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주주 권익' 높이는 상법 개정 성공하려면
[서울=뉴시스] 박은비 기자 =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요즘 만나면 두산그룹 지배구조 개편 이야기 뿐이다. 두산에너빌리티의 자회사인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와 합병하겠다고 발표한 뒤 주가가 급락했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지배구조 강화를 위해 알짜 회사를 적자 회사와 결합하면서 두산밥캣 1주를 두산로보틱스 0.63주로 교환하는 방식이 주주 이익과 무관하다는 반발감이 깔려있다.
두산그룹이 선택한 합병비율 산정방식이 법 테두리 내에서 이뤄진 일이라 현행법에 어긋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사회가 주주를 보호하기 위한 최선을 다했고, 충분한 설명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복현 금감원장도 "여전히 지배주주 이익만 우선시하는 기업 경영 사례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하기도 했다.
여기에다 지난 22일 국민연금이 주주 가치 훼손 우려가 크다는 이유로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안에 대해 반대 결정하면서 국민연금을 2대 주주로 둔 두산에너빌리티도 풍전등화 상황에 놓였다.
한 증권사 대표는 "국내에서는 기업 합병 과정에서 주주 이익을 침해하는 일이 반복되는데도 별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반복된다고 본다"며 "주주 보호를 최우선하는 해외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독일은 완전모자회사간 합병이 아닌 이상 합병계약에 합병검사인 선임이 의무라 합병비율의 산정방법과 적정성을 평가하고 주주총회 전에 제출하는 제도가 있다. 또 주의의무 소홀로 소멸회사 주주가 손해를 입으면 주주는 이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합병유지청구권이 있어 주주들이 사전에 합병 중지를 요청할 수 있다.
행동주의 펀드들은 이번에 두산 합병 사례가 나와 오히려 잘 됐다는 반응도 나온다. 상법 개정이 필요한 걸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례로 법 개정 동력을 얻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주주 가치 훼손 논란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최소한 이사회 구성원인 이사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상법 개정 과정에서 논의되는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에 주주를 명문화하는 동시에 지배주주 영향을 받지 않는 독립이사 선임 의무화가 절실한 이유다.
최근에 만난 한 기관 투자자는 수익성만 놓고 보면 국내 기업에 투자할 이유가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개인투자자도 1400만명 시대인데, 주주 보호를 위한 제도는 아직 불충분하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여당이 추진하는 밸류업 프로그램에 이어 야당도 부스트업 프로젝트를 내세운 상황에서 제도 보완에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 주주 권익을 높이는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도 강화돼야 한다. 이번 상법 개정이 성공하려면 기업과의 공감대 형성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