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개화기~현재' 우리말 교과서 집대성한 비상교육
한글 및 교과서 자료 1700여점 수집, 비상라키비움 전시관 조성
첫 근대 교과서 비롯, 한국 근현대 창작 문학작품 초판본 공개도
[과천=뉴시스] 김종택 기자 = 지난 달 30일 오후 경기 과천시 비상교육 신사옥 내 비상라키비움 전시관에서 1~7차 교육과정 및 수시개정체제에서 발행된 초등학생 교과서들을 전시하고 있다. 비상교육은 이곳에 1700여점에 달하는 우리말 교과서와 그 속에 실린 한국 창작문학 작품 초판본 등 귀중한 소장자료를 일반 시민과 학생들에게 최근 공개했다. 2024.09.3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과천=뉴시스] 박종대 기자 = 제578돌 한글날을 아흐레 앞둔 지난달 30일 오후 2시 경기 과천시 비상교육 신사옥 내 '비상라키비움' 전시관.
현대적인 감각의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사옥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곳 전시관에 올라오면 고풍스러운 느낌이 나는 나무 재질로 된 아치 모형의 복도 터널이 가장 먼저 취재진을 맞이했다.
터널을 빠져나와 오른쪽에 위치한 안내데스크로 발걸음을 향하면 정면에 놓여있는 사무용 책상 뒤편으로 '비상 라키비움(VISANG LARCHIVEUM)'이라고 적혀 있는 글씨가 보였다.
라키비움은 '도서관'(Library), '수장고'(Archives), '박물관'(Museum)의 성격을 통합적으로 갖춘 공간을 의미하는 말이다. 비상교육이 이같이 전시관 이름을 명명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말이 생기기 전부터 세종의 한글 창제 이후 굴곡진 역사를 거쳐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현재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교과서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 1700여 점을 이곳에 집대성했기 때문이다.
[과천=뉴시스] 김종택 기자 = 지난 달 30일 오후 경기 과천시 갈현동 지식정보타운에 위치한 비상교육 신사옥 내 비상라키비움 전시관에 조선 후기 개화기 때 발행된 근대 교과서들이 전시돼 있다. 고종은 갑오개혁의 영향으로 새로운 교육제도 운영을 위해 1895년 2월에 교육입국조서를 발표하고 예조의 소관 업무를 이어받은 '학부'(學部)를 설치해 현재의 교육부 역할을 맡겼다. 2024.09.3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개화기, 일제강점기, 광복기, 한국전쟁기, 교육과정기, 수시개정 체제까지 우리나라 교과서가 걸어온 길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높아 보였다.
특히 교육 전문기업인 비상만의 노하우를 살린 전시가 돋보였다. 방대한 자료를 연대기순으로 비치하며 전체적인 흐름을 조망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또 전시된 소장자료를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는 데 길라잡이가 되는 정보를 교과서 단원글이나 주석처럼 제공해 관람객들의 흥미를 돋우었다.
게다가 개화기부터 광복기까지 배포됐던 교과서 영인본(影印本·복사본)을 비치해 당시 학생들이 공부했던 교과서 내용을 직접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관람객들이 교과서 역사와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는 게 비상라키비움의 가장 큰 특징이다.
비상교육은 최근 일반 시민들에게 이곳 전시관의 무료 개방을 결정했다. 지난 3월 서울 구로구에서 경기 과천시로 사옥을 옮긴 비상교육은 그동안 회사를 방문한 관계자들만 볼 수 있도록 소장자료 가운데 일부만 전시해 왔다.
그런데 '제2의 판교'로 불리는 과천 지식정보타운에 연면적 약 6만6000㎡(2만평), 지상 14층, 지하 5층 규모의 신사옥을 건립, 이 중 건물 1개 층을 활용해 비상라키비움을 조성했다.
