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제16대 종법사 왕산 성도종 종사는 누구?
대사식 11월3일 거행
[익산=뉴시스] 22일 전북자치도 익산시 원불교 중앙총부에서 새롭게 선출된 왕산 성도종 종법사가 기자간담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 간담회는 종법사의 취임을 기념해 원불교의 비전과 향후 계획을 공유하고자 마련됐다. 2024.10.22. [email protected]
전산 김주원 종법사와 왕산 성도종 새 종법사의 대사식은 11월 3일 중앙총부 영모전 광장에서 거행된다.
왕산(汪山) 성도종(成道鍾) 종사(宗師)는 1949년 7월 17일 전북자치도 익산시 신용동에서 부친 봉산 성철석 선생과 모친 준타원 이준현 여사의 6남 3녀 중 3남으로 출생했다.
그는 원기 9년(1924)에 불법연구회에 귀의한 조모와 부모님 슬하에서 태어났고, 3세경에 종조부인 성산 성정철 종사의 양자로 입양되었다. 이에 그는 중앙총부 구내에서 성장하였고 출가자의 삶이 자연스럽게 조성됐다.
익산교당에서 학생법회를 본 왕산 종사는 매우 열성적인 학생 교도였고, 고등학교 졸업 후 원광대 원불교학과에 입학하여 전무출신(교무) 생활을 시작한 이래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 서원에 변함이 없었다. 전무출신의 길은 이미 정해진 길이었고, 숙세의 인연으로 일원대도 회상을 만난 이 큰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오로지 출가의 길이었다.
왕산 종사는 수학을 마친 후 교정원 기획실, 서울사무소, 교육부, 서원관, 교화연구소, 교화부, 총무부, 북일교당 등지에서 근무했다.
교화연구소 소장으로 근무할 당시에는 '월간교화'를 발행했는데, 월간교화는 교역자 전문지로서 교화 수상, 선진 교화 일화, 일반·청년·학생·어린이법회 설교 등 각종 자료를 수록함으로써 일선 교화에 필요한 교화프로그램과 교화 자료를 제공하여 교화에 크게 기여해 왔다. 이외에도 교화지침서 발행, 법회 식순에 관한 연구 등 다양한 자료 제공에 심혈을 기울였다.
원기 82년(1997)부터 원불교대학원대학교 교무처장으로 근무한 왕산 종사는 대학원대학교의 설립인가 추진과 인가 이후 대학원대학교의 운영과 교육과정 등 석사학위를 수여하는 전문대학원의 체계를 확립하는 중심적인 임무를 수행했다.
원불교대학원대학교 설립은 교단이 ‘예비교무 교육발전 계획’에 따라 적극적으로 추진해 온 정책의 하나로, 원기 82년(1997)에 교육부장관으로부터 설립을 인가받았다.
이에 2년 과정을 마친 예비교무에게 원불교학 석사학위를 수여할 수 있게 되어 고학력 시대에 상응하는 교무들을 배출할 수 있게 됐다. 정부로부터 ‘학교법인 원불교대학원’ 설립을 인가받고 대학원대학교 설립 인가를 추진하게 된 것은 교단적인 큰 경사였다.
원기 86년(2001)부터는 충북교구장을 역임했다. 교세가 미약한 충북교구에서 대각개교절 합동법회와 보은장터, 어린이 놀이마당, 한방무료진료, 청주교도소 합동득도식, 전국원음합창제 등을 개최해 충북교구의 지역사회 교화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음성교당 설립 신축, 진천·단양·증평·오창교당 신설 봉불, 청주원광효도의 집 설립 등으로 교화의 터전을 널리 구축하였다. 이외에도 충북교구 법호인 성지순례를 함으로써 법호인들이 보다 내실을 갖춘 공부인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했다.
그는 교화 불모지이던 충북지역 교화에 교단적으로 과감한 정책적 지원이 절실함을 체감 “기반이 약한 곳일수록 교무들의 역할이 중요하고, 또 교무들이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일원의 법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개척정신과 교역자로서의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는 지론을 폈다.
