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찬 "MBTI가 유행하는 시대, 확신할 수 없는 것을 시로 썼다"[신재우의 작가만세]
4년만에 신간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 출간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수상 시인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황인찬 시인이 지난 22일 서울 중구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06.24.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신재우 기자 = 시인 황인찬(35)은 빛나는 신인 시절을 통과했다. 스물둘이라는 어린 나이에 등단해 2년 뒤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해 '구관조 씻기기'는 첫 시집으로는 이례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고 언론의 주목도 받았다.
어느새 30대가 됐다. '문단의 아이돌'이라고 불렸던 시절을 지나 '희지의 세계', '사랑을 위한 되풀이' 등의 시집을 펴냈고 그림책 작업에도 참여했다. 현재는 국악방송 '글과 음악의 온도'의 라디오 DJ도 맡고 있다.
최근 그는 4년 만에 네 번째 시집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를 펴냈다. 황 시인이 "확실하게 30대에 접어든 이후에 쓴 시를 담았다"는 이번 시집에서는 그가 통과해온 시간이 들어있다.
"갈수록 자신이 없어져요."
"아무 것도 모르니까 더 자신 있고 호기롭게 말했다"는 20대를 지난 그에게는 지금 시대를 바라보며 망설임과 불확실함이 생겼다. 황인찬 시인을 서울 중구 한 카페에서 만나 달라진 그의 시 세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황인찬 시인이 지난 22일 서울 중구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06.24. [email protected]
괄호에 들어간 말들…"확신 없이 살아가는 것 자체를 바라보고 싶다"
이번 시집의 제목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는 확신하지 않는 황인찬의 태도를 반영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게 내 마음"이라고 단정 짓지 않고 자신의 바라본 일상 속 풍경과 사물을 "내 마음이라고 하자"고 결심한 것이다.
"MBTI가 유행하는 걸 보며 깜짝 놀랐어요."
젊은 세대 사이에서 MBTI 유형 테스트가 유행이 되고 너도나도 MBTI로 스스로를 규정하는 모습에 황인찬은 당황했다. 정체성 정치가 성행하고 자신이 누구인지가 너무나 중요한 시대를 살며 그는 "오히려 나를 무엇이라고 설명하기가 참 어려워진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느꼈다.
황 시인은 그런 고민을 시집에 담기로 했다.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상태 자체'를 시집에 있는 그대로 표현해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기 위해서다. 그는 지나치게 옳다고 믿고 결정하는 것을 경계하며 "확신 없이 살아가는 것"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려고 했다.
이 때문에 이번 시집에는 유독 괄호가 많다. 시 속 괄호는 망설임과 다른 생각이 들 때 새로운 목소리를 추가하는 황인찬만의 장치다. 시집의 첫머리인 '시인의 말'조차 그는 전부 괄호 안에 넣어버렸다.
"다들 그렇게 살아가지 않나요?"
망설임에 대한 거부감은 없다. 점점 더 자신이 없어지는 스스로에 대해 초조해하지 않고 "불안을 잘 끌어안고 살아가겠다"고 생각한 그는 시집에 그 과정을 전부 담았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황인찬 시인이 지난 22일 서울 중구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06.24. [email protected]
새로운 세계 속 황인찬…그럼에도 시의 확장 꿈꾼다
한편으론 시인 외에도 다양한 정체성을 찾았다. 라디오 DJ로 활동하며 대학교에서는 강의를 하고 있다. 지난해 시작한 그림책 작업은 올해로 두 번째 책까지 이어졌다.
그에게 시가 "개인적인 독백"에 가깝다면 방송을 비롯한 활동은 "조금 더 적극적으로 말을 거는 행위"다. 그림책 작업을 하며 어린이에 대해 생각하게 된 그는 "문학의 다른 형식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 새로운 고민이 생겨났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시의 확장을 꿈꾼다. 자신의 여러 정체성 중 '시인'을 "직업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가장 중요하다고 꼽을 수 있다. 사람들에게 시가 더 뻗어나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그는 이전부터 계속해서 해왔다.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시 쓰기니까요.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에서 새로운 것을 해낼 수 있다고 믿고, 해냈을 때의 아주 작은 기쁨의 순간을 생각하면서 계속 쓰는 거예요."
시는 소설과 수필과 달리 '알 수 없음'을 품고 있는 장르다. 의미가 불분명하고 모호할 수도 있고 이 때문에 어렵게 느끼는 이들도 많다. 이러한 특징을 황인찬은 단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모든 사람과 소통하고 싶지 않은 것처럼 그에게 시는 "깊은 대화, 내밀한 관계를 만들고 싶은 마음"에 가깝다.
"말을 좀 골라볼게요."
황인찬은 인터뷰 중에도 수시로 말을 골라냈다. 여전히 확신하지 않는 그는 그렇게 깊은 대화를 위한 말을 계속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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