[과천=뉴시스] 김종택 기자 = 지난 달 30일 오후 경기 과천시 비상교육 신사옥 내 비상라키비움 전시관에서 광복기 때 발행된 교과서들을 전시하고 있다. 광복 직후 미군정청은 긴급 조치의 형태로 조선인 교육의 재개를 알렸다. 미군정 초기에는 검인정 제도가 시행되지 않아 교과서가 자유 발행됐고 이후 1946년 3월 미군정청 학무국이 문교부로 승격하면서 문교부 편수국에서 검인정 업무를 담당했다. 2024.09.3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이 전시관은 해당 층 면적의 3분의 1인 약 981㎡(297평) 가량을 차지한다. 이곳에는 외부 회의실과 스마트 클래스, 서고, 아동 및 문학서적 열람실이 함께 마련돼 있다.
하지만 한글 자모인 '미음'(ㅁ)자 형태로 길이 연결돼 있는 전시관 내에서 시대순으로 정리된 소장자료를 따라가다 보면 관람객 편의시설을 포함해 1개 층 전체인 2998㎡(907평)가 전시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공간으로 설계됐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전시관은 크게 2개 테마로 나뉜다. 한글의 탄생 이후 우리말로 집필된 교과서를 조망해 볼 수 있는 구역과 교과서에 실린 한국 근현대 문학의 정수로 꼽히는 작품들이 비치된 공간이다.
관람객은 전시관 한 바퀴를 둘러보면 한글의 시작과 우리말 교과서 역사를 연대기순으로 차례로 알아갈 수 있다. 우선 근대 교과서가 태동한 개화기부터 일제강점기 때까지 발행된 교과서에서는 나라와 언어를 잃은 국민의 아픔과 상처를 엿볼 수 있다.
1895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교과서인 '국민소학독본'이 발행됐지만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조선의 내정에 간섭한 이후부터 교과내용에 점점 일본의 색채가 짙어졌다.
[과천=뉴시스] 김종택 기자 = 지난 달 30일 오후 경기 과천시 비상교육 신사옥 내 비상라키비움 전시관에서 미국인 선교사인 호머 헐버트 박사가 쓴 우리나라 최초의 순한글 교과서인 '사민필지'(士民必知)를 전시하고 있다. 이는 세계 지리와 문화를 소개하는 내용으로 저술한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 지리 교과서이기도 하다. 당시 세계 정세에 대해 백지 상태이던 우리나라에 세계 지리 지식을 심어줬다. 2024.09.3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상황이 이렇자 당시 교육부 역할을 맡았던 학부(學部)가 발간하는 교과서와는 별도로 자주독립정신과 애국사상을 고취하는 민간 교과서가 다수 나왔다. 이에 일본 통감부는 수십 종의 교과용 도서를 사용금지 처분하는 조치를 취했다.
전시관에서는 일제강점기 때 치안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일본이 출판을 금지한 안국선의 '금수회의록' 등 금서 9종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비상라키비움에서는 시대별로 교과서 집필을 주도했던 백당 현채 선생과 호머 헐버트 박사, 박창해 전 연세대 교수 등 주요 인물과 그들이 저술한 교과서도 소개한다.
미국인 선교사인 호머 헐버트 박사가 쓴 우리나라 최초의 순한글 교과서인 '사민필지'(士民必知)를 비롯해 1905년부터 예수성서회에서 발행한 헐버트 교과서 시리즈 중 하나인 '초학지지'를 만나볼 수 있다. 그는 국어학자인 주시경과 함께 한글을 연구하며 한글에서 띄어쓰기와 마침표 등을 도입했다.
6·25 전쟁 때만 한시적으로 '전시생활'이란 이름으로 배포됐던 초등학교 및 중학교 교과서도 전시돼 있다. 당시 학생들이 배웠던 교과목을 보면 '비행기', '군함', '탱크', '싸우는 우리나라', '우리는 반드시 이긴다', '씩씩한 우리 겨레' 등으로 시대적 교육 방향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과천=뉴시스] 박종대 기자 = 지난 달 30일 오후 경기 과천시 비상교육 신사옥 내 비상라키비움 전시관에서 우리말 교과서에 실린 한국 창작문학 작품 초판본 등이 전시돼 있다. 이곳에는 일제강점기에 발행된 '문장', '창조', '청춘', '어린이' 등 잡지들도 찾아볼 수 있다. 2024.09.3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이뿐만 아니라 방학에만 초등학생들에게 보급됐던 '탐구 생활', '즐거운 방학 생활', '방학 공부' 등 익숙한 교재들은 물론 학습 보조재인 '모범전과', '동아전과', '표준수련장' 등 추억을 되새기게 하는 참고서들도 직접 눈으로 살필 수 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전시자료도 있다. 바로 교육과정기에 발행된 초등학생 교과서다.