그리고 충북교구 교역자들의 교화역량 개발을 위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출가교화단회를 교화력 개발 훈련으로 운영하였다. 또한 다양한 대사회 봉사활동으로 충북지역에 원불교의 인지도를 높여 가는 데 기여했다.
이후 원기 92년(2007)에 원불교대학원대학교 총장으로 취임한 그는 대중의 의견과 요구를 교육의 주체인 학교가 받아들여 교육이념과 목표에 부합하도록 용해하여 교육에 반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따라, 우리 교법과 이념의 탁월성과 교역자들의 높은 도덕성을 교화 발전으로 연결하는 능력을 갖추는 학교로써 현장기여도에 대한 점검 및 연구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노력했다.
또한 그는 학교 내 실천교학연구원 산하에 ‘둥근마음상담연구소’를 설치했다. 둥근마음상담연구소는 예비교무들이 교화자의 필수요소인 상담의 기초를 확립하는데 기여하는 한편, 기성 교화자들에게는 상담과 심리학에 대한 과학적 기초를 더 해주고 상담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왕산 종사는 원불교대학원대학교에서의 임기를 마치고 원기 95년(2010)부터 서울교구장(서울교당 교감교무 겸직)으로 봉직했다.
그는 이곳에서 신앙공동체 네트워크 구현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이에 다층적으로 참여하고 소통하여 지혜와 역량이 결집 되도록 심혈을 기울였으니 그중 하나가 ‘화통·소통·회통’을 바탕으로 한 서울교구 교화대불공 실천이었다.
또한 그가 재임하는 동안 서울 휘경여중 법당이 봉불(奉佛)을 했고, 잠실교당과 신림교당이 증·개축 이안(移安) 봉불을 했으며, 안암교당 마음공부 학사가 개원 봉불, 구의교당 등이 신축 봉불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추모행사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거행했다. 원기 95년(2010)에는 교구자치제가 본격화됨에 따라 모범적인 교구자치제가 될 수 있도록 힘썼으니, “교구의 자치역량 강화는 인적 자원의 능력향상과 물적 자원의 효율적 운영과 비례한다.”라는 입장에서 그는 지역사회와 호흡하는 교구가 되도록 노력한 것이었다.
원기 85년(2000)에 정수위단에 피선된 왕산 종사는 91년(2006), 97년(2012) 3기를 연이어 피선되어 97년 왕산 종사는 제197회 임시 수위단회에서 중앙단원으로 선출되었다.
종법사를 보필하는 사명을 성심으로 수행하는 한편, 최고결의기관으로서 수위단회의 위상과 기능이 강화되고 수위단원 개개인의 소통력이 향상되며 포괄적이고 정확한 요인 분석에 따른 원활한 의사 진행으로 중앙단원으로서의 역할에 정성을 다해왔다.
이와 함께 중앙중도훈련원장으로 봉직해 온 왕산 종사는 정기훈련 11과목 아래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편성, 전무출신들로 하여금 자율적이고 성숙한 분위기에서 삼대력의 증진에 일심으로 공들일 수 있도록 훈련원을 정성껏 운영해왔다.
대산종사법어 감수위원장을 역임하며 ‘어떻게 하면 제한된 짧은 글과 지면에 대산 종사의 깊고 높은 뜻을 온전히 담을 것인가’ 하는 절실한 서원으로 감수에 임한 바 있다.
전무출신은 몸과 마음을 온통 이 회상과 공중에 바친 사람임을 명심하여, 위법망구 위공망사(爲法忘軀 爲公忘私)의 표준에 오손됨이 없는 일생을 살기 위해 늘 자신을 살피는 왕산 성도종 종사. 그는 전무출신의 표본이자 모범으로 많은 후진의 귀감이 되고 있다.
원기 100년(2015) 12월 제218회 임시 수위단회에서는 종사(宗師 출가위의 법위)의 법훈을 서훈키로 결의하였고, 지난 9월 25일 수위단회 선거를 통해 원불교 제16대 종법사에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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