명하지 못한 개발사는 '앞으로 어떤 연구를 하겠다'고만 밝히면 된다”고 꼬집었다.
그는 “디자인이 잘못된 것인지, 약이 잘못된 것인지는 지금 알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근거 부족한 설명은 환자와 시장을 교란한다”고 비판했다.
◇일부 증례에 의한 기대감은 위험
신라젠은 표적항암제인 ‘넥사바(소라페닙)’와의 병용에서 유효성을 입증하지 못했지만, 면역관문억제제(면역항암제)와 병용은 기대해볼 만하다는 점을 피력하고 있다.
그런데 신라젠이 제시한 기대 근거를 보면 진행 중인 임상시험의 일부 증례에 불과한 것도 포함돼 있다.
분당차병원에서 펙사벡과 옵디보(면역관문억제제)를 순차 투여했더니 완전 반응을 보인 증례가 있어 표적치료제보다 면역관문억제제 병용 치료가 효과적일 것이라는 추정이 대표적이다.
B교수는 “시험 중인 약물의 증례를 보여주며 기대감을 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의학은 언제나 데이터와 과학을 근간으로 해야 한다. 지금 신라젠이 할 일은 왜 네거티브가 나왔는지 세부 데이터 분석을 학회나 논문을 통해 발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이오 기업 관계자는 “모든 치료제는 어떤 환자에서는 반응하지만, 또 다른 환자에서 반응하지 않을 수 있다”며 “일부 사례를 보고 잘 될 것으로 믿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면역항암제 병용 흥망성쇠, 언급 단계 아니다
글로벌 대세인 ‘면역관문억제제’와 병용 시너지는 기대해봄직하지만, 이 역시 과도해서는 위험하다.
전 세계적으로 수천 개 시험이 진행 중인 면역관문억제제와 병용 임상시험은 아직 ‘카오스’로 거론되는 세계다.
수천 개 임상 중 일부만이 결과가 나온 것이 그 첫 번째 이유다. 대표적인 면역관문억제제 ‘키트루다(펨브롤리주맙)’는 1,000개 이상의 임상시험 중 80%가 병용인데 이 중 효과를 입증해 허가받은 영역은 ▲신세포암 1차(키트루다+액시티닙) ▲전이성 비소세포폐암 1차(키트루다+화학항암요법) 등 두 경우뿐이다. 나머지 두경부암, 흑색종, 방광암, 메르켈 세포암, 간암, 자궁경부암, 림프종, 위암 등의 병용 임상에선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연구 결과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앞선 임상에서 성공했으나 대규모 3상에서 고꾸라지는 사례도 적지 않다.
면역관문 억제제와 같이 투여하면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되던 인사이트의 IDO-1 억제제 ‘에파카도스타트’는 지난해 4월 ‘키트루다’와 병용 임상(전이성 흑색종)에서 무진행 생존기간(PFS)을 개선하는 데 실패했다.
비소세포폐암 1차 치료에서 ‘옵디보-여보이(면역관문억제제)’ 병용은 단독 화학요법 대비 전체 생존기간(OS) 개선을 입증했지만, ‘옵디보-화학요법’ 병용은 실패했다.
옵디보는 지난 2017년 미국 FDA에서 간암 2차 치료제로 승인받았으나 최근 1차 치료제로 확대하는 데 실패했다. 3상 연구 결과, 옵디보 투여그룹의 전체 생존기간이 넥사바 투여군의 전체 생존기간과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올해 2월 국내 최초 면역관문억제제+표적치료제 병용요법(티쎈트릭-아바스틴)이 전이성 비편평 비소세포폐암 1차 치료제로 식약처 허가를 받았다. 3상 연구 결과, 티쎈트릭 병용군이 대조군(아바스틴+화학치료제)보다 4.9개월 생존 기간 개선을 보였다.
신라젠의 경우 신장암(1상)과 대장암(1상) 분야 면역관문억제제 병용임상에 주력한다는 계획이다.
신장암 연구는 표적치료제에 반응 없는 환자에게 미국 리제네론의 면역관문억제제 ‘리브타요(세미플리맙)’와 펙사벡을 병용 투여하는 것이다. 환자 5명을 대상으로 한 용량 결정 임상시험에서 완전반응 1명, 부분반응 1명, 안전병변 1명 진행 결과 2명을 각각 확인했다고 신라젠은 설명했다.
대장암 연구는 미국국립암연구소(NCI)에서 아스트라제네카의 면역관문억제제 ‘임핀지(더발루맙)’와 펙사벡 병용(정맥투여) 임상을 진행 중이다. 환자 중 1명에서 통증 감소와 대장암 암수치 정상, CT 촬영 결과 부분반응을 각각 보였다고 설명했다.
【서울=뉴시스】
국내 제약사 C연구소장은 “면역을 부스팅하는 펙사벡은 약물 기전으로 볼 때 면역항암제에 반응하지 않는 환자를 반응하게 할 가능성이 있다”며 “성공 여부는 누구도 자신할 수 없지만,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순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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