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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연구진, 액체 상태 같은 '전자결정' 세계최초 발견…현대 물리학 난제 열쇠

등록 2024.10.17 00:00:00수정 2024.10.17 00: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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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수 교수팀, 고체 물질 속 전자가 액체·고체 특징 갖는 전자결정 확인

기존 정설은 전자 배열 형태에 '이분법적' 사고 적용…제3의 상태 첫 발견

고온초전도체·초유체 등 물리학 난제 실마리…초전도체 후속 연구도 진행

고체 물질 속 전자결정 조각들을 형상화한 그림. 투명한 파란공은 결정을 이룬 전자를 나타내고, 불투명한 검은공은 결정을 이루지 않은 채 남아있는 전자를 나타낸다. 흰색선으로 연결된 투명한 파란공들은 육각형 모양으로 오직 짧은 거리의 배열만 갖는 전자결정 조각을 이루고 있다. (사진=과기정통부·김근수 교수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고체 물질 속 전자결정 조각들을 형상화한 그림. 투명한 파란공은 결정을 이룬 전자를 나타내고, 불투명한 검은공은 결정을 이루지 않은 채 남아있는 전자를 나타낸다. 흰색선으로 연결된 투명한 파란공들은 육각형 모양으로 오직 짧은 거리의 배열만 갖는 전자결정 조각을 이루고 있다. (사진=과기정통부·김근수 교수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윤현성 기자 = 우리나라 연구진이 수십년 간 물리학계의 화두로 여겨졌던 '전자결정'의 새로운 특성을 발견했다.

그간 학계에서는 자연계의 고체 물질 속에 담긴 전자들이 규칙적으로 배열돼있거나, 그렇지 않은 상태로만 존재한다는 이분법적 사고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우리 연구진이 전자들의 '일부'만 규칙성을 갖는 새로운 상태를 발견해냈다. 이번 연구 결과는 현대 물리학의 오랜 난제인 고온 초전도체나 초유체의 비밀을 풀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연세대학교 김근수 교수 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고체 물질 속에서 전자가 액체의 특징과 고체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는 '전자결정' 조각을 발견했다고 17일 밝혔다.
 
과기정통부 기초연구사업의 지원으로 이뤄진 이번 연구 성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16일 오후 4시(현지시각) 게재됐다.
연세대 김근수 교수 연구팀이 발견한 액체결정 상태의 전자결정 조각(가운데)과 기존 학계에서 인식하던 전자의 두 상태 비교. (사진=과기정통부·김근수 교수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연세대 김근수 교수 연구팀이 발견한 액체결정 상태의 전자결정 조각(가운데)과 기존 학계에서 인식하던 전자의 두 상태 비교. (사진=과기정통부·김근수 교수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고체 물질 속에서 원자는 규칙적인 배열을 이뤄 움직일 수 없는 반면, 전자들은 마치 기체처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이 때문에 전압을 걸어 전자들의 흐름을 만들어 주면 전류가 발생하게 된다.

이 전자들을 기반으로 한 전자결정 상태(위그너 결정)는 1963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유진 위그너가 제안했다. 전자결정 상태는 전자들이 서로 밀어내는 힘으로 인해 규칙적인 배열을 이루고, 이로 인해 고체 형태로 결정화 돼 움직일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입자이자 파동인 전자가 고체 상태인 결정을 이루는 것은 물리학적 관점에서 그 자체로 신비로운 현상이다. 뿐만 아니라 10의 10제곱개 이상의 많은 입자 간 상호 작용으로 인해 결정화가 일어나면 고온 초전도체나 초유체와 같은 현대 물리학 난제의 비밀을 풀 열쇠가 될 수도 있다.

고온 초전도체는 영하 240도 이상 비교적 높은 온도에서 저항이 사라지는 물질이다. 전통적인 초전도 이론으로는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지난 40년간 물리학 난제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초유체는 액체 헬륨과 같이 극저온에서 점성이 사라지는 물질이다. 액체 헬륨은 초유체이기 때문에 소용돌이가 발생하지 않고 마찰이 없기 때문에 영원히 회전할 수 있다는 특징을 갖는다.

이같은 기대로 인해 전자결정은 수십년 간 물리학의 주요 화두가 됐고, 그동안 전 세계의 수많은 연구자들이 연구해왔다. 특히 학계는 전자가 규칙적인 배열이 있는 경우, 없는 경우의 2가지 상태로만 인식해왔다. 비유해보면 전자가 고체(배열 있음) 혹은 기체(배열 없음)와 같은 형태로만 존재한다고 본 셈이다.

연구팀은 발견한 전자결정을 입증하기 위해 방사광가속기와 각분해광전자분광 장치를 이용해 전자의 에너지와 운동량을 정밀 측정했다. 그 결과 미세한 전자결정 조각이 존재할 때 나타나는 독특한 불규칙성을 관측하는 데 성공했다. 각 전자결정 조각의 크기는 1~2㎚(나노미터) 수준으로, 머리카락 굵기의 1만분의 1보다 작다.
전자결정 조각의 흔적을 보여주는 실험 데이터. 방사광가속기와 각분해광전자분광으로 측정한 데이터로 세로축은 전자의 에너지를, 가로축은 전자의 운동량을 나타낸다. 원자가 규칙적으로 배열된 고체의 전자는 규칙적인 그래프를 보인다. 하지만 측정된 데이터는 0번, 2번, 4번 지점의 에너지가 서로 다르고, 운동량 간격도 일치하지 않는 등 불규칙성을 보인다. 이는 전자결정 조각과 같이 오로지 짧은 거리의 배열만 존재할 때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는 특징이다. (사진=과기정통부·김근수 교수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전자결정 조각의 흔적을 보여주는 실험 데이터. 방사광가속기와 각분해광전자분광으로 측정한 데이터로 세로축은 전자의 에너지를, 가로축은 전자의 운동량을 나타낸다. 원자가 규칙적으로 배열된 고체의 전자는 규칙적인 그래프를 보인다. 하지만 측정된 데이터는 0번, 2번, 4번 지점의 에너지가 서로 다르고, 운동량 간격도 일치하지 않는 등 불규칙성을 보인다. 이는 전자결정 조각과 같이 오로지 짧은 거리의 배열만 존재할 때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는 특징이다. (사진=과기정통부·김근수 교수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번 연구는 마치 액체결정(액정) 상태와 같은 전자결정 조각을 발견한 세계 최초의 연구 결과다. 관측된 불규칙성은 물질의 점성이 사라지는 초유체의 특징과도 유사하다. 고체나 기체 상태로만 비유되던 전자 배열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전자결정 조각은 도핑된 반도체나 절연체에 보편적으로 나타날 수 있기에 다양한 후속 연구가 기대된다. 물질의 저항이 사라지는 고온초전도 현상은 도핑된 절연체에서 발견된다. 연구팀은 이 점에 주목해 고온초전도체에서 미세한 전자결정 조각들의 흔적을 탐색하고 있다.

김근수 교수는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전자의 규칙적인 배열이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를 이분법적으로 인식해 왔다"며 "이번 연구를 통해 짧은 거리의 배열만 존재하는 제3의 전자결정 상태를 인식하게 되었다는 점에 이번 연구의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김근수 교수 연구팀의 이번 성과의 기반이 된 2021년 연구성과 역시 과기정통부 기초연구사업(중견연구)의 지원을 통해 이뤄진 바 있다. 해당 연구 성과 또한 네이처에 게재됐다.

이를 두고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선행 연구의 성과가 후속 연구를 통해 심화·발전돼 자연 현상의 근원에 더욱 근접한 연구가 가능했다"고 강조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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