본격적인 교육과정 지침이 마련된 시기인 1954년 1차 교육과정부터 2007년 수시개정체제 시행 뒤까지 70년간 발행된 초등학생용 교과서들이 총망라돼 있다. 관람객 입장에서 각 교육과정별 초등생 교과서 표지 디자인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눈 여겨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한국문학 작가들의 시집과 소설집을 만날 수 있는 '특별전시' 구역은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보석 같은 공간이다.
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김소월과 한용운, 정지용, 백석, 이육사, 이상, 윤동주 등 작가들의 시집들을 비롯해 한국 현대소설의 거장으로 불리는 이청준과 조세희, 박완서 등 작가들의 소설집 초판본이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관람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과천=뉴시스] 박종대 기자 = 지난 달 30일 오후 경기 과천시 갈현동 지식정보타운에 위치한 비상교육 신사옥 내 비상라키비움 전시관에 우리 고전문학인 '춘향전'을 프랑스에 최초로 불어로 소개한 '향기로운 봄' 등 서양에 전파한 한국문학 번역서가 전시돼 있다. 2024.09.3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또 일제강점기 대표 문예잡지인 '문장', 어린이날을 만든 소파 방정환 선생이 창간한 한글 잡지인 '어린이', 육당 최남선이 만든 잡지 '청춘', 소설가 김동인이 펴낸 문예지 '창조' 등과 같은 진귀한 잡지도 볼 수 있다.
이외에도 세익스피어의 '햄릿'의 최초 한국어 번역인 '하믈레트' 등 조선인이 알린 서양문학과 우리 고전문학인 '춘향전'을 프랑스에 최초로 불어로 소개한 '향기로운 봄' 등 서양으로 퍼져나간 한국문학 번역서까지 전시돼 있다.
이처럼 비상라키비움에서는 그동안 비상교육이 모아놓은 방대한 자료를 기반으로 한글의 모태인 훈민정음부터 출발해 우리나라 교과서 역사를 전체적으로 훑어볼 수 있다. 동시에 이를 수집하는 데 쏟아부은 열정과 노력에 대한 경외감마저 든다.
비상교육이 이같이 집념을 갖고 한글과 우리말 교과서 자료를 모으기 시작한 것은 교육기업으로서 국정·검인정 교과서 발행을 계획하고 본격적으로 이를 위한 개발에 착수하던 2005년 무렵부터다. 벌써 햇수로 14년째다. 이는 '교육의 본질은 교과서'라는 철학을 지닌 비상교육 양태회 대표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과천=뉴시스] 김종택 기자 = 비상교육 양태회 대표가 지난달 30일 경기 과천시 갈현동 비상교육 신사옥 내 비상라키비움에 전시해놓은 우리말 관련 문헌 및 교과서 자료들을 설명하고 있다. 2024.09.3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우리말 교과서에 실린 한국문학 작품만 선별한 특별 전시공간을 만들게 된 것도 양 대표의 생각에서 비롯됐다. 그는 한글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가장 잘 살려낸 것은 우리말로 창작한 문학작품이라는 게 평소 그의 지론이다.
그만큼 양 대표와 비상교육은 우리말 교과서에 진심이다. 이렇기 때문에 비상라키비움 전시관 맨 끝자락에서 비상교육이 만든 교과서와 교재에 도달하게 되는 과정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자 필연이다.
전시관을 전부 둘러본 관람객들은 우리나라 교과서 역사 속에서 그 전통과 가치 그리고 명맥을 이어나갈 수 있는 교육의 본질을 담은 교과서와 학습교재를 만들겠다는 비상교육의 포부를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양태회 비상교육 대표는 "비상라키비움은 기본적으로 교과서가 있는 공간으로, 교육회사에 있기 때문에 더 의미가 크다"며 "이곳을 찾는 분들이 교과서를 보는 과정 속에서 대한민국이 성장해온 역사와 함께 교육의 근간이 되는 매개체로서 교과서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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