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and]지붕 위의 24일…국회 앞 단식 농성의 두 모습
형제복지원 피해자, 전기도 없이 24일 단식
환하게 불 밝힌 정당 농성 천막엔 난로도
"추위 따듯하게 해 주는 것은 국회의원 몫"
[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형제복지원 진상규명을 위한 과거사법 통과를 촉구하며 22일째 국회 앞에서 고공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복지원 생존자 최승우 씨가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6번출구 위 천막에 누워 있다. 그동안 물과 소금으로만 연명해 온 최 씨는 최근 어지럼증을 앓고 있는 상태다. 형제복지원 과거사법은 지난 19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이번 20대 국회에서 재발의 됐다.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김지훈 기자 = "국민을 이렇게 낮춰보나 싶어 더 서러웠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접한 그의 목소리는 기력을 찾아가는 듯했다. 지병 탓에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는 그는 "괜찮아지고 있다"면서도 담장 밖에서 '전기 난민'의 처지로 국회를 바라봤던 11월을 곱씹었다.
국회의사당역 6번 출구 지붕에서 단식 농성을 하다 24일 만에 병원에 실려 간 최승우씨. 그는 형제복지원 피해자다. 1982년 당시 중학생이던 그는 교복 차림으로 귀가하다 경찰에 붙들려 형제복지원에 감금돼 4년8개월을 지옥도에서 보냈다. 형제복지원에서 사망한 것으로 공식 확인된 사람만 550여명이다.
이 '생존자'는 어느덧 50대가 됐다. 그는 제19대 국회에서 '비용' 때문에 자동 폐기된 진상규명 법안(과거사법·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이번 제20대 국회에서만큼은 꼭 통과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전철역 지붕에 올랐다고 한다.
[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형제복지원 진상규명을 위한 과거사법 통과를 촉구하며 22일째 국회 앞에서 고공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복지원 생존자 최승우 씨가 27일 천막 안에서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고 있다. [email protected]
'굶어 죽을 각오'로 단식을 시작했다는 그를 더욱더 서럽게 만든 건 '차별'이었다. 해가 지면 기온이 영하권으로 떨어지는 혹독한 추위 속에서 그는 바닥에 깔 스티로폼 2장과 바람을 막을 비닐을 얻기 위해 공권력과 몇날 며칠을 싸워야 했다. '전기난로'는 언감생심이었다.
스티로폼과 비닐천막에 기대 추위를 견디던 어느날 국회 본청 앞에 천막이 설치되기 시작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단식이 시작된 날이었다. 최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순식간에' 천막이 설치됐고, 환하게 불을 밝힌 그 천막 안에는 난로가 놓였다.
[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형제복지원 진상규명을 위한 과거사법 통과를 촉구하며 22일째 국회 앞에서 고공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복지원 생존자 최승우 씨가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6번출구 위에 홀로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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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법 통과를 간절히 바랐던 그는 국회 본회의가 자유한국당의 199개 법안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 신청으로 파행되기 2시간 전쯤 병원에 옮겨졌다. 그가 있던 6번 출구 지붕에는 곧바로 철조망이 쳐졌다.
국회 본청 앞에는 정의당과 민주평화당, 그리고 우리공화당의 농성 천막이 설치돼 있다. 선거법 개정안 처리와 공수처 설치를 촉구하는 목소리, 그리고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매일 교차된다. 법안 처리 여부에 대한 각 당의 주장은 다르지만 이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천막에 전기가 들어오고 난로가 설치돼 있다는 것이다.
[서울=뉴시스] 이종철 기자 =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0일 밤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계단앞에 설치된 천막에서 총체적 국정실패 규탄을 위한 무기한 단식 투쟁을 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최씨는 "서럽고 화도 났다. 힘이 없으니까 이런 것까지도 차별받나 싶었다"라고 했다. 그는 아직 몸이 성하지 않아 쉬고 있지만, 이래도 되는지 불안하다고 한다. 과거사법이 또다시 회기 종료로 자동 폐기된다면 계절이 바뀌어도 그의 삶은 '국회의사당역 6번 출구 지붕'을 벗어날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당의 한 의원은 그에게 "여론이 형성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최씨는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추위를 따듯하게 해 주는 것은 국회의원과 여러분들의 몫"이라고 호소했다. 과거사법이 이번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으면 최씨의 겨울은 마냥 길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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